[THE FINANCE] 퇴직연금, 노후준비 넘어 ‘제2의 자산관리 계좌’로

주형연 2025. 8. 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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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퇴직연금 실물 이전제도’ 도입 이후
은행서 증권사로 8개월간 1조 이상 머니무브
은퇴 맞춰 자산비중 조정하는 TDF 등 인기
정부, 퇴직연금대출 등 각종 정책 추진 활발
[연합뉴스]


안정적인 노후 대비를 위해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퇴직이 멀게만 느껴지는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퇴직연금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세제 혜택과 장기 투자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 적극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맞춰 퇴직연금 관련 추가 정책을 검토하고 나섰다.

◇‘잠자는 돈’에서 ‘굴리는 돈’으로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총 적립금은 445조6224억원으로 1분기보다 12조6458억원(2.9%) 증가했다. 유형별로는 IRP(개인형퇴직연금)가 113조2738억원으로 5.3% 늘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DC형(확정기여형)은 120조1844억원으로 4.3% 증가했다. DB형(확정급여형)은 212조1642억원으로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IRP는 자영업자나 직장인 등 개인이 자발적으로 가입해 운용하는 퇴직연금 계좌로 세액공제 혜택과 함께 자율성이 높은 구조다. DC형은 사용자가 납입한 부담금을 개인이 직접 운용하는 방식으로 수익률이 가입자에 귀속된다. DB형은 기업이 운용 책임을 지며 퇴직급여가 사전에 정해져 있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퇴직연금이 주로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집중되면서 사실상 예금성 자산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금리 하락과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직장인들이 주식형·채권형 펀드, TDF(Target Date Fund) 등 다양한 상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상품으로, 초보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가 도입된 후 연금 자산은 은행에서 증권사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퇴직연금 실물 이전은 기존 금융회사에 있는 연금 자산을 현금화하지 않고 그대로 다른 금융사로 옮기는 제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8개월 동안 증권사로 순유입된 퇴직연금 자산(DC형+IRP)은 약 1조3055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은행권에서는 1조1847억원이 빠져나갔다. 금리 하락으로 은행 주력 상품의 매력이 줄어들고, 연금을 잘 굴려서 불려야 하는 ‘투자 자산’으로 보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갈아타기 제도 도입으로 국내에서는 DC형·IRP를 중심으로 자금 이동이 활성화됐다. 전체 DC형 적립금에서 은행 적립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24년 2분기 62.7%에서 60.5%로 2.2%포인트(p) 줄었다.

개인형IRP에서도 은행 적립금 비중이 65.1%에서 61.6%로 3.5%p 감소했다. 해당 기간 동안 DC형·IRP형 적립금은 44조2000억원 늘었는데, 50.9%(22조4800억원)가 증권사와 보험사 증가분이다.

◇정부, 퇴직연금 의무화 검토

정부는 소비자들이 보다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퇴직연금 관련 각종 정책을 검토 중이다. 최근에는 모든 사업장의 퇴직연금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퇴직금과 퇴직연금 제도가 함께 운용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 의무화를 추진하되 기업 규모에 따라 퇴직연금 도입을 300인 이상 대기업부터 시작해 5인 미만 사업장까지 5단계에 걸쳐 순차 적용하고, 국민연금·사학연금처럼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하는 개선 방안을 지난달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정부는 퇴직급여 가입 대상이 아닌 1년 미만 근속자도 퇴직급여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계속근로가 ‘3개월 이상’이면 퇴직급여를 지급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기금 형태로 운영되는 중소기업 퇴직연금(푸른씨앗) 가입 범위도 확대할 계획이다. 30인 이하 사업장인 가입 기준을 2027년까지 100인 이하 사업장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는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기사 등 플랫폼 종사자와 보험설계사 등 특고 종사자도 퇴직연금에 가입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늘어나면 적립금은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현행 제도에서도 퇴직연금 적립금이 지난해 말 431조7000억원에서 2037년 1000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퇴직연금 제도가 확산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퇴직연금 가입을 유도하지만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는 목돈을 받을 수 있는 퇴직금 제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플랫폼·특고 종사자는 보험료의 절반을 내야 하는 사업주가 난색을 보일 것이다.

최근 세제개편안에는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장기간 수령할 경우 세제 혜택이 확대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오래 받으면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가입자의 퇴직연금 수급권을 담보로 대출을 취급할 수 있게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도 검토하고 있다. 지금도 가입자가 퇴직연금 급여를 받을 권리를 사업자에게 담보로 제공할 수 있고, 사업자는 이를 담보로 한 대출이 이뤄지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퇴직연금 담보대출은 사실상 취급되지 않고 있다. 일부 은행이 관련 대출을 운영 중이지만 신용대출에 가깝다.

정부는 퇴직연금 수급권을 담보로 제공할 땐 수급권을 양도나 압류할 수 있다는 점을 법에 근거를 명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퇴직연금 수급권을 담보로 설정하기 위해선 관련 채권자(사업자 등)가 채권회수를 위해 양도·압류를 할 수 있어야 실질적으로 담보로서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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