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우의 정치眼] 정치·종교 공존의 열쇠, 시민사회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어 중 하나는 종교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정치 뉴스에서 종교인과 종교단체의 등장이 두드러지고, 종종 정치인의 종교적 신념이 명시적으로 읽히기도 한다. 특별검사팀이 김건희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헌법적 가치인 정교분리 원칙 훼손을 적시한 것도 정치와 종교가 엮여 있는 한 단면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에서 종교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헌법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한다. 이는 정치와 종교가 각자의 영역을 지켜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양자가 명확히 분리되기는 쉽지 않다.
이 사실은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잘 드러난다. 불교와 유교가 지배한 왕조 시대를 지나 일제강점기에는 종교계가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었고, 군사정권 시기에는 저항과 반공의 기치 아래 종교와 정치는 맞닿아 있었다. 오늘날에도 군종제도와 종교 공휴일, 정치인의 조찬기도회와 법회, 종교 문화재 관리와 종교인 과세 문제까지 종교는 정치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정치와 종교가 이처럼 경계를 공유한다면 종교인과 종교단체의 정치 참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무엇보다 종교계를 시민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는 국가처럼 군사력을 가진 것도 시장처럼 자본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자발적 결사와 수(數)의 힘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대중을 움직인다. 종교계 역시 신앙적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이 모여 형성한 거대한 결사체로 시민사회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지닌다.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는 민주화 과정속에서 조직력을 축적하며 성장해 왔다. 반면 보수 시민은 정당정치에 힘을 보태는 데 머물렀고, 본격적인 조직화는 2000년대 들어서야 시작되었다. 그러나 결집한 보수 시민단체들 또한 독자적 목소리를 내기보다 정당의 일부처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동원 대상이 되기 쉬웠다.
따라서 권력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자율성을 지닌 본연의 보수 시민사회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진보와 보수가 시민사회 안에서 균형 있게 공론을 형성하고, 종교계도 이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며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치 속 종교의 위치는 정치문화라는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정치문화는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형성되며 시민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토대가 된다. 우리 정치문화에는 민주화의 성취에서 비롯된 참여적·민주적 성향과 함께 유교적 전통과 권위주의 체제가 남긴 위계적 성향이 공존한다. 여기에 선거제도가 고착시킨 거대 양당 구도는 정당 간 이념의 거리는 좁히고 대신 타협하기 어려운 감정적 대립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권위주의를 보수주의로 혼동하여 갈등하고 일부 극단적 종교적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이 만들어졌다.
결국 정치와 종교는 결탁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사회를 매개로 만나 공존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인이 종교의 권위에 기대 지지층을 얻고자 할 때 정치적 절제를 떠올려야 한다. 더불어 종교인은 정치의 힘을 빌려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할 때 사회적 합의와 보편적 언어를 수용하는 신앙적 겸손을 발휘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정치의 공공성과 종교의 도덕적 신뢰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