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배우들 사랑’ 독차지한 男배우, 39세로 요절… 오늘(20일) 3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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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 임성민(본명 임관배)이 대중 곁을 떠난 지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956년생인 임성민은 1976년 영화 '마지막 밤의 탱고'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대중 앞에 처음 얼굴을 비쳤다.
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대중은 물론 연예계 동료들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임성민은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중의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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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 임성민(본명 임관배)이 대중 곁을 떠난 지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늘(20일)은 임성민의 사망 30주기다. 그는 1995년 8월 20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지병을 앓고 있던 간경화로 생을 마감했다. 39세의 젊은 나이로 대중에게 이별을 고했다.
1956년생인 임성민은 1976년 영화 ‘마지막 밤의 탱고’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대중 앞에 처음 얼굴을 비쳤다. 이후 1977년에는 TBC 18기 공채 탤런트로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180cm의 큰 키와 건장한 체격, 잘생긴 외모로 눈길을 끈 임성민은 성실함까지 갖춰 더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연기에 대한 열정, 몰입감을 높이는 연기력까지 갖춘 스타로 TV뿐만 아니라 스크린에서도 주목받았고, 1980~1990년대의 대표 미남 스타로 활약했다. 특히 고 최진실, 김희애 등 당시 최고 여배우들과 함께 주연을 맡으며 뜨거운 인기를 증명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영화 ‘색깔있는 남자’, ‘무릎과 무릎 사이’, ‘사의 찬미’, ‘나는 생각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등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또 드라마 ‘노다지’, ‘야망의 세월’, ‘사랑의 굴레’, ‘억새바람’, ‘폭풍의 계절’ 등 다채로운 장르를 오가며 굵직한 작품에서 완성도 높은 연기를 펼쳤다.

그는 1986년 영화 ‘장사의 꿈’을 통해 제2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에서 신인 연기상을 수상했고, 1991년에는 영화 '사의 찬미'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그의 호흡력 짙은 연기를 인정받았다.
30대에 접어들며 더 성숙한 연기를 선보이던 임성민은 지병을 앓고 있던 만성간염이 간경화로 이어져 쓰러졌고, 요절하며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 시대의 톱스타 김희애·김혜수·이영애와 함께 주연으로 활약했던 MBC 드라마 ‘사랑과 결혼’은 그의 유작이 됐다.
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대중은 물론 연예계 동료들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배우 안성기 역시 한 인터뷰를 통해 “그가 살아있었다면, 나와 박중훈의 사이에 있는 배우로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그가 떠나서 남자배우 세대의 공백이 생겼다”며 안타까움을 전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임성민은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중의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서혜주 온라인 뉴스 기자 hyejud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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