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단에서 흔들릴때마다 이정표가 되어주신 나의 스승님[고맙습니다]

2025. 8. 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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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 고교 1, 2학년 담임 선생님

“반장 나와.”

“점수가 이게 뭐냐? 그리고 반장이 돼갖고 너만 공부하면 되냐?”

딱 딱 딱 딱 딱, 손바닥 다섯 대를 맞았다. 대걸레 자루로 후려친 자리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뼛속까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왜 맞아야 하는지 억울했다. 매 자리만큼 내 마음이 여물기에는 한참이 걸렸다. 이맘때면 더욱 생각나는 선생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수학 과목을 담당했던 그분은 1, 2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중간고사 성적이 나쁘다고 단체로 매를 맞고 해 질 녘까지 손 들고 벌을 받았다. 반장이라고 급우들 공부까지 챙겨야 하는지 곱씹으며 한동안 씩씩거렸다. 얼마 동안은 선생님과 마주치는 것도 불편했다. 조회와 종례 시간에 차렷, 경례의 구령과 인사도 선생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칠판을 보고 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교문을 나설 때였다. 사방은 어둑하고 뱃속에서는 쪼르륵쪼르륵 소리가 요란했다. 친구들도 배가 고프다며 서로 비비고 징징대며 두셋씩 짝을 지어 걸었다. 뒤에서 달려 나오던 한 친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나를 기다리신다고 했다. 또 맞을 일이 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 보니 구령대 앞에 선생님이 서 계셨다. 커다란 나무 같았다. 어둠 속에서 부드러운 달빛을 받은 선생님의 얼굴도 보름달이었다.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선생님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학교 뒤편의 허름한 중국집으로 이끌었다.

“아직 손바닥 아프냐?”

“일부러 너 공부시키려고 2학년에 데리고 올라왔다. 학교에서 너를 많이 믿고 있는데 좋은 대학 가야지.”

선생님은 넌지시 내 손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고 형평성에 비추어 그런 이유라도 대서 나를 채근하고 싶었노라고 했다. 그날 어룽거리던 눈물로 희부옇게 흐려진 짜장면은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지역 내 명문고를 찾아가기는 버거웠다. 출신 중학교와 같은 재단인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3년 장학생의 혜택을 제안했다. 식구들과 상의도 없이 그 권유를 받아들여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3년 장학생이라는 유혹은 경제적 압박에서 자유롭게 했다. 반면에 공부할 의욕이 전혀 없었다. 그럭저럭 허송세월하던 내가 선생님 눈에 보였나 보다.

“학교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나는 네가 잘되면 좋겠다.”

두어 잔 약주가 들어가 아버지가 되어버린 선생님, 그윽이 바라보는 그분의 눈빛에는 거스를 수 없는 간절함이 들어 있었다. 갓길을 기웃대는 새끼를 향한 어미 소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선생님의 곡진했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나를 나무랄 때도 천천히 말을 더듬으며 안타까워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훗날 내가 교단에 설 줄 아셨을까, 사표(師表)의 속긋까지 보여주고자 그리 애를 쓰셨나 보다. 내가 교단에서 흔들릴 적마다 선생님과의 기억은 내 길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그럼에도 중요한 깨달음은 늦게야 찾아온다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 적이 없으니 송구할 따름이다. 시간이나 지리적 한계 등 핑계 아닌 핑계를 댔을 뿐이다. 오래전 남편이 취업할 때는 여학교의 교단에는 서지 말라는 억지 주장도 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제자로서의 잣대를 엉뚱한 곳에 들이댄 것이다.

오늘 아침, 20여 년 전 졸업한 남편의 제자가 다녀갔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길을 달려 청라에서 왔다. 친정집처럼 해마다 몇 차례씩 아이들과 남편까지 앞세우고 찾아오는 그녀가 내 눈에는 부처님 같다. 직장 생활이며 육아, 부동산 문제까지 스스럼없이 웃어가며 이야기하는 그녀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녀를 움직이는 마음속 나침반은 천사의 그것이라도 되는 걸까.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그녀가 오늘도 나의 스승이 된다. 이제는 우리가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그이에게 힘주어 말한다. 파도처럼 출렁대는 나의 심사를 애먼 데 털어내는 것이다. ‘나도 그녀처럼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는 나는 그런 그녀가 참으로 예쁘다.

그녀가 온다는 소식에 일찍부터 몇 가지 과일을 깎아 예쁜 그릇에 담고 김치전을 부쳤다. 가을에 담아둔 달달한 모과청을 우리고 내가 좋아하는 컵들을 끓는 물에 헹궜다. 어린 머윗잎으로 담근 피클과 몇 가지 찬거리도 곱게 포장하고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 몇 권 책값도 산뜻한 봉투에 담았다. 아껴두었던 것을 찾아 여전히 두리번거리는 내 마음을 선생님은 아실까.

“선생님, 선생님께 드려야 할 마음을 이렇게 대신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변명희(수필가·서예문인화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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