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유교 걸’만 존재하는 나라였을까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5. 8. 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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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지금부터 조선 젠더사

하여주 지음, 푸른역사 펴냄

“여성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모자란 인간이다.”

조선은 ‘유교 걸’만 존재하는 나라였을까. 사극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조선 여성들은 정말 유교적 젠더 규범을 순순히 따르면서 순종적인 삶만 살았을까. 그럴 리가 있나. 이 책에 따르면, 머리에서 발톱까지 유교 규범으로 무장한 조선 남성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사회경제적·성적 권리와 권력을 쟁취하고 계속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그러나 여성들도 만만치 않았다. 유교적 젠더 규범에 일정 부분 타협하는 동시에 자신의 출신 가문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힘들게 남편과의 별거를 성취했으며, 한때 전국적 유행 열풍을 일으킨 흡연 문화에 끼어들어 ‘젠더 질서’를 깨뜨렸다. 저자는 이런 조선 여성들의 모습을 ‘은밀히 전쟁을 수행하는 주도면밀한 전략가’에 비유한다.

 

너에게 쓴다

천양희 지음, 창비 펴냄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천양희 시인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60년, 한국 시단의 거목이 되었다. 이번에 자선 시선집 〈너에게 쓴다〉를 출간했다. 시인이 뽑은 61편은 대체로 짧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시편을 들여다보면 삶이 시가 되는 시인의 여정을 엿볼 수 있다. 삶에 대한 통찰과 예지가 반짝인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는 표제시 구절에서 60년 시력(詩歷)의 태도를 읽는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나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쓰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눈물을 보탠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나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은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짧지만 긴 여운을 보내는 것이다”라고 썼다.

 

엑소더스 재팬

이성범 지음, 생각정원 펴냄

“일본은 안전하지만, 제 미래는 위험합니다.”

기자가 되고 가장 막막했던 일은 어떤 아이템을 기사로 쓰고 싶은지 간략하게 적어 공유하는 발제였다. 한 선배는 이런 ‘꿀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일본에서 나온 번역서를 유심히 봐봐. 일본에서 유행하거나 문제가 된 건 10년 뒤에 똑같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거나 문제가 되거든.” 그 선배의 조언을 떠올리면 〈엑소더스 재팬〉이라는 이 책의 이름은 〈엑소더스 코리아〉처럼 읽히기도 한다. 2024년 10월31일 KBS 프로그램 〈다큐 인사이트〉에서 방영된 ‘재팬 엑소더스’를 찍었던 이성범 PD가 저자다. 약 3년 동안 도쿄 특파원을 지내며 일본 전역을 누빈 그의 촘촘한 취재력이 돋보인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

대니얼 깁스·터리사 H. 바커 지음, 정지인 옮김, 더퀘스트 펴냄

“나의 진단은 사적인 일에서 공적인 일이 되었다.”

수많은 치매 환자를 치료했던 30년 경력의 신경과 의사인 저자에게도 어느 날 치매가 찾아왔다. 알츠하이머병이라니,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겠지만 일찌감치 병을 발견한 건 큰 행운이었다. 알츠하이머병의 ‘내부자’가 된 저자는 우리가 이 병에 대한 두려움과 낙인에 너무 오래 집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병의 최종 단계에만 골몰해온 것이다. 조기 진단과 치료를 통해 삶의 의미 있는 시간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왜곡된 담론을 바로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시기를 놓치기 전에,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질병을 겪는 와중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설탕 전쟁

최광용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설탕은 명실상부 고대 인도인들의 ‘발명품’이다.”

전작 〈향신료 전쟁〉에서 서양 열강이 향신료 쟁탈을 위해 분투하는 가운데 세계가 일대 전환을 맞는 과정에 주목했던 저자가 이번엔 설탕을 탐구했다. 향신료 말고도 인류 문화와 역사를 송두리째 바꾼 게 설탕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사탕수수를 발견하고 재배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설탕 산업의 중심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좇는다. 17~19세기 차·커피·초콜릿 등 기호품이 들어오면서 유럽에서 설탕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설탕을 향한 욕망이 제국주의와 만나는 여정을 좇다 보면 흑인 노예의 역사와 조선인의 하와이 이민까지 만나게 된다. 달콤한 설탕에 가려진 세계사가 씁쓸하게 펼쳐진다.

 

평화를 여는 역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역사를 국가의 울타리로 가르지 않고 보다 넓은 시선으로 과거에 눈길을 보냈으면 합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학자들이 함께 펴낸 근현대사 책이다. 동아시아와 ‘서양’의 첫 만남부터 현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까지 150여 년의 사건들을 다뤘다. 이 시기 3국의 역사는 서로 밀접하게 겹쳐 있지만 그 관점은 첨예하게 갈린다. 사실관계에 대한 합의조차 어려운 지점이 많다. 한국 독자로서는 중국과 일본 양국의 생각을 ‘아는’ 것부터 새롭다. 예컨대 청일전쟁을 ‘의로운 전쟁’으로 규정한 후쿠자와 유키치, 제1차 세계대전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 등이 그렇다. 현대사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미군기지나 학벌주의, 미투운동 등은 ‘광복 이후’라는 프레임으로 포괄할 수 없는 공동의 역사다. 진정한 미래 지향적 3국 관계를 위해 짚어볼 만한 내용이 많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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