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환경기본계획을 통해 배우다

김소은 2025. 8. 20. 08:2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제주를 보다] ⑥ 어떤 제주를 남길 것인가

제주는 '섬'이다. 그래서 지속 가능성을 얘기할 때는 늘 개발과 보존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섬나라 뉴질랜드는 산악, 호수, 해안선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등 제주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김소은 THE 관광연구소 대표가 안식년으로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 '관광 1번지'를 지향하는 제주가 참고할 만한 뉴질랜드의 사례를 가지고 독자들과 비정기적으로 만난다. [편집자 글]

뉴질랜드의 Environment Aotearoa 2025

제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이 섬은 자연과 공동체, 문화와 생태가 교차하는 복합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관광객 증가와 개발 압력 속에서 환경 보전은 늘 뒤로 밀리기 쉽다. 환경정책은 단순히 생태적 차원을 넘어, 한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 전략을 담아내는 핵심적 기준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주가 어떤 환경적 철학을 갖고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답을 찾는 일이다.

뉴질랜드의 환경기본계획(Environment Aotearoa 2025)은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마오리어로 뉴질랜드를 일컫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는 '길고 흰 구름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다. 그 이름이 가지는 서정성처럼 기본계획에서는 자연ㆍ사회ㆍ문화를 아우른 통합적 성찰을 담고 있다. 육지, 해양, 담수, 대기, 기후라는 다섯 개 영역을 중심으로 3년마다 정책을 수립하며, 현안 진단을 넘어 국가적 정체성과 공동체적 책임을 담고 있다. 특히 축산업과 농업에 기반한 국가 특성을 반영해 토지이용 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루며 사회ㆍ경제적 영향까지 고려하여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마오리 세계관이 정책 전반에 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연을 조상과 후손을 잇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철학은 단순한 자원 관리의 차원을 넘어 생태와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한다. 마오리의 'Whenua(땅)'는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태반을 의미하며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이 철학은 보고서 전반에 반영되어 환경정책이 단순한 자원 관리에서 벗어나 공동체, 문화, 미래 세대와의 관계 회복까지 실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의 환경계획과 구별되는 특징이며, 제주도의 환경정책에도 시사점을 준다.

제주도의 환경정책, 생태적 정체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제주도의 환경정책은 다양하지만 흩어져 있다. 환경보전기본계획, 탄소중립기본계획, 스마트그린도시, 플라스틱감축전략 등 다양한 관점의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계획은 대부분 각각의 주제별로, 독립적으로 수립되어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전략을 찾기에는 한계가 있다. 뉴질랜드는 다섯 분야를 하나의 종합보고서 안에 담아냈지만, 제주도는 탄소중립, 수질, 폐기물, 에너지 등 각각의 목표가 별도의 계획에 따라 수립된다. 예컨대, 탄소중립 전략은 에너지와 교통을 중심으로, 환경보전계획은 수질ㆍ폐기물ㆍ대기 등 개별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지만, 서로 간의 연결성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뉴질랜드는 농업과 토지이용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두지만, 제주는 관광개발ㆍ지하수ㆍ폐기물 관리가 핵심 현안이다. 두 지역 모두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토지와 수자원이 중요한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뉴질랜드는 마오리 철학을 정책 전반에 반영해 생태적 정체성을 강화하지만, 제주는 해녀 문화나 곶자왈, 오름, 돌담과 같은 고유한 생태문화가 정책적 수사에 등장할 뿐 지역 사회 공동체 참여를 충분히 끌어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문화유산으로서 보존해야 할 영역과 생태정책으로서 관리해야 할 영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섬 간에는 역사적 배경과 사회문화적 조건의 차이가 있지만, 아쉬운 대목임은 분명하다.

정책을 현실로 만드는 손길이 필요하다

뉴질랜드의 환경부는 정책 설계 역할을 담당하지만, 실질적 집행 권한은 제한적이다. 실제 집행은 지방정부(Local Councils)나 보존부(Department of Conservation)가 담당한다. 보존부는 독립된 정부 부처로서, 총 25개의 환경 관련 법률을 직접 집행한다. 특히 보존부는 자연 및 문화유산 보호, 보호지역 관리, 대중 참여 및 여가 활동 지원, 법 집행과 규제 관리, 지역사회 및 마오리 공동체와의 협력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뉴질랜드의 생태적 정체성과 지속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핵심 기관으로 기능한다. 지방의회와 협력하여 국립공원과 보호구역 운영, 멸종 위기종 복원,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단순한 행정 집행을 넘어 공동체와 자연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강화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세익스피어 공원과 해변 전경. 캠핑장과 공원, 오름과 같은 산책로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김소은(https://www.tiakitamakimakaurau.nz)
일례로 보존부는 오클랜드 북동부에 위치한 세익스피어 공원(Shakespeare Park)과 인근 해변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한다. 이곳은 오클랜드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자연보호구역(Open Sanctuary) 중 하나로 경계에는 포식자 차단 울타리를 설치해 토종 생물을 번식ㆍ보호하며, 방문객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원내 농장, 캠핑장, 산책로 등 인프라를 운영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토종 식물 복원, 해양 생물 모니터링,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일반 방문객의 여가공간이자 주민들의 생태활동 공간으로 생태자원을 관리하고 있어, 보호구역이라면 출입을 통제하는 우리와는 다른 관리방식이다.
세익스피어 공원 출입구 차단벽. 외래종 유입 방지를 위해 애완견 출입이 제한되며, 방문객 수용력을 관리한다. /사진=김소은

방문객들은 자유롭게 캠핑을 하거나 피크닉을 즐길 수 있으며, 생태 해설을 받을 수 있다. 해변에서는 조류 서식지 보호 활동이나 조류 관찰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다. 지역 학교와 협력한 청소년 생태교육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된다. 이러한 사례는 환경정책이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자연 사이의 연결을 회복하는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제주를 남길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

뉴질랜드의 사례처럼 환경정책은 단순한 규제나 보고서에 머물지 않고, 주민과 방문객이 여가활동과 함께 지역 생태를 복원하고 보호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반면 제주도는 행정 중심 구조와 권한 분산(환경부ㆍ산림청ㆍ문화재청 등) 등으로 이러한 실천적 연결에 한계가 있다. 또한 지역 생태문화의 제도적 반영을 강화하고, 시민 참여를 확대하며, 실질적 집행력을 가진 행정 주체를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다. 뉴질랜드처럼 철학적 통합과 공동체 협력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환경 거버넌스는 제주도에도 실질적 집행력과 시민 참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참고될 수 있다.

뉴질랜드의 환경기본계획은 환경을 단순한 자원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국가 정체성과 공동체적 책임을 반영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관점은 환경정책을 단순히 '보호'의 차원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삶과 미래를 구성하는 핵심 가치로 격상시킨다. 환경을 통해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를 정의하는 접근인 것이다. 

제주도 역시 지역 생태문화의 제도적 반영과 시민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며, 환경을 지역 정체성과 미래전략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기본계획을 통해 제주도민과 후손이 함께 살아갈 터전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뉴질랜드가 보여주듯 환경은 국가와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준이자 공동체가 공유하는 책임의 영역이다. 제주도 역시 이러한 시각에서 미래 환경 전략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김소은

제주에서 10여년을 살다 뉴질랜드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 지속가능한 관광, 생태관광, 람사르습지 보전, 해양관광 자원 발굴 등과 관련한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으며,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대학때부터 관광경영학을 전공하였으며, 석박사 과정에서 관광경제, 마케팅, 관광객 행동 등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현) THE(Think for Human & Earth) 관광연구소 대표, 섬연구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