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바친 기술로 제품 만들고, 노하우 이어갈 글로벌 인재 키우겠다"

신혜정 2025. 8. 2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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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새로운 변화 시도하는 현장
차세대 기술인재 양성 주역인 교수들
한창 물오른 50대 중반부터 정년 불안
인재 해외 유출 부추기는 요인 되기도
정년 미리 연장하는 포스텍의 첫 실험
"대학·기업에 긍정 영향과 자극되길"
편집자주
기술인재들은 일할 곳이 없다며 외국으로 가고, 기업은 뽑을 사람이 없다며 해외에서 데려오려 한다. 정부 대책들은 뚜렷한 효과가 안 보인다. 한국일보는 기술인재를 둘러싼 이 '미스매치' 현상을 3회에 걸쳐 심층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포스텍의 '정년 연장 조기결정 제도'에 선발된 교수들. 왼쪽부터 정운룡 신소재공학과, 한욱신 컴퓨터공학과, 민승기 환경공학과, 이현우 물리학과 교수. 포스텍 제공

“정년 연장이 일찍 결정된 덕분에 그동안 연구하던 휴머노이드용 피부 기술을 사업화까지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정운룡(53)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차세대 전자소재 개발의 선두주자다. 사람 피부에 붙여도 불편함이 없는 소재를 웨어러블 전자기기에 접목해오던 그는 2022년 촉각 센서가 있는 ‘전자 피부’를 개발했다. 이 기술만 있으면 로봇도 사람처럼 시각 정보 없이도 주변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끝까지 연구해 제품화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학교가 시작한 ‘정년 연장 조기결정 제도’의 첫 대상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목표를 계속 추진해볼 용기가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포스텍은 지난달 국내 대학 최초로 만 50세 전후 우수 교원의 정년을 '미리' 70세까지 연장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며 차세대 기술인재를 키우는 교수들이 정년 불안 없이 연구와 후학 양성에 몰입할 환경을 만든다는 취지다. 올해는 정 교수를 포함해 4명이 선정됐고, 점차적으로 65세 정년이 보장된 교원의 30%까지 조기 연장 대상을 늘릴 예정이다.

정운룡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전자 피부가 투명 판 위에 펼쳐져 있고, 손가락 모형에 휘어져 부착돼 있다. 포스텍 제공

교수 연구 확대될수록 기술인재 경력 쌓여

교수 정년은 65세지만, 연구 수명은 사실상 60세에 끝난다. 정년을 앞두고 4~7년 전부터 박사과정 학생을 받지 않고 연구실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이공계 인재들이 학위를 마치고 교수에 임용되는 나이가 마흔 전후다. 오랫동안 갈고 닦은 전문성을 활용하는 기간은 결국 20년에 불과한 것이다. 빅데이터 전문가로 고성능 그래프 분석엔진 개발 성과를 인정받아 정년이 연장된 한욱신(53)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연구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생산성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가 50대부터라 기존 정년으론 활약하는 시기가 사실상 10년 정도뿐"이라고 했다.

이런 현실은 기술인재의 해외 유출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젊은 인재들은 기업 대신 학교를 택해도 안정적으로 꿈을 펴기 어렵다 여기고, 50대 중반 교수들은 전문성이 최상인 시기에 해외 이직을 고민한다. 우수 교수의 정년 연장이 인재 양성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수가 더 도전적이고 규모가 큰 연구를 할수록 석·박사들 경력도 쌓인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극한 물순환 분야 석학 민승기(52) 환경공학부 교수는 “국제 공동연구일수록 10년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가 많아 정년이 임박하면 선뜻 참여하기 어려웠다"며 “조기 연장 덕에 학생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울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내가 개척한 오비트로닉스 후계자 양성"

정년이 연장된 교수들은 산업계가 탐낼 만한 연구를 더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현우(55) 물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개척한 분야를 더 키울 참이다. 그는 20년간 차세대 반도체 공학 분야인 스핀트로닉스를 연구해왔다. 전자가 자석처럼 회전하는 성질인 ‘스핀’을 활용하는 기술인데, 이 과정에서 전자의 궤도 운동으로 생기는 전류를 다루는 '오비트로닉스' 분야를 만들어 빠르고 에너지 효율적인 차세대 소자를 개발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 분야가 두각을 나타낸 게 불과 3~4년 전부터라 정착시키기에 촉박했다”며 “시간이 더 주어졌으니 우리나라가 주도한 이 기술의 후속 세대를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기술인재의 사회적 위상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교수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 교수는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줘야겠다는 부담이 생긴다”고 했다. 정 교수는 “요즘 제자들과 얘기해보면 엔지니어나 연구자가 힘들다 생각하고 희망을 못 갖는 경향이 크다”며 “이번 시도가 대학과 산업계에 긍정적인 영향과 자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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