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기업인 애썼다”면서도 反기업법엔 동의… 헷갈리는 재계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대통령실에서 재계 총수들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대미) 관세 협상에서 우리 기업인들이 애를 많이 써줘서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며 사의를 표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했다.
이 대통령에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취임 후 맞이한 가장 중요한 시험대다. 결과가 나쁘지 않아야 통상·외교·안보 분야에서 부담을 덜고 국정 운영에 집중할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날 ‘미·일 순방 동행 경제 단체 및 기업인 간담회’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도 이런 사정이 반영됐다.
이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에 동행하는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많이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한미 양국은 상호 관세율을 15%로 정하고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간접 투자)를 조성하기로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별도의 직접 투자(공장을 짓는 그린필드 투자)도 요구하기 때문에 나온 발언이다. 이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와 별개로, 기업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재계에 따르면, 최근 대통령실은 각 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 등을 취합했다고 전해진다. 이날 간담회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가 가진 ‘카드’를 재점검한 자리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 “한국은 그들의 투자 목적으로 거액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며 “총액은 향후 이재명 대통령이 양자 회담을 위해 백악관에 올 때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거액의 투자는 직접 투자를 의미한다.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은 이미 미국 내 공장 건설과 증설을 추진 중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동안 4대 그룹의 대미 투자 규모만 최소 120조원으로 추산된다. 기업으로서는 현재 진행 중인 투자 외에도 추가 투자 목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방미에 동행하는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이다. 현대차에서는 현재 미국 출장 중인 정의선 회장을 대신해 장재훈 부회장이 나왔다. 조선, 반도체, 자동차, 방산, 바이오, 에너지 분야 기업인들이 두루 포진한 셈이다. 한경협이 주도하는 방미단에는 15개 정도의 기업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정부의 파트너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대미 투자와 별개로, 국내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관련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대기업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 대통령은 이날 노란봉투법과 2차 상법 개정안에 대해 “선진국 수준으로 맞춰가야 할 부분도 있다”며 동의 입장을 밝혔다. 두 법안에 대한 우려에 대해 이 대통령은 “피해 가거나 늦추는 건 답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재계에서는 “대통령실이 아쉬울 때 기업을 부르면서, 여당이 경영 활동을 옥죄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방관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로 영업 이익이 상당 폭 감소하는데 대미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기업으로서도 상당한 리스크”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등 재계 우려 법안에 대해선 속도 조절도 검토했지만 당의 요구가 큰 상황에서 당정 엇박자로 비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고 했다.
한편, ‘3500억달러 펀드’를 둘러싼 대미 협상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3500억달러 투자 펀드 가운데 1500억달러는 ‘한미 조선 협력 펀드’로 투자처 결정 등에 한국이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질 수 있지만, 2000억달러 규모의 ‘첨단 산업 대미 투자 펀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은 투자처를 미국이 결정할 수 있고, 수익의 90%는 미국에 귀속된다고 주장한다. 3500억달러 조달도 문제인데 정부는 보증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기업별 기여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태다. 직접 투자에 더해 펀드 조성까지 기업이 떠맡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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