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로봇 올림픽이란 촌극

박한슬 약사·‘숫자한국’ 저자 2025. 8. 2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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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탁구 로봇 개발 소식을 접했다. 2016년 ‘알파고’로 이세돌을 꺾었던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이번엔 탁구를 정복하겠다며 로봇을 내놓은 건데, 중국은 여기서 한술 더 떠 세계 최초의 ‘로봇 올림픽’까지 열었다. 사람을 닮은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가 달리기와 복싱, 심지어는 협력이 필요한 축구까지 한다. 인간의 지성(知性)을 모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체의 움직임까지 모방하는 물리적 인공지능(physical AI)으로 넘어가겠단 선언이다.

그 소식을 들으니 중학교 시절 탁구를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몸 쓰는 데 젬병이었던 나는 서브 하나 제대로 넣는 데도 애를 먹었고, 상대 서브를 받아내는 건 더더욱 서툴렀다. 소년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빠르게 공을 쏴주는 탁구 기계와 대련을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기계가 쏘는 공을 쳐낼수록 탁구에 대한 흥미가 식어갔다. 내가 아무리 실력이 늘어도 정확한 각도와 속도로 공을 쏴주는 기계의 서브보단 못할 텐데, 탁구를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 결국 탁구 연습은 그만두고 말았다. 그런데 이젠 아예 로봇 올림픽이 열린다니, 스포츠 분야 전반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진 않을까.

나는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 생존 수기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고야, 그때 탁구를 그만둔 게 몸치 소년의 치기 어린 합리화였단 걸 깨닫게 됐다. 바둑 같은 두뇌 스포츠는 물론이고 탁구 같은 육체 스포츠도 기계를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서다. 인간됨의 본질은 불완전한 신체와 의지를 안고도 끝내 인간만의 성취를 이룩해내는 데 있다. 인간을 말살하는 수용소에서도 레비는 매일 몸을 씻었다. 위생이 아닌 수신(修身)을 위해서다. 단순한 탁구 기계에도 패배한 내가 말하는 게 우스울 수는 있어도, 수련용 탁구 기계를 대련용이라 여긴 것부터가 잘못이다. 탁구 기계를 상대로 삼아 계속 연습을 했다면 탁구 챔피언은 못 됐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보단 탁구를 잘 쳤을 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알파고가 이세돌과 대결을 벌였다고 여긴 것도 환상일지 모른다. 전자계산기와 주산(珠算) 전문가가 대결을 벌인다는 게 말이 되나. 바둑이라는 두뇌 스포츠의 상징성 때문에 의미가 과장됐을 뿐, 본질은 탁구 기계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바둑 기사들이 AI의 바둑 기보를 배워 학습하듯, 수련 도구로 삼으면 될 일이었다. 도구를 경쟁 대상으로 삼는 미련한 태도로 인간을 애써 패배자로 만들 이유가 뭘까. 언젠가 기계가 인간보다 스포츠를 잘한다면, 그때도 기계를 통해 배우면 된다. 로봇 올림픽이란 말이 우스울 뿐이다. 불완전한 인간의 향상심 없이, 올림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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