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인턴십한 한국 여고생들

발도르프(독일)/정철환 특파원 2025. 8. 2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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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여자상업고 권서연·임채린양
“좋은 대학보다 해외 진출이 목표”
기업은 “AI 세대 만나 혁신 영감”
천안여상 임채린(왼쪽), 권서연(오른쪽) 학생이 지난 8일 독일 발도로프 SAP 본사에서 열린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해 실습을 하고 있다. /발도로프(독일)=정철환 특파원

“물류 분야의 세계적 기업에서 일찍 경험을 쌓고 싶어요.”(권서연)

“1학년 때부터 해외 취업을 목표로 독일 인턴십 준비를 했습니다.”(임채린)

지난 8일 독일 남서부 발도르프에 있는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 SAP 본사 캠퍼스. 방학을 맞은 독일 고등학생 수십 명이 회의실과 실습실을 오가며 인턴십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서 독일어로 활발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한국 학생 두 명이 눈에 띄었다. 천안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권서연(18)·임채린(18) 학생이다.

중·고교부터 직업 교육을 중시하는 독일에서 SAP 같은 대기업의 고등학생 인턴십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한국 고교생이 이 프로그램에 초청된 것은 처음이다. SAP 본사 측은 “글로벌 산학 협력 차원에서 각국 고교생을 조금씩 초청하고 있다”며 “한국에도 독일 인턴십에 관심 있는 학교와 학생들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했다.

두 학생은 이날을 위해 3년간 준비했다. 임채린 학생은 “입학할 때 독일 인턴십 기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꼭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곧장 해외 인턴십 동아리에 가입하고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는 서울까지 찾아가 독일어 교사를 섭외해 주는 등 적극 지원했다. 권서연 학생은 “처음 배울 땐 눈물이 날 만큼 힘들었지만, 매일 외우고 반복해 독일어 중급(B1) 인증을 땄다”고 했다.

두 학생의 목표는 ‘좋은 대학 진학’이 아니었다. 임채린 학생은 “졸업 후 바로 해외에서 기회를 찾고 싶었다”고 했다. 권서연 학생도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움직이는 게 좋다”며 “물류 분야 글로벌 기업에서 빨리 경험을 쌓아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2주간 기업 현장을 재현해 놓은 실습장에서 재고·결제·고객 경험 관리를 직접 체험했다. 저녁엔 독일 친구들과 배구 시합을 하며 어울렸다.

천안여상 임채린(왼쪽), 권서연(가운데) 학생이 지난 8일 독일 발도로프 SAP 본사에서 열린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독일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다. /SAP 제공

굳이 독일을 목표로 한 이유도 있었다. 두 사람은 “학교 공부와 기업 근무를 병행하는 이원화 직업 교육 과정(Ausbildung·아우스빌둥) 과정이 훌륭해 보였다“고 했다. 교육 기관에 적을 두고, 회사를 다니면서 일과 공부를 함께할 수 있는 독일 특유의 방식이다. 천안여상의 경우, 이미 이런 커리어 코스를 밟아 독일에서 취업한 학생들이 여러 명이다.

SAP는 기업 경영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수십 년째 세계 1위인 기업이다. 시총이 약 3300억달러로, 삼성전자(3400억달러)와 맞먹는다. 글로벌 100대 기업 중 98곳, 삼성전자·현대기아차·SK하이닉스·LG 등이 SAP 시스템을 사용한다. 이런 세계적 기업이 해외 고등학생을 불러 인턴십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SAP 측은 인턴십에 참여하는 고등학생들을 ‘인공지능(AI) 세대’라고 불렀다. 마르쿠스 마르쉬 SAP 부사장은 “요즘 기술은 몇 년, 몇 달이 아니라 몇 주 단위로 변한다”며 “AI 세대와 현업이 만나면 관점이 달라지고 속도가 붙는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20~30대보다 빠르게 AI를 체화하는 10대들로부터 혁신의 영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에게도 큰 메리트가 된다. 세계적 기업의 인턴십을 경험한 만큼, 자연히 몸값이 오른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청년 취업 시장을 대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경험을 갖출 수 있다. 마르쉬 총괄은 “SAP만이 아니라 파트너·고객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의 고용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학교도 이러한 산학 협력 생태계의 변화에 적응해가고 있다. 천안여상은 2007년부터 해외 인턴십 기회 확대에 애써왔다. 외국어와 소프트웨어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엔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협약형 특성화고’로 지정되기도 했다. 인턴십 과정에 동행한 박정아 교사는 “졸업생의 70~80%가 취업에 성공하고, 국내 대기업이나 해외 기업에 진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신은영 SAP코리아 대표는 “한국의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도 본사 인턴십 참여 기회를 제공하게 돼 기쁘다”고, 김지철 충남교육청 교육감은 “이번 사례가 전국 직업계고 학생을 위한 산학협력 모범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신태귀 천안여상 교장은 “지역 사회를 넘어서 글로벌 비즈니스 인재를 키워 나가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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