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84] AI로 부활한 ‘듀스’처럼

1990년대를 상징하는 K팝 아이콘은? 그 시절 ‘K팝’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가요였다. 다만 가요가 K팝으로 진화를 시작한 순간은 존재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신인 가수 평가 프로그램에서 ‘난 알아요’를 처음 부른 순간은 분명 K팝의 시작이었다.
나에게 한 순간을 더하라면 ‘듀스’의 데뷔 무대다. 그들이 ‘가요톱텐’에서 ‘나를 돌아봐’를 부르는 순간 모든 게 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가요를 무시하고 외국 팝 음악만 듣던 사대주의자 고등학생이었다. 밥솥은 일제, 칼은 독일제, 음악은 미제가 최고라던 시절이다. 듀스를 본 순간 나는 K팝의 미래를 보았다. 과장이다. 과거를 회고할 땐 모두 예언자 행세를 한다.
멤버 김성재의 의문사는 듀스를 1990년대에 박제했다. 그거로 끝이었다. 아니었다. 새로운 세대가 계속 듀스를 재발견했다. 김성재는 죽은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남았다. 2009년에는 그를 모델로 청바지 광고도 나왔다.
얼마 전 이현도가 듀스 4집 제작을 발표했다. 김성재 목소리를 AI로 되살려 신곡을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유족 동의도 구했단다. 청바지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부활이다. 광고가 분신사바라면 이건 강령술이다.
작년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영화계에 논쟁의 불을 지폈다. 1979년 작 ‘에이리언’에서 이언 홈이 연기한 캐릭터를 되살린 것이다. 이언 홈은 2020년 작고했다. 제작진은 유족 허락을 받고 AI로 그를 재생했다. 관객들은 불편해했다. 그건 배우가 아니었다. 유령이었다.
기술 발전은 윤리와 충돌한다. 가능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해도 좋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어디 그런가. 우리는 선악과를 따 먹은 순간부터 가능한 것은 뭐든 다 해보는 변치 않는 습성을 갖고 있다. 모두가 죽지만 누구도 죽지 않는 시대가 온다. 어쩌면 이건 기회다. 나는 죽은 후에도 이 칼럼을 계속 연재해 고료를 챙길 수 있다. 협상을 다시 해야겠다. 다음 호 연재가 보이지 않는다면 협상은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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