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국 가교 역할 꾸준히 이어나가겠다"

김중걸 기자 2025. 8. 1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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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사람]
김영재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 회장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 창립
학생들과 통화정책 대회서 3위
양국 경제 성장 "지자체·정부·기업 협력 필요"
퇴임 후 학생금융 교실 운영 희망
김영재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이자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 회장이 포럼 활동 설명, 퇴임 후 계획 등을 밝힌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부산차이나비즈니스(BCBF) 창립 주도

"정치·외교적으로 갈등이 있더라도 경제 협력의 끈은 이어져야 합니다."

김영재(金榮載)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 회장(65)은 한·중 경제교류의 중요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09년 부산대 중국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중국과의 교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이후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을 창립해 10년 넘게 지역 경제 외연을 넓히는 데 앞장서 왔다.

김 교수는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포럼 설립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학술·연구 교류 못지않게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제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부산시, 중국 부산 총영사관, 부산대가 뜻을 모아 2014년 12월 포럼을 공식 출범시켰다."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포럼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자리를 지켰다. 특히 2016년 사드(THAAD) 사태로 한·중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던 시기에도 김 교수와 회원들은 교류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포럼의 대표 프로그램은 분기별로 열리는 '조찬포럼'이다. 김 교수는 "경제·정책 이슈를 주제로 한중 양국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협력방안을 찾는 자리"라며 "짧지 않은 세월 꾸준히 이어온 점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포럼은 또한 중국 유학 출신 교수들을 특임이사로 위촉해 한중 간 가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김 교수의 관심은 단순한 교류를 넘어 부산의 미래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부산은 해양도시일 뿐 아니라 금융 중심지로서 잠재력이 크다"며 "2000년대 초반부터 금융도시 지정 논의를 이끌어왔고, 지금도 산업과 금융을 결합한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6년 중국 강소성 회안시를 방문해 회안 시장과 경제협력을 위한 방안 논의 모습. (제일 왼쪽 김영재 회장, 왼쪽에서 3번째 회안시 시장)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이 발간하는 '흥(興)' 잡지는 2년 전부터 부산과 서울의 대형 서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교수로서의 보람도 남다르다. 그는 2003년 한국은행이 주최한 통화정책 경시대회에 학생들과 참가해 전국 3위를 차지한 뒤, 전담 동아리를 만들어 지금까지 지도해왔다. 이 동아리는 전국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하며 부산대의 대표 학술동아리로 자리 잡았다.

김 교수는 한중 경제협력과 부산 금융도시 발전 모두에 대해 "정치적 유불리와 무관하게 지역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며 "지자체와 중앙정부, 그리고 지역 기업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년퇴임… 포럼서 활약은 계속

김영재 교수는 오는 8월 말 정년을 맞아 강단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 회장으로 지역 경제와 한중 교류를 위해 활발히 활동할 계획이다.

1960년 부산 사상구에서 태어나 농사와 사과 장사를 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한 소년은, 학문과 현장을 넘나들며 한국 금융과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경제학자로 성장했다.

김영재 교수는 당시 부산 사상구의 시골에서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농번기에는 밭에서, 농한기에는 사과를 팔러 다니던 아버지의 부지런한 삶을 보며 성장했다. "부모님의 희생과 선생님들의 격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늘 마음속에 새기는 말이 있다. '종신행선이라도 선유부족이요, 일일행악이라도 악자유여이다(終身行善이라도 善猶不足이요, 一日行惡이라도 惡自有餘이다).' 선은 평생 해도 부족하지만, 악은 하루만 해도 남는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 그는 특별한 장래희망보다는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 육상선수로 뛰며 '새처럼 날고 싶다'는 소망을 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형이 건넨 "미국 명문대에 가라"는 말은 어린 마음에 깊이 남았다.

군 복무 후 공부에 매진, 유학길 오르다

군 복무를 마친 김 교수는 대학 3학년에 복학을 했다. 미래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복학 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취업과 대학원 진학, 두 가지 길을 동시에 준비한 그는 결국 한국거래소에 입사했다. 그러나 운명처럼 수개월 후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입학허가서를 손에 쥐게 된다.

"거래소에 다닌 지 몇 개월 만에 입학 허가증이 도착했다. 회사에도 장기유학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이라 결국 사표를 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내 인생을 바꾼 결정이었다."

1986년 그는 시애틀로 향했고, 1993년 12월 어렵게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다시 거래소에 복귀해 신설된 증권연구실에서 실물경제와 세계경제를 몸소 체험했다. 각종 포럼과 국제 학술대회에 참여하며 연구자와 현장 전문가로서의 시야를 넓혔다. 그러나 학문적 자율성과 폭넓은 활동 영역에 매력을 느낀 그는 결국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부산과 중국 간 경제교류 확대 및 우호 증진을 위한 진일표 주부산중국총영사와 간담회 모습.(정면 왼쪽 김영재 회장)

경제정책과 금융교육, 학생들과 함께 성장

김 교수의 전공은 거시경제학과 화폐금융론이다. 그는 시장과 정책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2003년 한국은행이 처음 주최한 대학생 통화정책경시대회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금융·통화정책 동아리(F&M)'를 창립했다. 이후, 이 동아리는 전국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두었고, 졸업생 다수가 한국은행, 산업은행, 한국거래소, 주요 금융지주회사 등에 진출했다.

차이나비즈니스포럼, 지역과 세계 잇는 다리

김 교수의 또 다른 발자취는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이다. 2009년 당시 김인세 총장의 권유로 부산대 중국연구소장을 맡으며 중국에 관심을 두게 된 그는, 2012년 한중수교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학문을 넘어 실질적인 교류의 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부산시와 주부산중국총영사관, 부산대 중국연구소가 힘을 모아 2014년 12월 창립된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의 초창기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이었다. 2016년 사드 사태로 한중 관계가 경색되자 활동도 주춤했지만, 회원들과 이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다시 활력을 찾았다.

포럼은 이후 부산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한중 청년 교류와 정책 심포지엄을 열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중국은 우리와 뗄 수 없는 이웃이다.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넓히는 것이 포럼의 가장 큰 역할이다"고 말하는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연구와 교육, 그리고 지역 현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제 협력 가능성을 모색해 왔다.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 회장을 맡은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부산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중국과 가장 가까운 도시다. 부산에서 한·중 경제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늘 가지고 있다." 김 교수의 발언은 단순한 학문적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여러 차례 중국 현장을 발로 뛰며 기업인과 학자들을 연결해 왔다. 지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함께 고민했고, 때로는 직접 통역과 자문까지 맡았다. "책상머리에서 이론을 이야기하는 건 쉽다. 하지만 기업인들이 실제로 겪는 문제는 훨씬 복잡하고 절박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김 회장의 말은 가슴을 친다.

퇴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정년퇴임을 앞둔 그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의 중요성을 실감한다"고 했다. "교수로서 강단을 지킨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다. 이제는 감사의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려 한다"고 전했다.

퇴임 후 그는 방송 출연과 신문 기고 활동을 이어가고, 그동안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또한 초·중·고 학생들을 위한 '경제·금융 교실'을 열어 기초 교육을 펼치고 싶다고 한다. "경제와 금융은 이제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젊은 세대가 어릴 때부터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제는 남은 시간을 후학을 돕는 데 쓰고 싶다. 또 부산차이나비즈니스포럼 같은 플랫폼이 더 튼튼하게 자리 잡아,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한·중 교류의 중심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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