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못 뚫은 철혈 요새... 푸틴은 이 ‘돈바스’를 원한다
우크라 내륙으로 통하는 50㎞ ‘요새(要塞) 벨트’ 구축된 곳
안보 전문가들 “푸틴, 이곳 장악하면 바로 재침공 발판 삼을 것” 경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5일 알래스카 회담,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 간 18일 백악관 회의에서 주목되는 것은 두 가지다. ‘영토 교환’과 ‘안전 보장’이다. 우크라이나가 현재의 전황을 고려해서 어느 정도 영토를 양보하고, 대신에 러시아가 추가 도발 시에는 미국을 포함한 나토(NATO)가 우크라이나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직 없다. 우크라이나는 ‘원칙상’ 영토 포기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목할 것은 푸틴이 전쟁 종식의 조건으로 줄기차게 요구하는 돈바스 지역 전체의 할양이다. 여기엔 아직 러시아군이 점령하지 못한 땅도 포함된다. 푸틴은 알래스카 회담에서 트럼프에게 돈바스 전체를 넘기면,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헤르손 주ㆍ자포리자 주에서 공격을 멈추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푸틴은 왜 돈바스 지역을 원하는가. 이 땅은 우크라이나가 지난 11년간 강력한 요새 벨트(Fortress Belt)를 구축한 곳이다. 이 탓에, 2014년 푸틴이 돈바스 지역에서 친(親)러시아 민병대를 부추겨 내전을 일으켰지만, 지금까지도 돈바스 전체를 장악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돈바스의 한 주(州)인 도네츠크 주 전투에서만 2023년 10월 이후 17개월 동안 5개 사단을 무장할 탱크와 장갑차를 잃었고, 지금도 매달 1만5000명의 러시아군 사상자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평화의 조건’으로 이곳을 내주면, 이후 러시아군은 평원을 지나 서쪽으로 거침없이 진격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푸틴을 불신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에 영토와 주권을 보장받는 부다페스트 각서(1994년 12월5일)를 체결했지만, 푸틴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불법 병합했고, 이어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했다.
이후 돈바스 평화를 위한 민스크 협정 1ㆍ2(2014년 9월~2015년 2월)를 맺었지만, 돈바스 전투는 계속됐고,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그런데 푸틴은 이제 ‘우크라이나 평화’의 조건으로 그 땅, 돈바스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사설에서 “푸틴의 요구는 설령 일시적 휴전에 합의하더라도, 이후 전쟁을 재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다”고 경고했다.
◇석탄ㆍ중공업 지대인 돈바스, 남한의 절반 면적
돈바스(Donbas)는 도네츠강이 흐르는 도네츠 석탄분지(Donets Coal Basin)의 줄임말이다. 남부 도네츠크와 북부의 루한스크 2개 주로 구성되며, 전체 면적은 약 5만3200㎢. 한반도 남한 면적(10만 266㎢)의 절반을 조금 웃돈다.
지난 3년 반 가장 격렬한 전투가 전개된 곳이자, 도네츠 능선과 강을 따라 최대 석탄 지대가 있고 광공업ㆍ금속공업이 발달해 우크라이나 산업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도네츠크 주는 아조프해(海)와도 접했다.
러시아군은 현재 루한스크 전체와 도네츠크의 75%, 즉 돈바스의 88%를 장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계속 통제하는 지역은 서울의 11배인 6600㎢ 크기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불법 합병하고 돈바스 지역에서 전투를 시작한 이래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전까지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세력은 치열하게 싸웠다. 8년 간 양쪽에서 1만4000명 이상이 죽었다. 당시 우크라이나군은 사기ㆍ무기ㆍ자질 면에서 형편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우크라이나, 50㎞에 걸친 ‘요새 방어선’ 구축
우크라이나 에너지는 돈바스의 석탄 산지에 크게 의존한다. 2014년 돈바스 내전 발발 이래, 우크라이나 원탄(原炭) 생산량은 22.4% 감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에게 전략적 측면에서 ‘요새(要塞) 방어선’ 역할을 한다. 우크라이나군은 특히 도네츠크 주의 슬로뱐스크~크라마토르스크~코스챤티니우카로 이어지는 산업도시들에 철도와 도로로 이어진 50㎞의 ‘요새 지대(Fortress Belt)를 구축했다. 대략 파주에서 포천 사이의 도로 거리(54.1㎞)다.

우크라이나는 참호와 다층(多層) 방어, 벙커, 대전차 참호, 지뢰밭 등을 강과 도시, 높은 지형 등과 결합해 구축했다. 하나의 도로로 남북이 연결됐다.
러시아군은 2014년 이후 단 한 번도 이 방어선을 뚫지 못했고,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 2022년 시작한 침공에서도, 이 일대에서 러시아군은 바흐무트와 아우디이우카 두 도시만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워싱턴 DC의 전쟁 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ㆍISW)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추세라면 러시아가 이 ‘요새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은 전장에서 실패한 것을 트럼프와의 협상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안보협력센터의 세르히이 쿠잔은 “이 도시 중 하나라도 내주게 된다면, 사실상 전체 방어선이 붕괴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조밀한 산업 도시 지역 너머의 넓고 개방된 지역은 우크라이나 내륙으로 가는 관문(關門) 역할을 한다. ISW는 “돈바스를 전투 없이 내주면 러시아군이 공격을 재개하고 서쪽으로 밀고 나갈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현재 도네츠크 주의 ‘요새 지역’ 남쪽에 위치한 포크로우스크 등 주변 도시들로 우회해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도네츠크 잃으면, 우크라는 전선이 서쪽으로 80㎞ 밀려
도네츠크 방어선이 무너지면, 우크라이나는 ‘재앙적 결과’를 맞는다. 전선은 서쪽으로 약 80km 이동하게 되며, 러시아군은 자연 방어물이 없는 평원을 확보하게 된다. 하르키우ㆍ폴타바ㆍ드니프로 등 중부와 북부 주요 도시로 가는 길이 열린다. 우크라이나가 새로 구축할 방어선은 지형적으로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돈바스 포기 요구를 수 차례 거부하며 “모두가 잊고 있지만, 애초에 우리는 우리 영토를 불법 점령당한 것이다. 돈바스는 러시아에게 미래의 공격을 위한 발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大)러시아’ 구상에 집착하는 푸틴에게 이미 88% 장악한 돈바스에서 철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푸틴은 분리주의세력이 2014년에 ‘독립’을 선언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을 2022년 7월에 자국 영토로 이미 병합했다.
러시아가 돈바스의 나머지 지역을 자력으로 장악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겠지만, 역으로 우크라이나가 이 실지(失地)를 회복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러시아군은 15일의 트럼프ㆍ푸틴 회담을 앞두고 도네츠크의 포크로우스크 시 점령에 총력전을 기울였다. 이후 러시아군이 포크로우스크 시내에 진입했다, 10 ㎞ 안팎으로 진격했다,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격퇴했다는 엇갈리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포크로우스크 가까이 가기까지 17개월 이상이 걸렸다. ISW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3년 10월 이후 이 전투에서 5개 사단을 무장할 전차와 장갑차를 잃었고, 포크로우스크 전투에서 매달 1만4천~1만5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평화의 조건으로 돈바스를 ‘양보’하는 시나리오에 대해 “푸틴은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했다. 침공을 시작할 때도 명확한 영토적 한계가 없었다. 한 번 성공을 맛보면 욕심이 커진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푸틴이 도네츠크 전역을 요구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핵심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미래에 전선을 확장할 발판을 마련하려는 전략적 목적”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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