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밝히고 사죄하는 일본 시민들 [광복 80주년-다시 평화]

유은상 기자 2025. 8. 1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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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림된 고통 잊히는 슬픔(5)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 설립한 '일본의 양심'
강제 동원·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진실 알려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
"일본이 저지른 명백한 전쟁범죄 사죄해야"

일본은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엿새 뒤인 8월 15일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전체 피폭자는 약 74만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23만 명가량이 사망했다. 

원폭 80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그 원인이 됐던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들에게도 그 진실을 숨기고자 역사를 왜곡하고, 자라는 젊은 세대에도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피해자 코스프레만 열심일 뿐 사과나 반성은 전혀 없다. 

국가가 그런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일본 국민 또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라를 대신해서 한국에 사과하고 한국인을 돕고, 나아가 일본의 잘못된 역사를 그들 국민과 세계에 알리고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무라 히데토(오른쪽)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가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에 전시된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유은상 기자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 = 나가사키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에서 항구 방향으로 내려가면 나가사키 26성인순교자 성당이 있다. 그 뒤에는 또 다른 평화자료관이 있다. 이곳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은 기존 자료관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일본의 양심'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포장하며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지만 이곳은 진실을 그대로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자료관은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하 조선인 인권 모임)' 대표였던 오카 마사하루 목사가 건립을 주도해, 2차 세계대전 종전 50년을 맞아 1995년 문을 열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숨기고 있었던 조선인 피폭자 보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자 실태 조사를 했고, 이 과정에서 강제 동원 실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파악해 이를 알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1994년 갑작스런 질병으로 별세하면서 안타깝게 자료관 개관을 보지는 못했다.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 /유은상 기자

이후 '조선인 인권 모임'과 자원봉사자들이 힘겹게 자료관을 운영하고 있다. 3층으로 된 자료관은 계단과 벽면까지 한글과 일본어로 된 각종 자료와 신문기사, 사진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하시마(군함도) 탄광 희생자 명부, 일본군 위안부 자료, 하시마 강제징용 자료, 인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 자료 등이다. 당시 징용 노동자 실상을 알 수 있는 안전장치 없는 탄광 갱도와 그들이 사용했던 도구, 열악했던 음식 등도 전시돼 있다. 인권평화자료관은 설립 취지문을 보면 의미를 뚜렷이 알 수 있다.

'전쟁과 원폭 참상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 때문임을 똑똑히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침략과 전쟁으로 희생된 외국인들은 전후 50년이 지나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버림받아 왔습니다. 가해의 역사를 숨겨왔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죄와 보상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만큼 국제적인 신뢰를 배반하는 행위는 없습니다. 핵무기 사용을 용인하면 재발이 우려되는 것처럼 무책임한 태도를 허용한다면 다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사키야마 노보루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 관장은 "일본의 무책임한 현실 고발에 생애를 바친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설립됐다"며 "자료관을 찾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가해의 진실을 알고 피해자 아픔에 공감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일본이 전후 보상에 나서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가 원폭 80년이다. 그 아픔은 2세에게 유전되고 그들 또한 60∼70대 나이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피폭자 원호법 안에 2세들을 대상으로 포함해 한다"며 "더불어 전쟁 또한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핵무기는 인권침해 문제와 직결된다. 핵무기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차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구 상에 핵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키야마 노보루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 관장. /유은상 기자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사람 = 나가사키에 사는 기무라 히데토(81) 씨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이다.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40년간 일하다 정년퇴직한 그는 나가사키 인권평화자료관 회원이면서 '조선인 인권 모임' 대표를 맡고 있다. 

교사였던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한국어가 계기였다. 교사시절 그는 한국어에 호감을 느껴 동아리에 들어가 3개월 동안 함께 공부했고, 동아리가 해산하면서 이후 독학으로 공부했다. 오랫동안 한국어를 공부한 덕에 그는 한국인 못지않은 실력으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두 번째 계기는 2005년 '스톤워크 재팬' 행사 때문이었다. 911테러 이후 미국 유가족이 복수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하면 안 된다는 운동에서 시작된 행사로, 그때 미국 시민들이 정부를 대신해 일본에 원폭 사죄를 하러 왔다. 묘비를 싣고 나가사키에서 출발해 히로시마까지 평화 행진하는 방식이었다. 현마다 한 명씩 통역을 돕는 자원봉사자가 필요했고, 그는 그렇게 동참하게 됐다. 이 일들이 계기가 돼 2007년에는 '스톤워크 코리아' 행사가 기획된다. 

그는 "스톤워크 재팬에 참여했던 일본인들 사이에서 우리도 정부를 대신해 한국민과 한국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기 시작했다"며 "2007년 한국 행사에 동참했고, 일본 전쟁범죄에 희생된 한국인을 위로하고 일본 잘못을 대신해서 사죄했다"고 밝혔다.
기무라 히데토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 /유은상 기자

이후 그는 더욱 역사 공부에 매진하게 됐다. 자신이 알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왜곡되고 숨겨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조선인 인권 모임'에 들어가 자료를 조사하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진실을 밝히는 일에 힘을 보탰다. 

오랜 시간 그는 꾸준히 이 일을 하면서 이제는 평화인권운동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이 됐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것은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전쟁범죄다. 이것은 인권훼손 문제다. 그런데 일본은 사과를 안 하고 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제가 한국 사람이라면 일본에 오지 않을 정도로 미울 것이다. 그런 감정이 당연하다. 정말 잘못했고, 너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와 '조선인 인권 모임'이 조사한 자료와 증언은 이후 소설 <누구도 빼앗지 마라>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오우라 후미코 씨가 쓴 소설로 한국인 최초로 원폭 피해 증언을 한 서정우(1928~2001) 씨 이야기를 배경으로 했다. 그는 2023년 서정우 씨 고향 의령을 찾아 소설책 40권을 의병박물관에 전달했다. 

기무라 히데토 씨는 "한국인을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전에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 진실을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매년 원폭 기념일에 합천을 찾아 피해자 추모제에 참석하는 등 1년에 두어 차례 한국을 찾으며 연대와 유대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아픔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전쟁이 사라져야 하고 핵 또한 사라져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손잡고 힘을 보태야 한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세대가 단절되는 느낌이 있다. 전쟁 범죄에 대해 고민하는 반핵 인권평화 운동도 나이 든 이들만 하고 있다. 미래의 주인이자 결정권을 가진 젊은 세대에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은상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