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내놔"… 푸틴 야욕에 유럽 정상들이 '인간 방패' 된 이유
크림반도 이어 돈바스, 다음은? 우크라이나 '심장' 뺏기나

돈바스는 결국 푸틴의 땅이 되는 것인가. 도네츠 석탄 분지의 이름을 딴 우크라이나의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통칭)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망의 도가니이자 유럽의 기존 질서를 시험하는 장으로 국제 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돈바스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갖되 나머지 전선을 동결해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와 하르키우의 소규모 부대에서 철수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주요 외신들은 실현될 경우 푸틴에게 십수년간 이루지 못한 전략적 승리를 안겨주는 셈이라고 짚었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크림반도의 흑해 반도를 불법 합병한 후 분리주의 반란을 선동해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일부 지역(돈바스 지역 포함)을 친러 세력의 지배 하에 뒀다. 8년 후인 2022년 2월에는 아예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과 자포로지아 주의 일부도 점령했다. 유럽 최대 규모인 자포로지아 원자력 발전소가 여기에 있다. 푸틴은 같은 해 9월 이 4개 지역의 합병을 발표하며 "영원히" 러시아의 일부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수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을 아직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전쟁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도네츠크 전체를 포기한다면 수년간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온 방어선인 "요새 벨트"를 잃게 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고 CNN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영토 논의는 러시아를 포함한 3자 회담으로 정상급 자리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직접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네츠크를 내어준들 러시아가 그에 만족한다는 보장은 없다. 푸틴은 트럼프에게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합의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데 달려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중립 선언과 비무장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가입 포기를 종용했다. 러시아가 현재의 국경 너머로 확장해야 한다는 게 푸틴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우크라이나를 전면 공격하기 불과 두 달 전 그는 1991년 소련의 붕괴를 "역사적 러시아의 붕괴"라고 한탄했고 그로 인해 흩어진 러시아인 2500만명 중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헌법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의 불가분한 구성 지역"인 자치공화국으로 명시하고 있다. 크림반도는 무역과 군사 면에서 전략적인 요충지로써 흑해의 해상교통을 통제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한다. 세바스토폴 항은 과거 러시아 흑해 함대의 본거지였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한 후 이 해군 기지를 러시아에 임대했고 푸틴은 크림반도를 점령해 우크라이나를 대규모로 침공할 발판을 마련했다.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케르치 대교는 2018년 개통된 후 러시아가 최전선에 물자를 공급하는 핵심 기지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로선 크림반도를 뺏긴 게 뼈아픈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돈바스도 과거 소련이 선전에서 "러시아의 심장"이라 불렀던 요충지다. 우크라이나의 석탄 채굴 및 제철 중심지였고, 그 이전에는 소련의 산업 중심지였다. 돈바스의 산업 활동은 2014년 이후 끊이지 않는 유혈 충돌로 중단됐고, 이후 전면전으로 많은 시설이 파괴됐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량의 석탄이 매장돼 있다. 미국 에너지 정보청(EI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2023년 세계 8위의 석탄 매장량을 기록했고 그 중 대부분이 돈바스 지역에 있다.
돈바스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 지역에는 리튬, 티타늄, 흑연 등 다른 천연자원도 매장돼있다. 상업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물량은 불분명하다. 도네츠크에는 마리우폴이라는 도시도 있는데 푸틴은 이번 전쟁 중 러시아 국경에서 아조프해 연안을 따라 크림반도까지 육로를 구축해 케르치 대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었다. 돈바스 너머 헤르손과 자포로지아는 "유럽의 곡창 지대"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두 지역은 2016~2020년까지 우크라이나 밀, 보리, 유채, 해바라기 씨앗 평균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젤렌스키가 반복해서 지적했듯이 도네츠크의 나머지 지역에서 후퇴하면 우크라이나 중부의 광활한 평야가 러시아의 다음 공세에서 취약해진다. 유럽 동맹국들 입장에서도 침략을 통한 영토 확장은 인정할 수 없으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기본원칙이 무너지게 된다. 가디언지는 이날 젤렌스키와 트럼프의 회동에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유럽연합 등 유럽 정상들이 일제히 '인간 방패'로 나선 이유를 이같이 풀이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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