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제목으로 ‘도끼’, ‘모가지’는 잔인…어쩔 수가 없었다”

이민경 기자 2025. 8. 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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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개봉 앞둔 영화 ‘어쩔수가없다’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분 초청
이병헌·손예진 부부연기로 첫 호흡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왼쪽부터), 이병헌, 손예진. 연합뉴스

“실직의 문제, 해고자의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너무 어둡고 무겁고 심각하기만 한 영화를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사는 이야기는 어떤 슬픈 이야기라도 들여다보면 웃긴 구석이 있어요. 웃겨서 슬플 수도, 슬퍼서 웃길 수도 있을겁니다. 다만 인물을 안타까운 상황에 던져놓고 관찰하면서 비웃는 그런 종류의 웃음은 아니예요.”

박찬욱 감독이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질의응답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욱 감독의 신작으로 오는 27일 개막하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제작보고회가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에서 열렸다.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주인공 유만수 역의 배우 이병헌과 만수의 아내 미리 역의 손예진 그리고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이 함께 자리를 빛냈다.

‘어쩔수가없다’는 자수성가 끝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유만수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도끼)를 원작으로 해 박 감독이 직접 각색해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박 감독은 9월 개봉을 앞두고 제작보고회를 갖는 소감으로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면서 “소설 원작을 처음 읽고 영화로 옮기고 싶다고 생각한 지가 어언 20년이 되간다. 빨리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개 미스터리 장르 소설은 ‘누가 범인이냐’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그 수수께끼가 풀리면 더는 새롭게 음미할 거리가 없다”며 “하지만 이 소설만큼은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을 소개하고 그 인물을 따라가게 된다. 그의 심리, 그는 왜 이렇게 됐는가, 사회 시스템은 어떻게 그를 등 떠밀었는가 등 몇번을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에서 감독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희순, 손예진, 이병헌, 박찬욱 감독,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연합뉴스

소설 원작에 박 감독표 블랙 유머를 더 많이 넣은 결과, ‘박감독 영화같지 않은 영화’가 탄생했다고 출연 배우들은 입을 모았다. 이병헌은 “대본을 받자마자, 감독님한테 ‘웃겨도 되는 작품이에요?’라고 질문했다. 감독님 작품답지 않게 너무 코미디 요소가 많아서 제가 제대로 읽은게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박희순도 “감독님이 이제 칸 영화제는 포기하고, 대신 ‘1000만 영화’를 목표로 잡으셨나 싶었다”며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결의 박찬욱 영화가 될 것을 시사했다.

독특한 영화 제목을 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재치있는 답변으로 갈음했다. 박 감독은 소설 ‘도끼’의 추천사를 쓰면서 “만약에 내가 이 책을 한국영화로 바꾼다면 제목을 ‘모가지’로 하겠다”고 적었었다. 그러나 영화 제목은 ‘도끼’와 ‘모가지’ 둘 다 아닌 ‘어쩔수가없다’로 낙점됐다. 대신 영화 속 만수의 대사 ‘외국에선 해고를 도끼로 표현한다죠. 한국에선 모가지라고 불러요’로 소화됐다.

“왜냐면 도끼와 모가지 둘 다 글자 그대로 너무 잔인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잖아요. 특히나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에 출연한 이병헌씨 때문에 더욱 그런 우려가 커지거든요.(웃음) 그래서 약간은 비겁한 태도로서, 또는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사는 마음인 ‘어쩔수가 없다’를 골랐지요.”

영화에 등장하는 만수와 미리 가족의 전원주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가 될 것이라고도 예고했다. 만수가 태어난 집이나 아버지가 사업 실패해 돌아가신 뒤로는 떠났어야 하는 집. 그 집을 만수가 자수성가해 미리와 함께 돌아와 깨끗이 리모델링한다. 박 감독은 “그러니 실직해서 퇴직금을 까먹고 재취업이 안되는 상황에서 ‘결국 집을 팔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도달했을때 만수가 그것만은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병헌은 실직한 가장을 연기하면서 평범한 인물이 점차 극단적인 상황에 빠져드는 모습을 설득력있게 전달해야 했다. 그는 “중간에 아주 조금이라도 관객들이 인물과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고 빠져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제 목표였다”며 “매 순간 설득력있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고 고백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만수와 미리로 출연하는 배우 이병헌과 손예진. 연합뉴스

‘만수의 아내’ 역이라고 표현돼 있지만 박 감독의 영화 속에서 늘상 여성 캐릭터는 강렬했기에 손예진이 연기할 미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진다. 손예진은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일까 고민됐지만, 놓치면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며 “두 아이의 엄마인 미리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실제로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뒤라 몰입하기 더 좋았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이병헌을 제외하고는 배우들과 첫번째 작업이다. “제가 다른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 시리즈 다 보면서 눈에 띄는 배우들을 점찍어 놨어요. 언젠가 함께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하는 사람은 몇년에 한편을 만드니 배우를 다 만나기가 어려웠죠. 긴 세월 기회를 노려온 배우들과 함께해 기쁩니다.”

배우 염혜란이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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