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국민임명식’은 실패한 극장정치… 반쪽짜리 정치 이벤트로 전락[허민의 정치카페]
‘의례’는 세계관과 권력관 결합하는 상징행위… 임명식 목적은 권위의 재구성
포괄성·지속성·재통합성 못 갖추며 분열 확인… 대통령·여당 지지도 동반추락

이미 취임식을 가진 대통령에게 ‘국민임명식’이 필요했을까. 과거엔 없던 국민임명식이란 행사는 왜 치러졌고, 어떻게 평가될까.
8·15 광복절 날 광화문광장에서 치러진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국민임명식은 국민 전체의 ‘집합적 열광’을 창출하기 위한 극장정치로 기획됐지만, 울림 없는 정치 이벤트로 소비됐다. 좌우와 보·혁 모두의 참여를 기대했지만 반쪽 성례(聖禮)에 머물렀고, 통합이 아닌 분열의 의례(儀禮)로 끝났다.
◇정치 의례
국민임명식이라는 형식 자체가 전례 없는 시도였다. 이는 세 가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빛의 혁명을 완수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임명했다는 프레임을 통한 정치적 정당성 강화, 둘째 광복절이라는 국가적 상징성과 결합해 갈등을 봉합하고 분열을 극복하려는 메시지 전달, 셋째 대중적이고 이벤트 중심의 리더십 연출을 통한 스타일 정치 확립. 하지만 야권과 일부 시민사회의 반발·보이콧과 국민 대표성 논란이 겹치면서, 기획 의도와 달리 반쪽 행사라는 부정적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의례는 원래 종교에서 유래했다. 핵심 기능은 세속적인 것에 성스러움을 부여해 권위를 강화하고 공동체적 일체감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이 같은 의례를 기획한다는 건 정치에 종교적 색채를 가미해 권위를 확보하고 순응성을 요구하려는 의도가 있다. 즉 정치 의례는 종교 의례를 세속적 맥락에서 차용해 정치적 권위에 성스러움을 부여하는 효과를 갖는다.
국민임명식이 기존 대통령 취임식과 다른 점은 국민을 임명권자로 상정하면서도, 역으로 대통령의 권위를 강화하는 효과를 노린 의례적 장치를 기획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세운 자리다’라는 의미와 함께, ‘국민적 의례를 통해 대통령의 지위에 성스러움이 부여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점에서 이중의 메시지를 내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자가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거나 의회민주주의 등 합리적 제도와 절차·성과에 기초해야 한다. 무작정 새로운 의례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정치의 종교화에 따른 권력 집중을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국민임명식도 그 자체로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메시지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 권위를 성스러운 것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정치 의례로 기능했다.

◇극장정치
막스 베버에 따르면 민주주의에서 국가 지도자의 정당성은 합법적 권위에 기초한다. 국민임명식은 이미 선거와 취임식을 통해 확보한 합법적 정당성을 다시 연출하는 자리였고, 여기에 카리스마적·전통적 권위에 따른 지배 방식까지 동원해 정치의 종교화를 꾀했다.
의례를 ‘세계관과 권력관을 결합하는 상징적 행위’로 본 문화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견해도 주목된다. 의례란 사회가 공유하는 의미 체계를 재확인하고 권력관계를 정당화하는 장치이며, 특히 ‘극장국가(theatre state)’를 통해 통과의례적 이벤트와 퍼포먼스가 곧 정치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이다. 국민임명식을 기어츠의 틀에 넣어 설명하면, 국민이 주인이라는 세계관과 대통령에게 권위가 집중된다는 권력관이 광화문광장이라는 연극적 무대 위에서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임명식은 곧 극장정치다.
대통령과 국민을 직접 연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극장정치는 한국의 근대정치사에서 확인되는 반복된 패턴이었다. 특히 진보정권에서 극장정치의 원형들이 제법 목격된다. 노무현은 참여정부를 내세워 국민과의 관계를 의례화하려 했다. ‘박근혜 탄핵’으로 권력을 잡은 문재인은 광화문광장에서 국민과의 대화를 열어, 국민이 질문하고 대통령이 답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교주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다. ‘윤석열 탄핵’을 통해 권력을 잡은 이재명은 국민주권정부를 내세우며 국민임명식이라는 제의적 과정으로 권위를 집중하고자 했다.
이들 극장정치는 베버의 틀로 보면 합법적 권위의 보완을 위해 카리스마적·전통적 권위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려 한 시도였고, 기어츠의 눈으로 보면 권력과 세계관을 연극처럼 결합해 권위를 재생산하려는 정치행위였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건강성은 제도와 성과를 통한 권위로부터 확보되는 것이지 의례적 권위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다.
◇실패한 기획
국민임명식의 목적은 대통령 권위의 재구성이다. 구체적으로는 ‘만들어진 전통’으로(에릭 홉스봄) ‘집합적 열광’을 재현함으로써(에밀 뒤르켐) 국민과 대통령을 연결하는 ‘사회극’을 완성하는 것이다(빅터 터너).
하지만 이 사회극의 기획자에게 보수 야권은 물론 적지 않은 국민이 ‘지금 굳이, 왜’라는 의문을 표했다. 결국 ‘만들어진 전통’의 정착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불발됐다. 또 광복이라는 성스러운 시공간에 집권을 성례화하며 국민과의 일체감과 ‘집합적 열광’을 재창출하려는 의도 역시 국민의힘·개혁신당 등 야권과 이명박·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의 불참으로 빛이 바랬다. 대통령과 국민을 하나의 커뮤니타스로 묶어내 조국·윤미향 사면 역풍에 따른 정치 위기를 반전시켜 보려는 시도 또한 반향 없는 사회극으로 귀결됐다.
‘지금 굳이, 왜’라는 국민의 의문은 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추락으로 반영됐다. 리얼미터의 8월 2주차 조사 결과 국정지지도는 51.1%로 한 주 전에 비해 5.4%포인트, 2주 전에 비해서는 12%포인트나 폭락했다. 정부 출범 70여 일 만에 국정지지도 50% 붕괴가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국·윤미향 사면 논란이 거셌던 광복절 하루 전 14일 일간 긍정평가는 48.3%였다. 더블스코어로 벌어졌던 양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9.9%(8.5%포인트↓), 국민의힘 36.7%(6.4%포인트↑)로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여권 지지도의 동반 하락은 조국·윤미향 특사 역풍, 주식양도세 논란, 그리고 지난주 집중호우 피해에 따른 상실감 등에 기인한 것이다. 피해가 컸던 인천·경기와 충청·서울 등에서 하락폭이 컸다는 점은 여권에 뼈아프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지금 굳이, 왜’ 국민임명식을 했어야 했을까. 민주당의 수도권 출신 국회의원은 “국민주권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못 읽었다. 국민임명식을 취소했거나 연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역설
국민임명식은 의례를 통해 대통령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연출이었지만, 역효과를 낳았다. 의례의 성공 요건인 포괄성·지속성·재통합성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고, 균열을 공식화한 대가는, 대통령 권위의 강화가 아닌 정당성의 약화와 분열의 심화라는 역설로 돌아왔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극장국가’란 물리적 강제와 통제가 아니라 의례와 이벤트로 통치되는 국가. 미국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제시한 새로운 통치체제를 일컬음.
‘사회극’은 인간사의 모든 사건을 사회적 드라마로 보는 영국 인류학자 빅터 터너의 개념. 위반→위기→교정행동→재통합의 4단계를 제시하며, 제의적 해법을 통해 재통합이 이뤄진다고 봄.
■ 세줄요약
정치 의례: 의례의 핵심 기능은 세속적인 것에 성스러움을 부여해 권위를 강화하고 공동체적 일체감을 확보하는 것. 국민임명식은 국민을 임명권자로 상정하지만, 역으로 대통령 권위 강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의례적 장치임.
극장정치: 기어츠는 의례를 ‘세계관과 권력관을 결합하는 상징적 행위’로 봄. 이 틀로 보면, 국민임명식은 ‘국민=주인’이라는 세계관과 대통령 권위의 확대라는 권력관이 광화문광장이라는 무대에서 극장정치로 결합된 것.
실패한 기획: 국민임명식은 그러나 의례의 성공 요건인 포괄성·지속성·재통합성을 충족하지 못했고, 대통령 권위의 강화가 아닌 정당성 약화와 분열 심화라는 역설로 끝나. 대통령과 여당 지지도의 동반 급락이 이를 보여줘.
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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