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마시는데 간수치 높고 피부 가렵다면... 간 희소질환 아닐지 확인을
면역세포가 간 담관 공격하는 희소질환 의심
가려움, 안구건조 증상이라 자각하기 어려워
중년 여성 많은데 갱년기 증상과 혼동하기도
국내서 최근 신약 허가... "치료 선택지 확대"

알코올성 간경변 진단을 받은 이후 A씨는 술을 끊었지만, 간의 염증 수치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간경화로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야 자신의 병명이 '원발성 담즙성 담관염(PBC)'이란 희소질환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PBC의 세계 유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약 1.76명에 불과하다.
국내에 몇 안 되는 PBC 전문가인 강원석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A씨처럼 원인을 알 수 없어 진단 방랑을 겪는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진단 방랑'은 증상이 있어도 원인을 정확히 몰라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는 것을 말한다.
환자의 80% 가려움증, 20% 골다공증 경험
PBC는 몸의 면역세포가 간 내부의 작은 담관을 공격해 만성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다. 강 교수는 "염증이 지속되면 간세포에서 만들어진 담즙산이 배출되지 못한 채 쌓이면서 간과 담도가 손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대로 두면 간 기능이 점차 떨어지고 간세포가 손상되면서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으로 이어진다. 간경변이 생기면 복수가 차고 황달이 나타나면서 간암을 앓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간과 직접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도 PBC의 특징이다. 피부 가려움은 PBC 환자의 70~80%가 겪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주의력이 떨어지고 멍한 느낌이 드는 '브레인 포그'와 만성 피로감, 안구·구강 건조증도 PBC의 증상이다. 갑상선 질환 같은 다른 자가면역질환이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고, 환자의 약 20%는 골다공증을 경험한다고도 알려졌다.
강 교수는 "이런 증상은 대부분 특이적이지 않아 환자 스스로 간 질환을 의심하기 어렵다"며 "특히 PBC는 중년 여성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직장과 가정 스트레스에 따른 피로와 PBC로 인한 피로를 구분하기 어려워 진단이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갱년기 증상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숙면 후에도 피로가 지속되고, 눈이 건조해지는 등의 증상이 있다면 간 기능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강 교수는 "PBC는 의심하지 않으면 진단이 쉽지 않은 병"이라며 "생활습관을 바꿨는데도 ALP(알칼리성 인산분해효소) 수치가 정상 상한치(약 104)를 넘어 150 이상이면 PBC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많은 환자가 건강검진에서 간수치 이상이 우연히 발견된 뒤, 자가면역항체 검사 등을 통해 PBC로 진단된다고 강 교수는 설명했다.
환자의 30~40%가 1차 치료제 효과 불충분
PBC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됐다면 간 이식을 고려해야 하지만, 조기에 치료하면 병의 진행을 늦추고 간 손상을 막을 수 있다. 담관에 생긴 염증 탓에 배출되지 못하는 담즙의 흐름을 개선해 간경변을 비롯한 여러 합병증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것이 치료 목적이다.
PBC의 1차 치료제는 '우르소데옥시콜산(UDCA)'이다. 흔히 피로회복제 성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담관 세포를 보호하고 담즙 배출을 원활하게 하는 약이다. 하루에 780~900㎎의 고용량(체중 60㎏ 기준)으로 복용하며, 담관 염증을 줄이고 병 진행을 늦춰 장기적으로 간경화·간암 발생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전체 PBC 환자의 30~40%는 UDCA의 효과가 충분하지 않아 그간 치료에 애를 먹었다. 강 교수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복용 후 UDCA 치료 반응을 평가하는데, 효과가 미흡한 경우 쓸 수 있는 약이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희소질환 의약품 '아이커보'(성분명 엘라피브라노)를 허가하면서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생겼다. UDCA로 효과를 보지 못한 PBC 환자를 대상으로 엘라피브라노와 UDCA를 함께 투여한(병용) 임상시험에서 병용 투여군은 UDCA만 투여한 환자군보다 ALP 수치가 좋아졌고, 가려움 같은 증상도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강 교수는 "치료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라며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약이 있어도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처방받지 못할까 걱정이란 의미다.
그는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ALP 수치 검사를 추가할 필요성이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현재 국가건강검진 간 기능 검사엔 AST와 ALT 수치는 포함돼 있으나, ALP는 빠져 있어 담즙 정체성 간질환을 놓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강 교수는 "PBC는 환자 스스로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의사가 적극적으로 의심해야만 진단이 가능하다"며 "ALP를 검진에 포함해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만성 간질환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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