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은 K콘텐츠인가 아닌가 [뉴스룸에서]


서정민 | 문화스포츠부장
넷플릭스에 소리 소문 없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처음 떴을 때 지금과 같은 열풍을 예상한 이가 얼마나 됐을까? 넷플릭스는 지난 6월20일 ‘케데헌’을 공개하기 전에 별다른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을 펼치지 않았다. 큰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케데헌’을 제작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성공보다는 색다른 소재에 대한 시도에 의미를 뒀다. 터지면 큰돈을 버는 극장 개봉 대신 수익은 적어도 손해 볼 일 없는 넷플릭스 직행을 택한 까닭이다. 그런데 터졌다. ‘케데헌’은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1위에 올랐고, 연일 흥행 기록을 새로 쓰는 중이다. 영화 속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노래 ‘골든’은 최근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정상에도 올랐다.
이를 두고 온갖 해석과 분석이 쏟아진다. 케이(K)팝과 케이컬처의 세계적 위상이 투영된 결과라거나, 한국을 잘 아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본 한국 문화의 매력이 세계인들에게 통했다거나 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건 제법 뜨거운 논쟁도 불러왔다는 점이다. ‘케데헌’을 케이콘텐츠로 볼 수 있느냐가 대표적이다. 문화·콘텐츠 산업에 한두발쯤 걸친 사람은 물론 일반인도 신문 칼럼부터 에스엔에스(SNS), 술자리 수다까지 다양한 형태로 저마다의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부터 그 논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케데헌’을 만든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다.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는 코카콜라가 1987년 설립한 컬럼비아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1989년 일본 글로벌 기업 소니가 인수해 1991년 이름을 바꾼 미국 회사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몬스터 호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같은 히트작을 냈다. 미국적인 것을 보편적인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춘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그곳에서 케이팝 소재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과 미국인 크리스 아펠한스. 그러니까 ‘케데헌’은 형식적으로 따지면 케이콘텐츠가 아니다. 게다가 미국 회사 넷플릭스가 제작에 투자하고 배급을 맡지 않았나.
그런데 좀 더 파고들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빅뱅, 투애니원, 블랙핑크 등의 히트곡을 배출한 프로듀서 테디 사단이 주도해 만든 영화 속 노래들은 케이팝 그 자체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이재는 작곡과 가창 모두에 참여했다. 헌트릭스 멤버들은 김밥·순대·라면을 즐겨 먹고,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는 갓과 도포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한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남산 엔(N)서울타워, 북촌 한옥마을, 낙산공원 성곽길 등도 놀랄 만큼 사실적이다. 단순히 이국적이고 이채로운 요소로 활용했다고 하기엔 너무나 정교하고, 한국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마저 엿보인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케데헌’은 케이콘텐츠인가, 아닌가. 그럼 케이팝은 뭔가. 코리아의 ‘케이’를 ‘팝’에 붙인 건 분명한데, 모든 한국 노래를 케이팝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외국인 작곡가가 만들고, 외국인 멤버 그룹이 부르는데도 케이팝이라 일컫는 노래들은 뭔가. 한때 케이팝계에선 이런 논쟁이 뜨거웠다. 어느 케이팝 가수는 한국 전통 요소를 접목해 칭송받았고, 어느 케이팝 회사는 ‘케이’를 떼고 그냥 ‘팝’이 돼야 세계 주류 시장에서 통한다는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뭐가 됐든 세계인들은 이미 케이팝을 음악의 한 갈래로 받아들여 기꺼이 즐기고 있다. ‘케데헌’이 그 예다.
어쩌면 ‘케데헌’이 케이콘텐츠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건 ‘케데헌’을 계기로 케이팝에 관심 없던 이들도 케이팝을 찾아 듣고, 한국 음식과 관광 명소, 호랑이 캐릭터를 찾아 한국으로 몰려든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우리가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힘으로 ‘제2의 케데헌’을 만드는 게 능사는 아니다. 쉽지도 않다. ‘케데헌’의 성공은 글로벌 자본과 제작 노하우, 플랫폼이 결합해 가능했다. 우리도 필요하면 이들과 주고받고 협업하며 파이를 키워야 한다. 틀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게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것, 그것이 케이팝의 성공 비결이요, 이 나라를 끌어온 ‘케이’의 힘이 아니었던가.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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