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이상한 보고서"...미국·아일랜드 2분기 GDP가 보여준 숫자의 함정

국내총생산(GDP)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미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불안정한 경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GDP 개념을 고안했다. 이후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를 계기로 각국이 GDP를 국가 경제 규모 측정의 핵심 지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GDP가 항상 실물경제의 건전성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상의 오류와 회계 처리상의 왜곡이 착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과 아일랜드의 2025년 2분기 GDP 수치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입 줄였더니 GDP는 상승…이상한 미국 성장률
지난 7월 30일 미국 상무부는 2분기 GDP 성장률이 연율 기준 3.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1분기 성장률 -0.5%에서 반등한 수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예상보다 훨씬 좋다”며 자찬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역대 가장 이상한 GDP 보고서’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수입 급감이 GDP 수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GDP는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순수출(수출-수입)로 구성된다. 이 중 수입은 마이너스 항목으로 반영된다. 수입이 줄면 GDP는 늘어나는 구조다. 미국의 2분기 수입은 전분기 대비 30.3% 감소했다. 그 결과 순수출은 GDP 증가율에 4.99%포인트 기여했다. 실질적인 생산 증가나 소비 회복이 아닌, 수입 감소 효과로 인해 GDP 수치가 상승한 셈이다.
WSJ는 수입 감소의 원인을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 혼선으로 꼽았다. 기업들이 1분기에 수입을 앞당겨 처리했고 그에 따라 2분기 수입이 비정상적으로 줄었다는 설명이다.
겉으로는 성장처럼 보이지만 미국 경제의 실제 온도는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간 총투자는 15.6% 줄었고 기업의 투자 기여도는 0.27%에 그쳤다. 민간 소비지출 증가율도 1.2%에 머물러 2022년 4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WSJ는 “2분기 실적에서 경기침체 신호는 없지만 호황도 아니다”며 “진정한 황금기를 위해서는 무역 및 이민자 추방 관련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미국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레프러콘의 경제학’…보완 지표까지 고안한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사례는 또 다른 의미에서 GDP 통계의 한계를 보여준다. 아일랜드의 2분기 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1.0%를 기록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지난 1분기 GDP 성장률이 9.7%의 고성장을 기록했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여전히 16.2% 성장세를 보였다. IMF가 발표한 2025년 1인당 GDP 추정치는 10만8920달러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겉보기에는 경제 호황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회계상의 착시에서 비롯된 수치다.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이 12.5%로 낮아 ‘조세 친화국’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애플, 구글, 메타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유럽 본사를 아일랜드에 두고 있다. 이들 기업은 지식재산권(IP)이나 무형자산을 활용한 매출을 아일랜드 자회사에 귀속시키는데 이 회계상 소득이 고스란히 GDP에 반영된다. 예컨대 한국에서 아이폰이 팔리면 애플은 아일랜드 자회사를 통해 브랜드 로열티 수익을 가져간다. 해당 수익은 아일랜드 내에서 생산된 것도 소비된 것도 아니며 고용창출과도 무관하지만 아일랜드 GDP로 잡힌다.
올해 1분기에는 아일랜드에 법인을 두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수출을 앞당긴 것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이 자국 제약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 인상을 예고하자 화이자,존슨앤드존슨 같은 제약사들이 수출 시점을 앞당겨 1분기에 대량으로 출하했다. 그 결과 1분기 GDP가 급등했고 2분기에는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환됐다.
GDP가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문제가 처음 지적된 건 2015년이다. 당시 애플이 IP 등 무형자산을 이전하면서 아일랜드 GDP는 한 해 만에 26.3% 급증했다. 이를 두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레프러콘 경제학(Leprechaun Economics)”이라고 꼬집었다. 무지개 끝에 황금 항아리를 두었다는 아일랜드 신화 속 요정을 빗댄 표현으로 ‘허상에 가까운 성장’이라는 의미였다.

이를 계기로 아일랜드 정부는 통계 왜곡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보완 지표인 ‘수정 국민총소득(GNI*)’을 도입했다. 아일랜드 중앙통계청(CSO)은 △다국적기업이 아일랜드로 이전한 IP의 감가상각분 △본사는 아일랜드에 있지만 실제 활동은 해외에서 이뤄지는 ‘재정적 본사(Redomiciled PLC)’의 수익 △전 세계 항공사에 항공기를 리스해주는 기업들이 보유한 항공기 감가상각분 등을 GDP에서 제외하고 순수 국내 경제의 실상을 보여주는 GNI*를 별도로 산출한다.
이 보정 과정을 거치면 통계는 확연히 달라진다. 2024년 기준 아일랜드의 GDP는 약 5383억 유로, GNI는 4043억 유로, 수정GNI는 3054억 유로로 나타났다. 수정GNI는 GDP 대비 43%나 낮다. GDP만으로는 아일랜드 실물경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산출식도 입맛대로?…통계의 정치화 논란
앞서 3월에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GDP 계산식에서 정부지출을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러트닉 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정부지출은 GDP를 엉망으로 만든다”며 국민계정항등식(GDP=C+I+G+(X−M))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긴축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정부 시절 확대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 코로나19 대응 예산 등을 ‘비효율적 지출’로 간주하고 대대적인 삭감을 추진했다.
러트닉 장관은 이 같은 정부지출 축소가 고스란히 GDP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러트닉 장관의 주장을 두고 “예산 삭감에 따른 성장률 하락을 통계적으로 애매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정부가 GDP 계산 방식을 공식적으로 변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통계의 신뢰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웬디 에델버그는 “연방정부가 연필을 사든 민간 기업이 연필을 사든 그것은 동일한 경제활동”이라며 지출 주체에 따라 경제 기여도를 달리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윌콕스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경제 데이터를 조작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고송희 기자 kosh112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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