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가 앗아간 남편…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규희 2025. 8. 1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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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임 스틸 히어’ 20일 개봉
자택서 납치된 브라질 전직 국회의원
아내 유니스와 딸도 연행돼 갖은 고초
억압 속에도 남편 귀환 위해 온몸 투쟁
고통 불구 가족 지키려 희망 잃지 않아
46세에 법대 진학해 인권변호사 변신
30년 동안 포기 않고 진실 위해 싸워
살레스 감독, 친구 가족 이야기 영화化
골든 글로브·아카데미 등서 대거 수상
반체제 인사를 납치한 뒤 ‘실종자’로 만드는 건 독재 정권이 자행하는 몹시 잔악한 범죄 중 하나다. 한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남겨진 가족들에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심리적 고문을 가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미 죽은 그의 시체가 바다나 산에 흩어진 건 아닌지, 끝없는 불확실성 속에 가족의 삶은 지옥이 된다.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영화 ‘아임 스틸 히어’(20일 개봉)는 1970년대 브라질 군사독재 시기를 배경으로, 전직 국회의원 루벤스 파이바 체포 이후 남편의 실종에 맞서 싸운 유니스 파이바의 실화를 그렸다. 페르난다 토레스는 슬픔을 딛고 진실을 추적하는 강인한 여성 유니스를 연기해 브라질 배우 최초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안다미로 제공
20일 개봉하는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영화 ‘아임 스틸 히어’는 브라질 군사독재 정권 치하인 1971년 전직 국회의원 ‘루벤스 파이바’가 리우데자네이루 해변가에 위치한 자택에서 납치된 후 그의 아내 유니스와 다섯 자녀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이 궤도를 바꾸는 이야기를 그린 걸작이다.

영화의 초반부, 루벤스 일가가 사는 집에는 친구들과의 파티가 끊이지 않고, 책과 예술, 즐거운 대화가 흘러 넘친다. 하지만 군사 독재의 기운은 집을 에워싼 소음처럼 스며든다. 다섯 아이가 해변에서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동안, 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지는 헬기 소리와 해안을 따라 지나가는 장갑차의 굉음이 배경처럼 깔린다.

즐거운 생활은 영원하지 않다. 어느 오후, 무장한 사복 사내들이 집을 찾아와 루벤스의 진술이 필요하다며 다짜고짜 그를 데려간다. 그들이 누구이며 루벤스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고, 그날 이후 루벤스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유니스와 15세 딸 역시 복면을 쓴 채 감방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는다.

석방된 유니스의 인생은 산산조각 났지만 그녀는 무너지지 않기로 결심한다. 아이들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씩씩한 척하며 루벤스의 무사귀환을 위해 싸운다. 유니스는 억압 속에서도 자녀들을 위해 삶을 꾸리고, 동시에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영화는 실화에 기반했다. 유니스의 아들 마르셀루 파이바는 아버지 실종 40여년 후 ‘루벤스 파이바 의원 실종사건’을 담은 회고록 ‘아임 스틸 히어’를 집필했다. ‘중앙역’(1998),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살레스 감독은 유년 시절 파이바 가족의 아이들과 친구였고, 해변가의 활기찬 집에 항상 드나들던 손님 중 하나였다. 살레스 감독은 “루벤스가 사라진 후, 항상 음악과 사람과 의견이 오가는 생동감 넘쳤던 파이바 가족의 집에 경찰이 배치되고 모든 문이 닫힌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충격이었다”며 마르셀루의 책을 영화화한 계기를 소개했다.

페르난다 토레스는 남편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점진적으로 직시해가는 유니스의 복합적인 감정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연기를 선보인다. 유니스는 가족을 데리고 상파울루로 이사해 46세 나이에 법대에 진학하고 인권 변호사가 돼 강제 실종 희생자 구명 운동과 원주민 권리, 아마존 보존을 위해 활동했다.

공포 속에서 희망을 찾고, 고통 속에서 기쁨을 길어올리는 유니스를 섬세하게 연기한 토레스는 이 영화로 브라질 배우 최초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드라마 부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영화는 제97회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브라질 독재정권은 루벤스의 실종에 대해 “그가 탈출했다”는 거짓말로 일관했지만, 유니스와 가족들의 노력으로 거짓임이 드러난다. 진실을 향한 25년의 투쟁 끝에 유니스는 1996년 루벤스의 사망 증명서를 정부로부터 공식 발급받고, 2012년에는 살해 증거 관련 서류까지 확인했다. 그녀가 투쟁한 30년의 세월은 브라질의 민주화 역사와 맞물린다.

이러한 고통을 파이바 일가뿐 아니라 브라질의 수많은 가정이 겪었다. 영화는 수십 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과거사를 명확히 밝히고 심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살레스 감독은 외신과 인터뷰에서 “영화가 망각에 맞서는 놀라운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임 스틸 히어’는 앞서 ‘계엄령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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