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 고문 피해자 유족 "진실화해위 덕에 피해 입증…활동 이어져야”

최환석 기자 2025. 8. 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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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상대 손배소 첫 승소 3.15의거 고문 피해 유족
천봉명 씨 "승소 때 고생한 진실화해위 생각 났다"
4.19혁명 도화선 역사성 강조…"마산이 경험한 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애를 많이 썼어. 진실규명 결정서가 큰 도움이었거든. 아니었으면 소송 제기도 못 했지."

천봉명(80) 씨가 소송 과정을 회상하며 힘줘 말했다.

올해 2월 6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강세빈 판사는 천 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3.15의거 진상규명 사건 중 국가의 정신적 피해 위자료 지급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천 씨는 옛 마산시에서 동림한의원을 운영한 한의사 천기홍(1907~1986) 씨 아들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법률대리인 도움 없이 직접 소송에 나섰다.

천기홍 씨는 1960년 이승만 정권 부정선거에 맞선 3.15의거 당시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시위 주모자로 몰려 철봉과 장작으로 고문을 당한 나머지 거짓으로 '소요죄(이른바 폭동)'를 자백했다.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는 더 큰 희생을 치를 뻔했다.
3.15의거 당시 경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한 고 천기홍 씨 아들인 천봉명 씨. 천 씨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환석 기자

"3월 15일 아침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어. 민주당사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며 방송을 했지. 학교 다녀왔더니 부모님 두 분 모두 잡혀가고 없더라고. 어머님은 글도 모르는 양반이셨는데 말이야. 경찰이 수갑을 채워 붙잡아갔다네. '너희는 피를 좀 흘려야 해'라고 말하면서. 그땐 이승만 반대하면 빨갱이로 몰아가던 시절이었거든. 어머님은 먼저 돌아오셨고 아버님은 계속 붙잡힌 상태였지. 셋째 형님이 쓴 글을 봤는데 아버지가 붙잡혀 간 오동동파출소 근처에 살던 친구가 말하길 고함이 새어나왔대. 경찰 셋이서 아버지를 쇠 파이프 같은 둔기로 막 두들겨 팼던 거야."

그는 65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또렷히 기억하며 말을 이어갔다.

"풀려난 아버지는 혼자 집에서 치료하셨는데 온몸에 고문 흔적이 보이더라고.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했다'는 말을 아버지한테 직접 들었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검찰에서 조사받으면서 허위 자백을 주장하셨어. 증거가 있느냐는 검사 물음에 온몸을 보여주시니까 검사가 '이놈들이 이 못된 짓을 한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대. 아마 검사도 4.19 혁명 조짐을 읽고 무혐의 처분한 것 같아."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굴한 1960년 3월 국회 특별위원회 마산사건조사위원회 속기록에도 참혹한 고문 정황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천기홍 씨는 '총살' 협박까지 들었다고 진술했다.

"(오전) 9시경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디가 어떤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이렇게 합디다. 말도 물어보지 않고 이렇게 해 놓고 난 뒤에 지서장이 말하기를 이놈의 자식이 지서 불지르라고 하고 지서 파괴하라고 하고 순사 다 때려 죽이라고 하고 선동한 놈이라고 하면서 이놈은 당장 총살시킨다고 그런 말을 합디다. 그런걸 들을 때에는 어떻게 떨리는지 말도 못했습니다."
1960년 3월 국회 특별위원회 마산사건조사위원회에 출석해 고문 피해를 증언하고 있는 천기홍(가운데) 씨. /3.15의거기념사업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1961년 이후 들어선 군사 정권, 그리고 그 줄기를 이어받은 김영삼 정부 때까지도 과거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시기다. 민주당계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사'가 조명받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엔 진실화해위원회가 처음 출범했고,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어졌다. 2기 활동 때 비로소 3.15의거 진상규명 조사도 포함됐다. 2022년 10월 4일, 진실화해위원회는 천 씨가 신청한 천기홍 씨 고문 피해 사건을 진실규명 결정했다. 무려 62년이 지나 위법하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국가기관이 인정한 셈이다.

"어디 광고를 보고 진실규명을 신청했지. 실은, 조사로 끝나는 절차였다면 신청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결정을 근거로 국가와 한번 싸워볼 계획이었는데 맞아떨어진 거야. 물론 이길 줄은 몰랐지. 변호사 없이 직접 소송했어. 정부가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결정은 민사소송 입증 자료로 부족하다고 주장하기에 반박했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힘들게 조사한 결과물인데 같은 공무원으로서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자가당착이자 모순이라고. 승소 소식에 기분이 참 좋았어. 고생 많았던 진실화해위원회 사람들도 생각났고. 조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천봉명 씨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당시 준비 서면을 보고 있다. /최환석 기자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오는 11월 26일 활동을 종료한다. 이재명 정부는 3기 연내 출범을 구상하고 있다. 천 씨는 3기에서도 3.15의거 진실규명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꼭 한국소비자원 같아. 소비자가 거래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하소연하기 어려운데 가려운 점을 긁어주니까. 다들 절차가 어려워서, 귀찮아서, 몰라서도 못할 거고. 자연스럽게 포기하고 사는 거지. 진실화해위원회가 아니었다면 손해배상 소송도 시효가 진작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을 거야.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결정서는 소송 입증 자료로 아주 훌륭해. 진실화해위원회가 없으면 인권침해 피해자가 도움 받을 데가 없어. 검찰이나 경찰에서 해주겠나.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계속 유지돼야 해."

끝으로 천 씨는 3.15의거가 4.19 혁명 도화선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3.15의거는 마산에 살면서 우리가 직접 경험한 사건'이라며 이승만 정부 잘못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주열 열사 시신이 공개됐을 때 많은 마산시민이 보러 갔었어. 나도 갔었지.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결국 4.19 혁명이 일어난 거 아니겠어. 불이 나고 총알이 날아다니고 맞아 죽고…. 그게 보통 일이야. 난 민족주의자야. 민족이 힘을 합쳐 통일해야 힘이 강해지지. 반공 교육 영향인지 비슷한 나이대 만나서 대화하면 꽉 막혔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정치 얘긴 잘 안 해."

/최환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