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에 손배소 낸 마용운 씨 "기후 위기로 농사 못 짓는 미래 올 수도"
6명 농민 한전과 발전 자회사 상대 손배소
농업 현실 알리고 기업 책임 묻고자 소송
귀농 15년차 사과농부 기후 피해 일상 돼
답답한 정부, 수입 정책 탄소배출만 늘려
기후 위기 취약층 보상 대책 마련해야

"더는 피해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기후 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농민입니다."
전국에서 모인 농민 6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섰다. 기후 변화로 위기에 몰린 농업 현실을 알리고, 기후위기를 가속화한 기업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이들은 지난 12일 한국전력공사와 5개 발전 자회사를 상대로 기후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원고 1인당 500만 원과 위자료 2035원이다. 위자료 2035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소한 2035년까지 탈석탄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액수로, 지난해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기한으로 잡은 연도이기도 하다.
농민들은 이번 소송이 단순한 손해배상 청구를 넘어 기후위기 책임 구조를 묻고, 기후 취약계층인 농민을 포함해 국민 생존권과 재산권을 보장하고자 벌인 소송이라고 밝혔다. 특히, 국내 온실가스 누적 배출 1위 한전과 발전 자회사를 상대로 농업 분야 기후 피해를 제기해 기후 문제를 공론화할 심산이다.

◇일상이 된 기후위기 = "기후 변화로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어요. 어떨 땐 왜 귀농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마 씨는 15년 전 환경단체 활동가 일을 접고 고향으로 왔다. 부모님이 일군 과수원을 물려받아 사과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소박한 시골생활을 꿈꿨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기후 피해로 농사를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갈수록 기후 환경이 크게 변했다. 겨울이 짧아지고 봄이 오는 시기가 빨라지며, 사과꽃 피는 시기가 열흘 이상 2주 가까이 빨라졌다.
"보통 4월 중순 이후 5월 초에 피던 사과꽃이 2023년에는 4월 8일로 당겨졌어요. 어김없이 냉해 피해가 발생했고, 수확량이 크게 줄었습니다."
사과꽃 피는 시기가 빨라지며 예측할 수 없는 일은 계속 벌어졌다. 저온 현상이 갑작스럽게 며칠 동안 이어지는가 하면, 4월 중순 때아닌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특히, 사과꽃 냉해를 입으면 그해 수확량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2023년에는 예년보다 30%가량 줄었다. 마을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다른 이들도 20∼30% 피해는 기본이고, 지대가 낮은 과수원에서는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농가가 많았다.
기후 변화로 말미암은 피해는 냉해만이 아니다. 온난화가 지속하며 여름철 고온 다습한 환경에 병해충도 창궐했다.
"폭염·폭우가 잦아지며 사과농사를 짓기 더 어려워졌습니다. 여름철 사과병 중 대표적인 것이 갈반병과 탄저병인데 모두 고온 다습한 기후가 원인입니다. 지구가 더워지며 농부들은 끊임없이 병해충과 싸워야 하는 현실입니다."

◇기후위기 지속에도 답답한 정부 = 마 씨는 기후위기로 농촌이 신음하고 있지만 대책이 없는 정부를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다.
"몇 년 사이 사과값이 큰 폭으로 올랐어요. 기후위기 현실에서 생산량 감소로 이어진 탓입니다."
마 씨는 2023년과 2024년 예를 들었다. 2023년에 냉해와 여름철 폭우로 사과 생산량이 급감했는데, 이듬해까지 사과값이 폭등했던 시기다. 생산량이 전년보다 크게 줄어 보통 크기 사과 3개에 1만 원이 넘었다. 그는 "당시 봄부터 여름까지 기상재난 때문에 농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본격적인 출하 이후 계속 사과값이 오르니 금값이다 뭐다 이야기하며 사과를 물가 상승 주범으로 모는 사태가 일어났었죠. 하지만, 정부가 꺼낸 해법이라는 것이 고작 외국에서 망고나 파인애플·바나나를 수입해 사과값을 잡겠다는 것이었어요. 농민들은 황당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죠."
마 씨는 답답한 정부를 비판했다. "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오렌지 등 수입 과일은 배나 비행기에 실어서 우리나라에 옵니다. 이로 말미암아 어마어마한 탄소가 발생합니다. 이는 또다시 지구를 덥게 하고, 더워진 지구는 더 광범위한 기후 재앙을 불러옵니다. 문제를 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마 씨는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대책은 당장 탄소 배출량을 줄여 기후 재난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위기에 처한 농업 또한 기후 재앙을 극복할 수 있을 때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마 씨는 소비자에게 똑똑한 소비를 부탁했다. "농산물을 소비할 때 한 번쯤 기후위기를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금값 사과나 대파 사태는 결국 소비자에게도 손해가 가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먹을거리를 먼저 소비하면 그만큼 농민들을 도와주는 것이면서 일상에서 기후위기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입니다."
◇이대로 가면 모두 생존 위기 = 마 씨는 기후위기로 사과농사를 짓지 못하는 미래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 원인인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가 먹고사는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기후 소송을 낸 이유로 한전과 발전 자회사가 우리나라 이산화탄소 배출량 32%를 차지하는 점을 들었다. 모든 기후위기 책임이 한전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책임도 적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이 2011년부터 2022년까지 배출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연평균 23∼29%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누적 배출량의 약 0.4%에 해당하는 양이다. 특히, 한전은 전체 발전량 95% 이상을 화력발전에 의존하는데, 석탄 발전 비중을 71.5%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솔루션은 한반도에서 1912∼1940년 평균 대비 최근 30년(1991∼2020년) 평균 기온이 1.6도, 강수량은 135.4㎜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폭염·가뭄·집중호우·냉해 등 이상기상 현상이 빈발하면서 재배 가능 작물 범위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마 씨는 농민을 비롯해 기후위기 취약 계층 피해를 보상하는 사회적 해법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기업은 산업구조를 바꿔 탄소 배출 감축과 재생에너지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