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술은 구독되고 일은 달라진다

아들이 대학 2학년이 된 이후로 매달 생활비를 송금해주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어느 날 용돈 내역을 물어보다가 흠칫 놀란 적이 있다. 통신비나 OTT 같은 일반적인 구독 항목에 이어 적혀있는 항목이 눈에 띄었다. 챗GPT 프로 월 구독료 200달러. 처음엔 금액에 놀랐고, 다음엔 그 당연한 소비 방식에 더 놀랐다. 내가 알던 인공지능(AI)은 여전히 기업의 의사 결정이나 데이터 분석 도구였지만, 아들에게는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세대가 AI를 스스로 구독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술이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향후 5~10년내 이들이 실질적 소비자이자 의사결정권자가 됐을 때, 시장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소프트웨어(SW) 시장이 구독 기반 모델로 빠르게 재편되는 지난 몇 년을 포함해 10여년간 SW 유통 시장의 트렌드를 지켜본 결과, 가장 큰 변화는 기술이 조직에 ‘도입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구매 부서가 비교 검토 후 도입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현업 사용자가 먼저 경험하고 조직 전체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AI는 그 경험 방식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 구독 모델 덕분에 접근 장벽이 낮아졌고, 사용자는 일단 써본 뒤 효용을 판단한다. 특히 AI 기능을 탑재한 솔루션은 업무 생산성이나 자동화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시도 후 확산’이란 흐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기능보다 경험이, 사양보다 실사용 효율이 앞서는 시대다. 기술은 연결될 때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 연결을 구조화하고 최적화하는 것이 플랫폼 기업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다.
이미 시장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업 고객들은 이제 제품 기능보다 ‘업무 맥락에 맞는가’, ‘우리 팀이 쉽게 쓸 수 있는가’를 먼저 묻는다. 단순 유통을 넘어 사용자 선택을 돕고 기술 간 연결을 최적화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구독 기반 SW 시장의 다음 단계는 ‘무엇을 얼마나 팔았는가’보다 ‘어떻게 적절히 연결했는가’로 바뀔 것이다. 수많은 솔루션 중에서 진짜 효용 있는 제품을 찾아내고, 조직별로 맞춤 추천을 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플랫폼이 앞으로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이 변화는 기술업계만의 얘기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아들 세대는 앞으로 기업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통째로 바꿔놓을 것이다. 이들은 생성형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연장선으로 사용하며 자란 첫 세대다. 문제 해결 방식 자체가 다르고, 정보를 탐색하고 결론에 이르는 과정도 다르다. 처음 회사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SW는 전문가만이 다루는 복잡한 도구였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기술은 공기처럼 존재하는 환경이다. 기술을 다룬다는 인식조차 없이 기술과 함께 사고하고 판단한다.
기술의 발전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인간을 대체하기보다는, 준비된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줄 것이다. 기업은 이 새로운 세대와 함께 일할 준비가 돼야 한다. 더 빠르고, 더 가볍고, 더 직관적인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면 좋은 인재는 머물지 않는다. 플랫폼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사람 중심의 시스템을 설계한다는 뜻이며, 기술과 사람의 연결 방식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한다. 반면, 인간은 여전히 선형적으로 사고한다. 이 간극을 이해하고, 사람의 리듬에 맞는 기술 접점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플랫폼 기업의 책임이자 기회일 것이다. 그 기회를 준비하는 기업의 대표로서 기술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둔 전환을 만들고 싶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고 시스템이 사회를 설계하는 시대가 다가오는 지금, 우리 사회와 기업이 그 변화에 충분히 준비돼있는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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