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한다고 괜찮아지지 않아요…마음의 힘 길러주세요

한겨레 2025. 8. 1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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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상실 교육
아이들에게 애도할 기회 주지 않는 사회
제대로 애도 하지 않으면 상처만 깊어져
상실 교육의 핵심은 건강하게 슬퍼하기
죽음의 경우 연령에 맞는 접근법이 중요
아이의 감정 충분히 존중하는 태도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일상을 함께하던 대상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한데, 보호자는 쉬쉬하거나 “넌 아직 몰라도 돼”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만 말한다. 교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친구나 교사가 목숨을 잃는 참극이 때때로 벌어지지만, 아이들에게 제대로 상황을 알려주거나 애도할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쉬쉬하고 없던 일 취급을 한다고 해서 정말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애도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마음의 상처는 오히려 깊어지고, 아이는 상실을 직면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도 있다.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상실에 대해 이야기 나눠야 하는 이유다.

아이들에게 상실 교육 필요한 이유

아끼던 장난감을 잃어버리는 일부터 소중한 이의 죽음까지…. 아이들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크고 작은 상실을 겪을 수 있다. 아이들은 아직 죽음이나 상실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때 어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회피하거나, 아이가 뭘 알겠냐고 치부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게 되고 오히려 더 큰 혼란을 겪는다. ‘선생님을 위한 애도 수업’ 공저자인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상실 교육의 핵심은 건강하게 슬퍼함으로써, 상실한 대상을 건강하게 애도할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그는 “슬픔을 억압하거나 회피해 애도가 지연되거나, 건강한 애도를 배우지 못하면 성장에 방해가 된다”며 “거짓 감정을 배우지 않게 하고, 함께 견디는 것을 통해 슬픔을 다룰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상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연령별 맞춤 상실 교육 가이드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라 상실이나 죽음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 그렇기에 죽음의 경우 연령에 맞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아기에는 죽음이 영원하다는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 시기 아이에게는 “강아지가 하늘나라로 갔어.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의미야”라고 솔직하고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주 멀리 여행을 떠났다”라는 말로 둘러대는 것은 더 큰 불안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아동기 아이들은 죽음을 이해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막연한 개념으로 느끼거나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마련이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인지 수준을 잘 가늠한 후 적절히 지도해주는 것이 좋다. 상실을 겪은 아이와 함께 추모 편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유품을 정리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다. 상실을 다룬 그림책도 훌륭한 교육 자료가 된다.

청소년기는 죽음이 모든 생명에게 일어나는 일임을 완전히 이해하는 시기다. 때로는 죽음을 철학적으로 사색하기도 하며, 죽음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기도 한다. 심리 상태가 좋지 않으면 죽음을 하나의 돌파구로 여길 수도 있는 시기이므로, 좀더 세심한 관찰과 죽음의 의미를 성찰적으로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 보호자가 아이에게 ‘대화가 가능한’ 대상이 되어줘야 한다. 아이가 상실을 겪었을 경우는 아이만의 방식으로 추모하고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지하자. 상실을 겪어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부모가 생각하는 애도의 방식을 강요하기보다는, 아이가 원할 때 곁에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상실 교육 시 주의해야 할 점

상실 교육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지만, 잘못된 접근은 아이에게 더 큰 혼란을 준다. 몇 가지 주의점을 참고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먼저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 “울지 마” 또는 “금방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로 슬픔을 억제하지 말자. 특히 아이의 감정을 보호자 기준으로 가늠해 “괜찮아질 때도 됐잖아” “언제까지 그럴 거야?”라는 말로 재촉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이가 슬픔, 분노,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이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오히려 서서히 회복될 수 있다.

아이의 질문을 피하지 않고 진솔하게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아이들은 “왜 죽었어?” “○○도 나중에 죽어?” “자살이 뭐야?”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아이의 질문에 솔직하지만 담백하게 대답해 주는 것이 좋다. 아이의 수준을 넘어선 지나치게 자세한 대답 역시 아이의 공포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 “네가 말을 안 들어서 떠난 거야” “네가 잘해야 아빠가 오래 살지”처럼 협박하는 듯한 농담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장기간 힘들어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소아정신과나 아동심리 상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아이가 건강한 애도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어른이라고 슬픔 감출 필요 없어

보호자 역시 애착 대상을 잃고 상실감에 빠질 수 있다. 이때 많은 보호자나 교사가 아이에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그러나 어른도 상실 앞에서 슬퍼하고 충분히 애도해야 할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슬픔을 감추고 소통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오히려 “나 때문에 슬퍼한다”라고 죄책감을 느끼거나, 죽음의 의미를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보호자가 큰 상실을 겪고 애도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거나 함께 극복하며, 아이 역시 건강한 애도 과정을 배워 나간다.

극단적인 사고, 사회적 참사 등으로 상실을 경험하는 경우에는 감정의 연대를 통한 애도가 중요하다. 진솔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의 질문에 응답하면서, 아이들이 상황에 따라 충분히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 특히 슬픔을 대놓고 표현하기 어려워 하는 사회, 비극적인 사고일수록 쉬쉬하는 한국 가정과 교실 분위기에서 더욱 중요한 지점이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른도 슬프고 힘들 수 있음을 말해줘야 한다. 동시에 이로 인해 아이에게 불안이나 공포를 주지 않을 것이며, 힘들지만 아이를 잘 돌보고 함께 지낼 거라는 안심을 주는 게 중요하다”며 “아이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어른 자신의 슬픔임을 잘 알려줘야 한다”고 감정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실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동시에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기어코 일어나고야 마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힘이, 결국 살아가는 힘이기도 한 이유다.

■ 상실을 겪는 아이와 보호자를 위한 책

1. ‘선생님을 위한 애도 수업’(김현수·위지영·이윤경·김대운 저, 창비교육)

학교 안팎의 죽음으로부터 학생과 교사를 돕는 애도 가이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 방법은 물론, 행정 실무 매뉴얼과 애도 수업 지도안까지 담겨 있는 실용적인 책이다. 친구나 교사의 죽음에 슬퍼하는 학생들을 두고 볼 수 없어 고민하던 선생님들의 요청이 모여 탄생한 책으로, 학교의 마음 건강을 위해 애써 온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주도로 세 명의 현장 교사들이 힘을 보탰다.

2. ‘작은 죽음이 찾아왔어요’(키티 크라우더 저·이주희 그림, 논장)

펄럭이는 옷소매, 커다란 낫, 머리까지 뒤집어쓴 검은 옷…. 하지만 죽음은 상냥한 작은 아이다. 작은 죽음은 조심조심 곧 세상을 떠날 사람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손을 내밀지만,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부들부들 떤다. 그림책 ‘작은 죽음이 찾아왔어요’는 어린이 독자에게 금기라고 여겨지는 죽음을 정면에서 다루며 죽음과 삶의 의미를 전한다. 섬세한 그림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렵고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죽음의 의미를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3. ‘무릎딱지’(샤를로트 문드리크 저·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울림어린이(한울림))

그림책 ‘무릎딱지’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다소 충격적이고 무거운 이야기를 아이의 눈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냈다. 처음에는 엄마의 죽음에 분노하고 부정하다가,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엄마가 항상 가슴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무릎딱지’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4. ‘묻고 싶어 죽겠어요-어른들에게 묻지 못한 삶과 죽음에 관한 38가지 질문' (에옌 두티에아나 후안 칸타베야 저·안드레아 안티노리 그림, 미래엔아이세움)

전세계 아이들이 보낸 죽음에 관한 질문을 모아 답한 책이다. 죽으면 게임기는 어떻게 되는지, 엄마 아빠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등 현실적인 질문부터 철학적인 질문까지 어른들에게 차마 물어보지 못한 솔직하고 편견 없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아동기 이상의 아이들이 보기에 적합하다.

5.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이로아 저, 문학동네)

모든 죽음이 비극이지만, 사회적 참사는 아이들에게 살아있다는 죄책감을 알게 모르게 심어주기도 한다. 참사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보면서, 아이 역시 피해자다움이나 애도의 자격에 대한 편견을 학습할 수도 있다.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유가족의 삶과 분투를 통해 기억과 애도, 연대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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