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공감] 무대·연습실 벗어나 연극인들이 예술에 더 빠져들 공간

주성희 기자 2025. 8. 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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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통영 '제3의 공간'

통영 극단 벅수골 배우·기획자 합심
가정집 건물 수리해 희곡도서관 만들어
국내외 희곡집 700여 권 빼곡
이동형 무대와 숙소, 카페도 마련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던버그(Ray Oldenburg)가 1989년 발간한 책에서 처음 제안안 '제3의 공간(Third Place)'은 특히 요즘 들어 현대인에게 중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간단히 말해 집이나 가정(제1의 공간)이나 직장(제2의 공간)이 아닌 편안하고 자발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정서 회복과 사회 연결, 삶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최근 통영에 연극인을 위한 제3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15일에 문을 연 통영 '제3의 공간' 외관. /주성희 기자

통영시 도천동 해저터널 입구에서 마을 방향으로 가면 '제3의공간'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철물점을 끼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입간판이 반겨준다. 50년 전에는 대한천리교가 썼고, 또 오랜 시간 가정집으로 있던 건물에서 원형은 살리고 내부를 수리해 15일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이 공간을 만든 건 통영 극단 벅수골 이규성 배우와 제상아 기획자다. 이 배우가 공간 대표를, 제 기획자가 운영을 맡고 있다. 이런 공간을 만들 생각을 한 건 둘이 연극을 처음 시작하던 30년 전부터라 할 수 있다. 제 기획자는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꿈꿀 복합 문화 공간을 소위 말해 사고 치듯 문을 열게 됐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는 "연극과 문화는 일상에 스며들어야 하기에 생활과 문화가 다 들어올 수 있도록 계획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으로는 연극인들에게 제1의 공간은 개인 일상 공간이다. 제2의 공간은 연극인들의 정체성인 무대다. 제3의 공간은 무대나 연습실에서 벗어나 또는 연극을 더 폭넓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통영 '제3의공간'은 이렇게 연극인이 쉬면서 다시 창조적인 기운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

1층에는 스크립트(Script·희곡)와 스토리(Story·이야기)를 합친 단어 스크립토리(Scriptory) 가게가 있다. 14평 정도 되는 공간에 커피와 각종 음료, 포도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펼치는 공간이다. 희곡 서적도 구매할 수 있다. 2층에는 45평짜리 희곡도서관이 전체 공간의 중심부이면서 사랑방 역할을 한다. 연극을 뜻하는 플레이(play), 대화를 뜻하는 영단어 다이얼로그(dialogue), 독백을 뜻하는 모놀로그(monologue)를 합쳐 플레이로그 살롱(Playlogue Salon)으로 이름을 지었다. 112칸의 책꽂이에는 국내외 희곡집과 아동극 희곡집 700여 권이 채워져 있다.
통영 '제3의공간' 2층 플레이로그 살롱 내부. /주성희 기자

희곡집들은 장창석 벅수골 대표가 50년 동안 모아놓은 것에다 최근 기부받은 것들이 더해졌다. 현재 한국연극협회 경남지회장인 제 기획자가 개인 누리소통망(SNS)에 희곡도서관을 열겠다는 소식을 알리자, 전국에 있는 연극인들이 소장하거나 자신이 쓴 희곡집을 보내왔다. 희곡도서관이니만큼 희곡집을 소리 내 읽어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희곡을 꺼내 읽는 것 자체로도 연극의 한 장면을 만드는 행위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로그 살롱에는 이동할 수 있는 원형 무대가 있어서 공연을 열 수 있다. 연극만큼이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특별한 공간이다. 소규모 음악 공연부터 전시, 토론회, 인문학 강의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일 수 있다.

32평 정도 되는 숙소는 건물 오른편에 또 다른 출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장기 체류도 염두에 둔 장소라 통영에서 한달살이, 1년살이를 하기에도 좋다. 통영 바다와 통영생태숲이 인근에 있어서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다. 또 서호시장과 걸어서 오갈 수 있다. 방 이름은 연극적 요소를 살려 1막 1장부터 1막 4장으로 붙였다. 방으로 들어서기 전 부엌과 세탁기를 쓸 수 있는 공용 공간이 있다.
통영 '제3의공간' 숙소 트윈룸. /주성희 기자

지난달 15일 임시로 문을 열고 시범으로 운영했다. 그동안 경남 여성 연극인 워크숍이 이곳에서 진행됐다. 2층 희곡도서관에서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여 희곡을 읽고 분석할 수 있고, 1층에 숙소가 있어 가능했다.

'제3의공간'은 연극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네이버 예약으로 누구나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 평일에 싱글 5만 원, 트윈 6만 원이다. 주말과 성수기에는 각 7만 원, 10만 원이다. 예술인은 할인 적용을 받는다.

'제3의공간'은 보조금, 지원금 없이 이 대표와 제 기획자가 자발적으로 만든 곳이다. 운영자가 연극인이라 공연이 있는 날에는 문을 닫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은 관광객과 시민, 예술인 또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에게 열려있다.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