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62) 영웅들의 사랑

강시일 기자 2025. 8. 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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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녀와 이루지 못한 김유신의 사랑, 김유신 장군의 누이와 인연을 맺은 김춘추의 사랑
경주 남산자락에 최근 복원된 천관사지 삼층석탑. 이형으로 몸돌이 팔각형으로 구성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의 에너지는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는 주장은 찾기 힘들다. 세기말적인 전쟁도 사랑으로 비롯되었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라 최고의 영웅이라고 하면 김유신 장군과 태종무열왕 김춘추, 두 사람의 이름은 당연히 포함된다. 유신과 춘추 두 영웅도 사랑이 있었다. 물론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하나의 인간으로 순수하게 마음에서 싹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긴 인간적인 사랑을 주제로 소개한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김유신의 천관녀와의 사랑과 김춘추가 왕이 되었을 때 왕비좌에 앉은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역사 기록에서 옮겨와 스토리텔링해 새로운 영웅들의 사랑 이야기로 소개한다.
김유신 장군이 어릴 적의 사랑 천관녀가 살고 있던 집에 절을 지은 천관사 터의 석재.

◆신화전설1: 화랑 김유신과 천관녀

고려시대 이인로가 지은 '파한집'에 등장하는 김유신과 천관녀의 사랑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실려 국민들에게 교훈으로 전하고 있다.

김유신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손자 김서현의 아들이다. 김유신은 가야의 후손으로 등에 북두칠성의 무늬가 새겨진 별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 삼국통일의 주역이 됐다. 영웅도 자라면서 많은 일들을 경험한다.

유신의 집 건너편에 천관녀라는 별을 보며 하늘의 기운을 점치는 신라의 관리가 살고 있었다. 천관녀는 밤에 별을 관측하는 일을 하면서 주야가 바뀐 삶을 살아가는 서라벌의 규수였다.

그녀가 사는 집은 유신의 집과 월성에서 남천을 건너 남산자락 화랑들의 훈련장 부근이었다. 그녀가 일하는 첨성대와는 천천히 걸어도 2각이면 넉넉히 당도할 정도로 가까웠다.

천관은 어머니가 하늘의 기운을 살피는 일을 해오던 터라 어릴 때부터 천문지리에 대한 공부를 하여 별자리와 기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남달리 뛰어났다.

천관은 방년 18세에 이르러 하늘의 기운을 감지하면서 내심 놀라기도 하고, 두려움에 빠져들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북두칠성이 7주야를 주기로 하여 크게 한 번씩 빛을 발하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천관은 어머니와 함께 신라에 큰 인물이 탄생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인물은 스스로 빛을 만들어 가득 차게 되면 쏟아내고 다시 채워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즉 북두칠성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는 사람은 스스로 빛나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운명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잘못 생각하게 되면 큰 액운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모녀의 판단이었다.
천관사지의 우물터.

더욱이 최근 들어 북두칠성의 기운이 천관녀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의 고리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어 당황스러운 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관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측간에서 나서는 데 눈 앞에 쿵하며 날아내리는 사내가 있었다. 담장을 훌쩍 날아올랐다 집 안으로 떨어져 내리는 사내의 등이 펄럭이는 옷자락 사이로 훤하게 드러나 보였다. 놀랍게도 천관이 그토록 관심을 가지고 살펴오던 북두칠성이 그 사내의 등에서 순간적으로 번쩍하며 빛을 발했다. 북두칠성의 무늬를 등에 새기고 태어난 김유신이었다.

화랑도들이 축국을 하다가 공이 천관의 집 안으로 넘어가버리자 그 공을 찼던 유신이 공을 찾기 위해 그의 날렵한 몸을 천관의 집 안으로 날려왔던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고함을 지르며 입을 벌리고 선 채 석고상이 되어버린 천관녀를 돌아다 본 김유신 또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름다운 미녀가 내의 차림으로 자신을 마주보면서 서 있으니 유신도 그만 넋이 나가버렸다.

그날 이후 유신과 천관은 매일 이런저런 핑계로 만남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음이 통해 두 사람은 만리장성을 쌓고 장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유신이 천관의 일터인 첨성대 안으로 불쑥 찾아왔다.

깜깜한 첨성대 안에서 한 차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천관녀는 유신을 엎드리게 하고는 북두칠성의 기운을 다시 확인했다. 이어 유신에게 일어나 정좌하고 운공을 하게 했다.

유신은 아무런 생각없이 피로를 날릴 겸 서너차례 호흡을 가다듬고는 이내 운공을 하며 무아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이때 천관은 뒤에서 가만히 앉아 하늘의 별과 유신의 등에서 반짝이는 별을 번갈아 확인했다. 유신의 등에서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하면서 피부에 박혀있던 별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점점 서로 연결된 선들이 분명해지면서 기의 흐름이 활발해 졌다.

유신은 북두칠성의 기운을 타고난 하늘의 천신이었다.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들을 복된 삶으로 인도하는 짐을 지고 내려온 것이다. 하여 유신은 많은 일을 하게 되지만 스스로는 왕이 되지는 못하는 운명이다. 천관은 차마 끝부분의 '당신은 왕이 되지는 못한다'는 말을 뱉어내지 못했다.

가만히 그의 등을 쓰다듬은 천관은 "당신의 기운을 이어받은 아이를 낳아 훌륭한 인물로 키우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하여 당신의 일을 거들어 드리게 할 것입니다"라고 하며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이 파국을 맞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경주 황성공원에 설립된 김유신 장군 동상.

◆흔적: 천관사지

천관사지는 경주시 탑동, 월성의 맞은편 경주 남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김유신이 젊은 나이에 사랑했던 천관녀를 기리기 위해 나이 들어 그녀의 집이 있었던 곳에 절을 지어 천관사라 불렀다.

천관사가 있었던 곳에서 '태대각간'이라는 글이 나와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를 정벌하고 받은 벼슬이어서 절은 장군의 말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천관사에는 이형 삼층석탑이 있었다. 신라를 통틀어 팔각형의 몸돌은 여기에서 처음 나타나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발굴에서 금당지를 비롯한 여러 건물 흔적과 우물터가 드러났다. 2020년대 들어와 복원한 삼층석탑은 이형 석탑으로 넓은 절터에 우뚝 솟아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김유신 장군과 혈연으로 가족관계를 맺은 태종무열왕의 영인. 통일전에 안치돼 있다.

◆신화전설 2: 춘추, 사랑의 힘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이름은 춘추이며 성은 김씨로서 용수 또는 용춘 각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대왕의 딸인 천명부인이고 왕비는 유신공의 막내누이 문명황후 문희다.

처음 문희의 언니인 보희가 꿈에 서악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오줌이 서울에 가득찼다. 다음 날 아침에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문희가 듣고 말하기를 "내가 그 꿈을 살께"라 했다. 언니가 "어떤 물건을 주겠느냐?"라 하니 "비단치마를 받고 팔면 되겠지?"라고 했다. 언니가 좋다하여 동생인 문희가 옷섶을 벌리고 꿈을 받는데 언니가 말하기를 "간밤의 꿈을 너에게 준다"고 했다. 동생이 비단치마로써 꿈 값을 치렀다.

열흘 뒤에 유신이 춘추공과 함께 정월 오기일에 유신의 집 앞에서 공을 찼다. 유신이 일부러 춘추의 옷을 밟아서 옷고름을 떨어뜨리게 해 놓고는 청하기를 "우리 집에 들어가 꿰맵시다"라 하니 춘추가 이에 따랐다. 유신이 아해에게 꿰매드리라고 하였더니 아해가 말하기를 "어찌 하찮은 일로 가벼이 귀공자를 가까이 한단 말입니까?"하고 사양했다.
경주 서악의 태종무열왕 귀부.

이에 아지에게 시켰더니 춘추공이 유신의 뜻을 알고 드디어는 아지와 정을 통하게 되었으며 그 후 자주 서로 만났다. 유신이 그의 누이가 임신한 것을 알고 "네가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으니 웬일이냐?"고 꾸짖었다. 이어 유신이 짐짓 크게 화가 난듯이 그 누이를 불태워 죽인다고 하여 온 나라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유신공은 선덕여왕이 남산에 산책하러 가는 날을 손꼽아 뜰 가운데에 솔잎가지를 가득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집안은 물론 마을 전체에 연기가 가득 퍼지면서 하늘높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여왕이 그것을 바라보고 무슨 연기냐고 물으니 측근 신하들이 말하기를 "아마도 유신이 그 누이를 불태워 죽이는 것 같습니다"라 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 누이가 남편도 없이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라 했다. 왕이 "그것이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으니 이때 춘추공이 왕을 모시고 앞에 있다가 얼굴색이 크게 변했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이 그대의 소행이로구나. 빨리 가서 구하라"고 다그쳤다.
경주 선도산자락에 조성한 김유신 장군의 누이 보희의 이름을 따서 지은 보희연못.

춘추공이 왕의 명에 따라 급히 말을 달려 "유신공 멈추시오. 여왕폐하의 명령이오"라며 다급하게 외쳤다. 춘추는 유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누이를 사랑하여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소. 여왕의 허락은 얻었으니 공이 허락해 주신다면 혼인을 하겠습니다"라고 하여 문희 낭자와 춘추는 혼례를 올리게 됐다.

춘추가 29대 무열왕으로 즉위하자 유신의 누이 문희는 왕비가 됐고, 그들이 낳은 아들은 문무왕으로 즉위해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성군이 됐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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