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품은 바닷가 마을 ‘곽지’

심규호 2025. 8. 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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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호의 제주 마을 이야기] ⑤ 곽지에서 금성으로(上)

제주의 진가는 멋진 관광지에만 있지 않다. 중산간부터 바닷가까지 긴 세월에 걸쳐 주민들이 뿌리 내리며 살고 있는 곳, 바로 마을에서 더욱 멋진 제주를 만날 수 있다. 2025년 새해를 맞아 심규호 중국학회회장이 신발 끈을 질끈 묶고 제주 마을로 향한다. 심규호 회장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마을 이야기를 [제주의소리]를 통해 만나보자. [편집자 주] 

한담 바닷가 길을 따라 

애월포구에서 해안가를 따라 곽지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지도에는 한담해안산책로인데, 예로부터 곽지의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오가던 소릿길(소로)이었기 때문에 곽지 ᄌᆞᆷ녀의 길이라 칭하고, 곽지 해수욕장을 거쳐 금성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곽금올레길(일부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안가 길은 계속 이어져 귀덕 1,2리를 거쳐 한림까지 이어진다. 제주 올레길 15-B코스가 바로 이곳이다. 이처럼 이름이 많은 까닭은 여러 마을에 걸쳐 있고,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찾는 아름다운 길이기 때문이다. 

길이란 무엇인가? 대지에 놓인 선이다. 선은 넓혀지고 좁아지며, 모여들고 펼쳐지며, 높아지고 낮아진다. 그 선을 따라 사람과 물자가 오가고, 그 주변으로 선형의 가옥과 논밭, 그리고 시장이 들어선다. 시작은 알 수 없으되 하나의 점이 선이 되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선은 생명을 낳고 희망을 부르며, 도전과 응전으로 이어진다. 또한 그 선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별을 부른다. 그 선이 바로 길이다. 

애월의 바닷가 길은 길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알맞다. 오로지 길만으로 사람을 촉촉하게 만든다.               
 
오래된 마을 곽지

곽지는 오래된 마을이다. 기원전에 이미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 패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곽지 패총은 1973년 6월 처음 발견되었다. 패총은 곽지 외에도 제주 곳곳에 있다. 특히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의 패총유적이 유명하다. 하지만 곽지처럼 7 군데나 두루 자리하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그 중에서 5군데는 제주도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었는데, 곽지리 2033-1번지 일대, 곽금초등학교 주변이다. 패총 발굴 유물 가운데 민무늬토기(무문토기)는 그곳이 청동기시대에 조성되었음을 알려준다. 청동기 시대의 상징적인 유물은 민무늬토기와 간석기(마제석기), 그리고 조립식으로 제작된 비파형동검이다. 그 가운데 비파형동검은 주로 요하遼河 주변에서 많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북방에서 전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제주의 청동기문화는 북방에서 전래되었으며, 현재 중국 요녕성과 내몽고에 걸친 서요하 유역의 신석기 문화인 홍산문화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홍산문화는 어디에서 왔는가? 중원문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를 보다 정확하게 사실대로 파헤쳐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나올 것이다. 

각설하고 곽지패총은 패총貝塚이라고 하나 조개나 굴 외에도 사슴, 노루, 소, 돼지, 말, 개, 오소리 등 육지 동물의 뼈도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육지의 경우 청동기 시대에 들어오면서 가축을 식용으로 사용한 데 비해 제주는 여전히 수렵을 통해 육식동물을 섭취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나 돼지, 개 역시 가축이 아니라 멧돼지나 들소, 들개였다는 뜻인가?    
뜬금없는 생각

아마도 멧돼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멧돼지는 어떻게 집돼지가 되어 통시(뒷간)에서 기르게 되었을까? 혹시 들개가 사람들에게 길들여지기 시작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인분人糞' 때문이 아닐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들개 가운데 일부 견종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인분을 먹게 되면서 점차 가축화되었다고 하는데, 멧돼지도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사자는 먹이를 잡으면 수분이 많은 내장부터 섭취한다. 사실 똥은 수분이 적긴 하지만 내장에서 나온 물질이다. 개가 똥을 먹는 것은 이런 점에서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멧돼지도 그렇지 않을까? 멧돼지가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내려와서 먹이 활동을 하면서 점차 인분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멧돼지는 인분을 먹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분이 쌓여 있는 곳에서 돼지를 기르게 된 것이 아닐까? 물론 가설이다. 다만 왜 통시에 돼지를 기르는가에 대한 이유, 제주의 돼지가 똥돼지가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까닭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따름이다.

과오름

패총이 바닷가 근처에 있으니 아마도 곽지에서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을 터이다. 그러다가 1002년 비양도 화산이 폭발하면서 해일이 일어나 해안가 마을이 쑥대밭이 되자 사람들은 한라산 방향으로 좀 더 올라가 생활터전을 잡았다. 그곳이 바로 과오름(곽지악, 곽악) 아래쪽이다. 곽지라는 지명도 과오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혹자는 오름의 모양새가 성냥곽 같아 곽오름이라 불렀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소가 누워 있는 형태와 비슷하여 와우봉臥牛峰인 것이 와전되어 과오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냥곽이 언제 생겼다고 그리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 흔한 와우臥牛, 또는 와우봉臥牛峰으로 과오름, 곽지를 퉁치려 드는가? 구어에서 '곽'이 '과'로 받침 탈락이 있을 수는 있으나 '과'가 돌연 '곽'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곽'이나 '과'나 같은 뜻 아니었을까? 그 연원을 자세히 알 수 없어 답답하나, 분명 과오름(곽악)과 관련이 있겠다 싶다. 

과오름은 표고 155m로 그리 높지 않으나 너비는 2,421m이며 세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주봉은 큰오름, 둘째는 샛오름, 막내는 말젯(세째의 제주어)오름이다. 세 봉우리가 있어 곽악삼태郭岳三台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태台'는 조금 이상하다. 이 글자는 엄마 뱃속에 든 아이의 머리가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태胎가 본래 뜻이다. 태台에 기르다, 양육하다는 뜻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삼태'라고 하면 재상이나 중신 등 '삼공三公'의 뜻이다. 고려시대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을 일러 '삼태'라고 했다. 여하간 뭔가 어색하다. 차라리 '대臺'와 같은 뜻으로 보면 어떨까? 사방이 평평하고 높은 곳을 일러 '대'라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곽악삼태'가 아니라 '곽악삼대'라고 해야 맞다. 臺灣이나 台灣이나 모두 대만이라고 쓰지 않는가? 

과오름이 뒤편에 있고, 그 주변이 제법 넓어 밭농사를 짓기에 좋고, 곳곳에 과물이며 남당물 등 용천수가 솟구쳐 물이 풍부하고,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니 굳이 배산임수背山臨水 운운치 않아도 사람 살기 좋은 곳이 아닐 수 없다. 김해 김씨 입도조 좌정승 척재惕齋 김만희金萬希도 애월포로 들어와 과오름(곽지악郭支岳) 자락에서 살았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과물노천탕.

석경감수石鏡甘水

곽지에는 물이 넘쳐난다.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한라산 깊은 땅을 지나 이윽고 산의 끝자락에서 터져 나오는 용천의 물은 사람과 동식물의 생명수가 되고,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단비의 역할을 맡는다. 민물이 솟아나오는 곳이 적지 않아 아예 'ᄃᆞᆫ물개(민물이 나오는 포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석경감수.

석경감수는 곽지 해수욕장 입구 정면에 자리한 과물노천탕의 옛 이름이다. 비문에 보면, "석경은 우물 위치의 지명이며 감수는 물맛이 좋아 위치와 맛을 뜻하는 석경감수石鏡甘水라 한다."고 적혀 있다. 석경은 돌 거울이다. 반들반들한 돌이 청동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샘물의 맑음을 수식하는 말이 아닐까? 돌 거울처럼 맑고 깨끗한 단물이란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예전에는 식수(여탕)로 사용하거나 마소에게 물을 먹이고 몸을 씻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여탕과 남탕으로 나뉘어져 노천탕이 되었다.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사람이 많더라도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다. 사방이 막혀 있으니 홀딱 벗고 물을 맞는데, 하나 둘 셋 넷 대략 서른쯤 세면 끝이다. 마을사람들이 애써 만들어 누구나 시원함을 맛보게 했다. 그래서 이것만으로도 곽지의 인심이 푸근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여름 땡볕에 달궈진 온몸을 과물로 씻고 저녁 바닷바람 맞으며 돌아오는 길에 혼잣말을 한다. 잘 했어! 곽지, 아니 제주에 오길 잘 했어. 
 
여름이면

여름이 되면 곽지로 간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 큰 맘 먹고 바닷가에 나갈 때면 시외버스 타고 한참 걸려 곽지에 도달했다. 안 사람은 작은 아이 업고 나는 한 손에 큰 아이 손잡고, 다른 한 손에 짐 들고 타박타박 걸어 바닷가에 도착했다. 사면이 바다이니 해수욕장이 곽지만 있는 것은 아닌데, 한여름 뙤약볕에 삐질삐질 땀 흘리며 굳이 그곳을 찾은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지금은 편의점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에 다리 불편한 아저씨랑 씩씩한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점방에서 병맥주 한 병, 베트남 쥐포 두어 개를 집어 들면 그 자리에서 쥐포는 구워주고, 맥주병은 따주었다. 몇 번 들락날락하다 정이 들어 곽지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되었다. 사람은 자주 봐야 정이 든다. 가게의 주인은 계산에 서툴러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사면 때로 거스름돈을 좀 더 많이 주기도 하고, 적게 주기도 했다. 그냥 넘어갔다. 굳이 따질 생각이 없는 곳, 곽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곽지의 여름은 허허롭게 지나갔다. 

이유는 또 있다. 다른 해수욕장과 달리 곽지에는 할망바당 마냥 아이바당이 있다. 해수욕장 한쪽 편에 크고 작은 여가 자연스럽게 만든 바당이 아이바당이다. 예전에 원담으로 멜을 잡을 때 사용하기도 했을 그곳은 어린 아이들이 놀기에 딱 좋은 크기와 깊이다. 물이 빠질 때면 이곳저곳 샘솟는 민물이 깊은 구멍을 만들어 어른, 아이가 함께 다리를 집어넣고 깔깔대며 놀기 좋다. 굳이 집 아이들을 업고 안고 이곳에 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곽지 해수욕장은 제법 긴 모래사장으로 유명하다. 이를 일러 진모살이라고 하는데, 제주어 진은 한자어 '장長'의 뜻이다. 모래가 많으니 울타리 안에 있는 텃밭도 모살우영이고, 서쪽에 있는 모래 많은 밭은 섯모살이며, 모래가 바람을 타고 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담을 사방을 에웠다는 뜻에서 '에운밧'이라고 한다.  

곽지의 저녁노을

맑은 날 과물노천탕에서 몸을 씻고 나올 때쯤이면 멀리 서쪽 하늘가에 둥근 해가 걸려 있기 마련이다. 고즈넉해지는 저녁바다의 노을도 아름답거니와 한여름의 더위를 가져가는 바닷바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본다. 

서쪽 바다이니 당연히 어디든지 낙조가 멋지다. 곽금팔경에도 연대낙조라고 하여 연대煙臺에서 바라보는 해 떨어지는 모습을 곽지의 절경으로 손꼽았는데, 여기에 오언고시를 부기해본다.

消夏在郭濱, 海風吹干炎.  
返照西天紫, 忽恍如夢境. 
恋恋舍不得, 茫然望又望. 
蜃樓忽無存, 漁火飘浮空.
夜晚催促歸, 却猶豫何故.
大塊說道我, 凡生者必滅.
躊躇而忘返, 着想暮年境. 

곽지 해변에서 더위를 식히고 해풍에 몸 말리며 돌아오는 길
멀리 서쪽 하늘에 해가 떨어지니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은 색이로다. 
잠시 멈춰 고개 돌리니 구름마저 붉게 물들어 황홀경을 선보이는데
차마 놔두고 올 수 없어 망연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네.
어느새 신기루는 사라지고 허공에 둥실 어화 떠올라
돌아갈 길 재촉하는데, 여전히 머뭇거림은 무엇 때문인가?
자연의 섭리는 생겨나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기 마련이라 말하니
발길 돌리며 생의 만년이 아름다우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생각하네.

낙조는 나를 주저躊躇하게 만들고 저망佇望케 한다. '주저'는 머뭇거림이고, '저망'은 우두커니 서서 멀리 바라봄이다. 어두워지니 바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야할 길은 먼데 아름다운 풍광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잠시 머뭇거릴 밖에.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