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묻은 장난감 고쳐 아이들에 선물… 환경까지 살리는 ‘토이 파파’[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6) 장난감 순환사업 구축한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
필요없거나 고장난 것 기부받아
수리·세척·포장후 취약층 전달
못고친 제품은 재생소재로 활용
年 300t 가량 되팔아 수익 창출
어르신 100여명 수리 작업 투입
울산 노인일자리 창출에도 한몫
입소문 타고 전국 곳곳 사업 제의
현대차 등 대기업과 ESG 협업도
유엔서도 찾아와 시스템 배워가

울산 = 곽시열 기자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3’의 마지막 장면. 대학에 들어가게 된 주인공 ‘앤디’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장난감 처리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추억이 켜켜이 쌓인 장난감을 쓰레기매립장에 버리거나, 다락방에 방치하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앤디는 결국 자신이 갖고 있던 장난감을 모두 이웃 소녀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고한다. 기부를 통해 장난감과 새 주인 모두에게 행복을 안겨준 감동의 결말이었다. 이 같은 영화 속 장면이 현실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울산에서 장난감 순환 사업을 하는 코끼리공장 이채진(40) 대표가 현실 속 주인공이다. 이 대표는 코끼리공장을 통해 불필요하거나 고장 난 장난감을 기부받아 이를 수리·세척·포장과정을 거친 뒤 취약계층 아동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한다. 아예 수리가 불가능한 장난감은 폐기물로 버리지 않고, 재생소재로 재활용하는 완벽한 자원 순환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최근 울산 울주군 웅촌면 코끼리공장에서 장난감 더미에 파묻혀 비지땀을 흘리며 수리작업을 하고 있는 이 대표를 만났다.
◇어린이집 교사 꿈 버리고, 장난감의 아버지로 변신= 어린이집 교사가 꿈이었던 이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과 아동복지학을 복수 전공했다. 그는 “남자가 무슨 어린이집 교사를 하느냐”는 주위의 시선에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결국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3학년 때부터 아동복지학을 전공했다. 이 대표는 “아이들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함이 행복 수치를 올려주고, 미래에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생각 등이 겹치면서 아동에 대한 공부를 포기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어린이집 교사는 감히 시도도 못 해 보고 부모의 권유 등으로 울산시 산하 한 공공기관에 취업했다. 그런데 1년쯤 지났을까, 공단 체육시설을 찾은 장애아동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포기했던 꿈이 되살아났다. 그는 “당시 장애아를 돌보고 이들의 어려움을 함께하면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꿈틀거렸다”고 회상했다.
곧바로 사표를 낸 이 대표는 잠시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다 2008년 울산 육아종합지원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고 가정에서 양육하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업무를 맡았다. 육아비 절감 차원에서 2주 동안 장난감을 빌려주고, 다시 회수해서 다른 아이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이 일은 결국 이 대표가 ‘장난감세상’에 빠져든 계기가 됐다.
이 대표는 당시 2억 원을 들여 아이들에게 빌려줄 장난감을 구매했는데, 제작사도 유통사도 아무도 고장 난 장난감을 고쳐주지 않아 막막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직접 장난감 수리에 나선 것이다.
이 대표는 “장난감을 고쳐 쓰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고 나서는 이가 없어 ‘직접 장난감을 수리해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2011년 손기술이 좋은 아이들 아버지 10여 명으로 구성된 장난감 수리 봉사 단체인 ‘아빠 장난감 수리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아이들에게 장난감도 고쳐주고, 아버지의 육아 참여도 이끌어 내 양육효능감을 높여주기 위한 이 대표의 복안도 숨어 있었다. 이후 장난감 수리단은 고장 난 장난감의 70~80%를 수리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고, 이 사업은 그해 보건복지부장관상을 타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장난감 순환의 심장, 코끼리공장의 탄생= 이 대표는 2014년 장난감 수리단 사업으로 고용노동부의 창업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기존 봉사단체를 법인으로 전환하고,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었다. 취약계층 청년을 고용해 어린이집 등 아동기관에 소독·방역·장난감 수리를 하는 아동기관 관리 서비스업이었다. 이때 만들어진 법인이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이다.
그는 “처음에는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지역 50곳의 어린이집과 계약하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일감이 많아 6개월 만에 매출 3000만 원의 실적을 올렸다”며 웃었다.
이후 코끼리공장은 2021년 울산 중구 성안동에 장난감 기부와 교환, 수리, 환경교육이 가능한 ‘에코스테이션’을 설립하면서 장난감 전문 순환공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대표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지역 사회로부터 장난감을 기부받아 새 장난감으로 교환을 해주고, 고장 난 장난감은 수리해서 다시 나눠주는 장난감 재활용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말에는 울산 울주군에 폐기물 공장도 조성했다. 기부받은 장난감 중 도저히 수리가 불가능해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것은 파쇄해 재생 소재를 만들어 다시 재활용하기 위해서다.
현재 이곳 코끼리공장에서 수리를 거친 장난감은 국내 아동시설에 연간 5만~6만 개, 외국 아동기관에 2만~3만 개 정도가 기부될 정도로 나눔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며 가정에서 방치돼 있던 장난감 기부가 늘어났는데, 최근에는 하루 2t 정도가 공장으로 모여든다”며 “이 중 70%는 수리해서 나눔을 하고, 도저히 못 쓰는 30%의 장난감은 분해과정을 거쳐 재생소재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끼리공장의 주 수입원은 못 쓰는 장난감을 녹였을 때 나오는 재생소재다. 폐기물 공장을 짓기 전에는 돈을 주고 버렸지만, 지금은 모두 합성수지(ABS) 등의 원료로 지역 석유화학업체에 되판다. 연간 300t가량이 나오는데, 매출이 40억 원에 이른다. 코끼리공장은 자원 순환에 이어 어르신 일자리 창출이란 사회 가치 창출에도 힘을 보탠다. 현재 울산에서는 정직원 25명 외에 100여 명의 어르신들이 동화 속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버지’가 돼 장난감을 수리, 새 주인을 찾아주고 있다.
이 대표는 “울산에는 손재주가 있는 기업 퇴직자가 많아 장난감 수리·소독 작업에 이분들을 모시고 있다”며 “장난감 기부가 갈수록 많아지고, 일감이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울산에만 1000개의 어르신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대기업·세계가 찾아오는 코끼리공장= 플라스틱 환경오염이 사회문제가 되고, 기업들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이 강조되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대기업까지 코끼리공장에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
먼저 부산시가 지난 2023년부터 코끼리공장과 협업을 통해 ‘우리동네 ESG센터’라는 이름으로 장난감 순환 재활용 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부산에서는 6개의 ESG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곳에는 30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장난감 수리 재활용작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도 서울디자인재단과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등과 함께 이 대표와 ‘서울형 세대이음 자원순환도시 조성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장난감 순환사업에 뛰어들었다. 내년에는 서울 도심 곳곳에 ‘서울형 코끼리공장’이 문을 열 전망이다.
이 대표는 “장난감 순환 사업이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 서울을 비롯해 인천, 충남, 충북 등 전국 곳곳의 지자체에서 도심형 코끼리공장을 만들자고 제의가 온다”며 “머잖아 전국에 코끼리공장을 만들려고 했던 계획이 현실화할 것 같다”고 웃었다.
대기업들도 이 대표를 ESG경영 파트너로 삼느라 분주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2020년 이 대표와 함께 사회적협동조합 ‘그린무브공작소’를 설립했다. 이 공작소는 수도권 지역의 장난감을 수거한 뒤 이를 수리·소독해 다시 아동복지시설 등에 기부하고 못 쓰는 장난감은 울산공장으로 보내 재생소재로 쓰게 한다.
현대해상은 서울·경기지역에 코끼리공장처럼 장난감 순환활동을 할 수 있는 ‘아이마음놀이터’ 개설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대표의 코끼리공장 모델은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개발도상국들이 줄지어 코끼리공장의 장난감 순환 시스템을 배우고 있다. 올해만 해도 파라과이,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라질, 쿠바, 자메이카의 고위급 공무원들이 이곳을 찾아 이 대표의 장난감 순환 시스템을 배웠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장난감 순환 사업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고, 사업규모도 커질 줄 몰랐다”며 “코끼리공장이 추구하는 아동복지 향상과 자원 순환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열정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놀이에는 빈부격차 없게 하고싶어”… 서울 등에도 공장 추진
“장난감 年2만~3만개 해외기부 순환모델 전세계 확산이 목표”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는 국내 장난감 재순환 선구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기부받은 장난감으로 수리부터 교환·나눔·재생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장난감 순환 시스템을 구축한 국내 첫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최근 울산에서 시작한 이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주일에 3~4일은 서울과 수도권 지방자치단체 등을 방문하며 지자체와 협업 형태의 코끼리공장 추가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울산에만 있는 장난감 폐기물 공장을 수도권에 세우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 대표가 이처럼 장난감 순환사업의 무대를 전국으로 넓히는 데 적극적인 이유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누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다. 그는 “전국 아동시설에는 아직도 장난감을 갖지 못해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며 “이들이 꿈과 가능성을 키우는 놀이에서만큼은 빈부의 격차를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어 사업 지역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보호에 기여하는 것도 이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목표 중 하나다. 장난감 폐기물 공장까지 만들어 장난감에서 나오는 소재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재사용하도록 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그 이유다.
이 대표는 실제로도 코끼리공장을 찾는 아이들에게 직접 버려진 장난감을 활용해 키링 등 다른 제품을 만드는 체험활동 기회를 제공하며 환경 교육을 한다. 그는 “교육을 마친 아이들이 ‘그럼 장난감을 버리지 않고, 기부하는 게 지구를 살리는 길이잖아’라고 이야기할 때면, 왠지 모를 성취감으로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마지막 목표는 코끼리공장의 장난감 순환모델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 확산하는 것이다. 지금도 유엔환경계획(UNEP)과 개발도상국 국가들이 코끼리공장을 찾고 있고, 또 좋은 반응을 보인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현재 연간 2만~3만 개의 장난감을 아동복지기관을 통해 해외에 기부하고 있는데, 이 모델이 다른 나라에도 적용된다면 더 많은 어린이들이 좀 더 쉽게 장난감을 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코끼리공장의 자원 순환 시스템이 전 세계에 확산되도록 더 뛰어다니겠다”고 말했다.
곽시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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