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눅한 독서 열정… 외피를 벗고 춤추는 세계가 겹겹이 부풀었다[소설, 한국을 말하다]

신재우 기자 2025. 8. 1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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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윤고은 - 텍스트힙
포쇄별감
일러스트 = 변영근 작가

“텍스트힙이란 게 어찌 보면 현대판 포쇄 같단 말이지. 포쇄의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팀장이 그렇게 말했을 때 ‘포쇄’를 ‘포르쉐’로 잘못 들은 건 꼭 지우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그때 통창 너머로 포르쉐 한 대가 멈춰 서는 게 보였고 ‘포쇄’와 ‘포르쉐’는 발음이 비슷했으니까. 지우가 “포르쉐의 방식으로요?” 하고 되물었을 때 팀장도 그 말을 ‘포쇄’로 알아듣지 않았던가? 한 사람은 포쇄를, 다른 한 사람은 포르쉐를 떠올린 채로도 얼마간 대화는 이어졌다. 누군가 지우의 메모를 보고 “포르쉐 말고, 포쇄!” 하고 바로잡을 때까지.

포쇄. 습기로 눅눅해진 책을 꺼내 햇볕과 바람으로 말리는 일. 책을 잘 보관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 그 자리에서 포쇄가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지우 하나는 아니었는데 포르쉐 발언 때문인지 팀장의 시선은 계속 지우에게 고정되었다. 팀장은 텍스트힙의 강력한 전파 수단이 인증샷이고, 인증샷이란 외부로 내보이는 속성을 가졌으니 결국 그 열풍 안에 포쇄의 욕구가 깔려 있다고 했다. ‘혼자만의 눅눅한 독서 열정’이라든가 ‘홀로 음습하게 품고 있으면’ 같은 과장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어쨌든 텍스트힙을 포쇄로 풀어보자는 팀장의 의견은 지우가 보기에도 꽤 근사했다. 그 이벤트 ‘포쇄별감’이 지우의 몫이 되기 전에는 분명 그랬다. 지우네 기획사에서는 도서전을 앞두고 두 개의 이벤트 대행을 맡았고, 포쇄별감은 그중 작은 규모였다. 인턴 9개월 차에 독자적인 임무를 맡는 게 나쁠 건 없었지만 이게 기회로 작용할지는 의문이었다. 팀 내에서 ‘가장 Z’라는 것이 지우가 그 일을 담당한 배경이었는데, 지우로서는 자신의 젠지다움이 뭔지 알 수 없었으니까.

지우를 제외한 인력과 예산은 큰 부스로 몰렸다. 거기서 책의 부위별 이름과 용도가 다양한 형태로 전시될 예정이었다. 표지, 책등, 책배, 책꼬리, 책머리, 책날개… 그 바람에 동료들은 한동안 책과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면지’니 ‘책등’과 같은 용어로 접근하기를 즐겼다. 아, 면지 같은 거구나. 아, 여기가 책등이네, 하는 식으로. 그렇게 보자면 지우는 자신이 ‘도랑’이나 ‘표지턱’쯤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양장본에만 있는 부위들이었고, 지우는 양장본을 좋아했으니까. 갑각류 같아서였다. 책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 딱딱한 외피가 있기를 바랐다. 확실한 경계 말이다.

포쇄별감은 누가 봐도 덤처럼 보이는 부스에 있었다. 창이 있는 공간이라 포쇄 테마에 적당할 거라고 팀장은 말했지만, 그 창은 건물 외벽에 걸린 포스터로 인해 이미 절반 이상 가려진 상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전시 공간의 층고였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170㎝가 겨우 넘어서 어떤 사람들은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포르쉐 같은, 네 발 달린 것.

<눅눅한 페이지 모집합니다!>

“나를 슬프게 만든 책의 일부를 널어 말리세요. 포쇄별감에서 마음의 습기를 덜도록 도와드립니다.”

-필사 환영, 책의 낱장도 환영(밑줄 그은 페이지 대환영)

도서전이 시작되었고, 머리 위로 나부끼는 것이 좋아하는 문장이 아니라 눅눅한 문장이라는 점에 이끌려 찾아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입구에 ‘머리 조심!’을 붙인 이 납작한 부스 안으로 들어와 바퀴 달린 둥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두 발로 미끄러지듯 부스 안을 돌아보았다. “포쇄 말고 분쇄 됩니까?” 하면서 종이를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동의할 수 없는 문장, 사랑했던 문장, 보내지 못한 편지까지, 지우는 그것들을 빨랫줄에 고정했다. 햇빛 효과를 주는 LED 조명등과 선풍기가 곳곳에 놓여 있어 천장에 매달린 종이들을 가볍게 흔들었다. 곳곳에서 인증샷 찍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종이들은 여름의 나뭇잎처럼 더 무성해졌고 사람들은 네발 달린 의자를 타고 그 아래를 달렸다. 이만하면 선방이라고 지우는 생각했다. 폭우가 닥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일요일 새벽, 폭우가 내렸다. 아침이 되자 폭우는 거의 그쳤지만, 문제는 밤새 활짝 열려 있었던 창문이었다. 지우가 부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뒤였다. 건물 외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가 사라졌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부로 들어와 있었다.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열린 창가에 둔 에코백 두 개는 처참하게 젖었다. 방문객들이 정성껏 내민 종이들이 다 거기 들어 있었다. 1500장가량이었다.

모든 페이지가 젖어 있었다. 한지, A4 용지, 편지지, 신문지… 재질을 구분할 것도 없이 죄다. 젖어버린 낱장들은 두 개의 에코백 안에서 각각 두 덩어리의 떡이 되어 있었고, 한 장씩 분리하려 하면 수제비 반죽처럼 뚝뚝 끊어졌다. 마지막 날에는 모든 페이지가 여기 모인다고 안내했고 그게 바로 오늘인데, 이렇게 젖어버린 페이지를 어떻게 내보여야 할지…… 지우는 울고 싶었다. 창문을 왜 열고 갔을까. 종이 뭉치를 왜 거기 두었을까.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일요일의 첫 번째 방문자가 왔다. 그가 입구에서 “여기 하는 거예요?” 하고 물었을 때 지우는 “모르겠어요”라고 바보 같은 대답을 했다. 하는 거냐고? 뭘 할 수 있을까. 지우 스스로도 묻고 싶은 말이었다. 방문자는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지우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두 덩어리의 종이 앞으로. 그는 아마 지금 이 상황이 의도한 바가 아니며,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했는지도 몰랐다.

“여기 제가 두고 간 페이지가 있는데요. 찾아봐도 되죠?”

가만 보니 사흘 연속 왔던 사람이었다. 첫날 와서 포쇄용 종이를 내밀고는 다음 날 와서 그것을 회수했던 사람. 포쇄된 종이를 돌려줄 수 없다고 지우가 말했지만, 간청하며 스스로 자신의 종이를 찾아가겠다고 했던 사람. 그는 종이를 기어코 찾아냈고, 그것을 찢었던 것인지 그 위에 투명 테이프를 붙인 버전을 다음 날 또 내밀었다. “포쇄 변심, 더는 안 됩니다!” 하고 그 종이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우는 엉망이 된 종이 뭉치를 가리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고서 지우가 하던 수제비 뜯기, 일종의 종이 해체 쇼에 동참했다. 지우는 그가 물 먹은 종이를 만지는 것을 가만히 두었다. 대체 그 종이에 적힌 게 어떤 내용이었는지가 궁금했다. 어떤 내용이었기에, 얼마나 눅눅한 페이지였기에 이렇게 몇 번을 번복해서 버리고 다시 찾기를 반복할까. 그는 내용을 잊었다고 대답했다. 내용을 잊었다면 그 페이지를 어떻게 찾지? 그렇지만 그는 서로 다른 출처의 종이들을 분리해내는 것에서 순전한 기쁨을 느낄 뿐, 자신이 그 안에 넣어둔 페이지를 찾아내는 데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골.목.끝.의.할.인.마!”

그가 너덜너덜한 한 줄을 겨우 읽어내면서 “이건 공포소설이었나 봐요” 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얼른 덧붙였다. “아! 트도 있네요. 트를 놓쳤네!”

골목 끝의 할인마트. 약간의 시차를 두고 붙는 활자 조합이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주어서 지우는 어리둥절해졌고, 그런 순간이 몇 차례 더 찾아왔다. 마치 한 줄기 바람이 불듯이. 일요일의 첫 번째 방문객은 신이 나 보였고, 잠시 후에는 두 사람이 더 합류했다. 처음에 그들은 걸레 뭉치처럼 보이는 그것을 보고 놀란 듯했지만, 곧 종이가 그 거대한 덩어리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즐겼다. 사진을 찍거나, 종이를 해체하거나, 그 모든 과정을 바라보면서. 첫 번째 방문객은 어느 틈엔가 사라졌지만 거의 비슷하게 몰두하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오후가 되자 팀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대기 줄이 생겼다.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려 했던 지우도 놀랐다. 어쩐지 두 개의 종이 덩어리가 아침보다도 더 커진 것처럼 보여서였다. 사람들 때문인가? 어디까지가 물 먹은 종이이고 어디부터가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뒤섞인 세계가 거기 있었다. 외피를 벗고 춤추는 세계가. 그 안에서 눅눅한 페이지들은 겹겹의 페이스트리처럼 한없이 부풀었다.

독서는 머릿속 걷는 것 활자와 활자 사이서 내 것을 만드는 창의성

■ 작가의 말

젊은 세대의 독서 열풍 속에서 탄생한 ‘텍스트힙’ 현상. 소설가 윤고은(45·사진)은 여기에 고려·조선시대의 ‘포쇄(曝쇄·물기가 있는 것을 바람에 쐬고 볕에 말림)’라는 오래된 풍경을 겹쳐놓았다.

윤 작가는 “오롯한 독서 경험이 깊은 바닷속 동굴이라면, 텍스트힙은 해변 위의 파라솔 같다”며 “책을 통해 연결되고 싶은 마음도 중요한 독서의 추동력이다. 서로 다른 감각이지만 사실은 이어져 있다”고 전했다.

포쇄와 텍스트힙, 그 중심에는 활자가 있다. 활자로 빚은 이야기가 있고, 그 사이를 오가며 생겨난 사유의 결이 있다. 물에 젖어 한 덩어리가 된 종이 속에서 ‘골.목.끝.의.할.인.마.트’ 같은 단어들을 건져내는 순간의 기쁨. 그것이 우리가 독서를 사랑하는 이유다. “책을 읽는 것은 머릿속을 걷는 것과 비슷해요. 요약본으로는 할 수 없는 경험이죠. 활자와 활자, 의미와 의미 사이를 걸으며 내 것을 만들게 되고요. 창의성도 여기서 출발해요.”

도서전, 필사, 굿즈 등으로 확장되는 텍스트힙의 종착지는 어딜까. 윤 작가는 “언젠가 파라솔을 접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바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바다가 있는 한, 그 앞에는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다시 모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책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작가와 독자가 1대 1로 만나는 시공간이라는 거예요.” 그 공간에 ‘혼자만의 눅눅한 독서 열정’과 같은 근사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윤 작가는 2008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1인용 식탁’과 장편 ‘밤의 여행자들’ 등을 펴냈다. 이효석문학상과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했다.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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