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보다 학생이 유리"… 고용 한파에 졸업 미루는 '대학 5년생' 급증

최현빈 2025. 8. 1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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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공고가 적어졌고 뽑는 인원도 많이 줄었어요. 원하는 분야가 아닌 곳도 지원했지만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한 적이 많아요. 눈높이를 낮춰도 안 되니 자존감만 자꾸 떨어지네요."

'채용 한파'에 졸업을 미루는 이른바 '대학 5학년생'들이 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A(26)씨는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실무 경험이나 특정 자격증을 요구해 졸업을 미루고 인턴에 지원하거나 공부를 더 하는 수밖엔 없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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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 선호·수시 채용 기조 확산
신입이어도 직무 관련 경험 '필수'
대학 졸업까지 4.4년...역대 최장
7월 24일 서울 한 대학교 일자리센터에 기업들의 채용공고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채용 공고가 적어졌고 뽑는 인원도 많이 줄었어요. 원하는 분야가 아닌 곳도 지원했지만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한 적이 많아요. 눈높이를 낮춰도 안 되니 자존감만 자꾸 떨어지네요."

취업준비생 김모(26)씨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2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반도체 분야 취업을 원한다. 그러나 채용 공고가 가뭄에 콩 나듯 해 다른 분야까지 지원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김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들처럼 졸업을 늦출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채용 한파'에 졸업을 미루는 이른바 '대학 5학년생'들이 늘고 있다. 졸업 이후 곧바로 취직을 못 해 '백수' 생활이 길어지는 것보단 '졸업 예정자'나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게 취업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대학에 남으면 맞춤형 상담이나 교육 등 재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도 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17일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졸업유예생은 1만7,597명으로 2023년(1만4,987명)보다 2,500명가량 늘었다. 최근 통계청은 3년제 이하 대학을 포함해 졸업까지 약 4년 4개월이 걸린다고 발표했는데 2007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길었다.

졸업을 늦추는 방식도 다양하다. 필요 학점을 이수한 뒤 정식으로 졸업유예를 신청하는 경우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학기당 10만 원 안팎의 졸업유예금을 내면 된다. 요즘엔 졸업에 필요한 필수 자격증을 따고도 학교에 내지 않다가 취업이 확정되면 제출하고 졸업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성균관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강대윤(25)씨의 경우는 일부 학점을 남겨둔 채 휴학계를 내는 식으로 1년째 졸업을 미뤘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해외 신문부터 증권사 리포트까지 유료 구독 서비스를 학교 계정으로 이용해 취업 공부를 하고 있다.

경력직 선호 현상이 고용시장의 '뉴노멀'로 자리 잡으며 직무 관련 경험 없이는 취업이 어려워진 현실도 졸업유예생 증가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3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임직원 100명 이상 50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2025 신규채용 실태조사'에서 기업들이 꼽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업무 경험'(81.6%)이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A(26)씨는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실무 경험이나 특정 자격증을 요구해 졸업을 미루고 인턴에 지원하거나 공부를 더 하는 수밖엔 없다"고 푸념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나마 직무 경험을 쌓을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 지난달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를 뜻하는 구인배수는 0.4를 기록했다. 2021년(0.67) 이후로 계속 떨어져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0.39)과 비슷한 수준까지 하락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집계한 청년 취업자 수 역시 2022년 11월 이후 2년 4개월 동안 감소세다. 경기권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박모(27)씨는 "중견급 이상 기업의 채용공고는 최근 1년 새 아예 씨가 마른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가 꾸준히 거론된다. 소득·근로시간 등 중소기업의 처우를 끌어올려 선택지를 늘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우리나라 고용 시장은 '첫 일자리'가 사실상 전체 생애 수준을 결정해 버리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며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 기존의 청년 정책만으로는 취업난을 풀어내기 어렵다. 이중 구조를 극복해 나가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허유정 기자 yj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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