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해변의 낭만 삼킨 ‘유흥 민폐’

김도균 기자 2025. 8. 17.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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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11시 강원 강릉시의 경포해수욕장. 해변은 '헌팅'을 즐기는 유흥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새벽까지도 술에 취해 애정 행각을 벌이거나 싸움이 붙는 등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켰다. 가족 단위 관광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김도균 기자

해변을 울리는 폭죽 소리와 젊은 남녀 무리들의 주취 소란에 밤바다 산책을 포기했다.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서였다. 헌팅(즉석 만남), 원나이트를 즐기는 20~30대 유흥객이 몰려와 지역 이미지가 망가진 강원 양양군이 떠올랐다. 휴가철에 주요 휴양지는 ‘제2의 양양’을 찾아나선 유흥객들의 민폐 행태로 몸살을 앓았다. 취재를 위해 찾은 대천해수욕장, 강원 강릉시 경포해수욕장이 그랬다. 몇몇 해수욕장에서만 겪는 고통은 아닐 것이다.

세간의 비난은 MZ세대로 향한다. 휴양지 유흥객의 상당수가 이들이니 납득이 가는 현상이지만, 특정 세대만 손가락질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지금 ‘제2의 양양’ 소리를 듣는 곳들은 오래전부터 ‘유흥의 성지’였다. 한 ‘강릉 토박이’ 경찰관의 한숨처럼, 경포해수욕장이 유흥객 때문에 시끄러운 게 어제오늘 일이겠나. 양양군의 추락이 여러 매체로 알려지면서, 휴양지 유흥 문화의 불편한 민낯이 최근 들어 유독 부각된 탓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밤바다를 배경 삼아 술잔을 부딪히는 모습은 오랫동안 ‘청춘의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왔다. 지자체 입장에선 젊은 관광객들을 유인할 일종의 콘텐츠이자 관광 상품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낭만의 이면에는 늘 쓰레기 투기, 흡연, 폭죽·음주 소란이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뛰는 추억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불쾌하고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을 풍경. 공공의 해변이 편안한 휴양지가 아니라 밤마다 소란을 견뎌야 하는 유흥지가 돼서는 안 된다.

결국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지자체의 계도·단속부터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해변에서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거나 흡연, 폭죽놀이를 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적발만 하고 처벌로 이어지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단속 요원은 “권한이 없으니 불법행위나 소란을 제지한다기보다는 자제를 읍소해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단속반조차 경비 용역 업체 직원으로 꾸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민원이 폭증하는 휴가철에만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매년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해변 음주 허용도 마찬가지다. 해묵은 문제라 이젠 경찰에 용역 업체까지 동원해야만 겨우 관리되는 지경이라면 심각하게 재고할 시점이다. 2012년 경포해수욕장에서 음주 금지가 논의됐을 땐 “피서객 발길이 끊겨 지역 경기가 침체할 것”이란 상인들 반발에 무산됐다. 이젠 오히려 양양군처럼 음주·유흥 문화가 휴양지를 망친 명확한 반례까지 생겼다. 우리 국격이나 교양이 건전한 해변 문화도 마련하지 못할 만큼 후진적인가? 법으로 음주가 금지된 미국 하와이나 호주 본다이의 해변은 술 한 방울 없이도 ‘지상 최고의 휴양지’로 유명하다. 술과 쾌락이 있어야만 명성을 지킨다면 그곳은 이미 휴양지가 아니라 유흥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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