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그 후 8개월]전문가 분석-"교과서적 절차…완벽에 가까운 비행"

이서영 기자 2025. 8.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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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적 절차…완벽에 가까운 비행"
정원경 초당대 항공학과장(비행교육원장)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을 두고 항공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사고 조사를 맡은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조종사의 '착오'를 원인으로 지목한 가운데 국내 항공사 한 현직 기장은 사조위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지역 대학의 항공학과장은 '시스템 결함'이라며 조종사를 옹호하고 나섰다. 조종사의 현장 동료인 기장은 '과실'을, 조종사를 양성하는 항공학과장은 '옹호'를 주장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17일 남도일보는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현직 기장 A씨와 정원경 초당대 항공학과장 겸 비행교육원장에게 사조위 중간 조사결과와 항공 안전 시스템 전반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정원경 초당대 항공학과장 겸 비행교육원장은 "사조위 발표만 보면 마치 조종사가 기본적인 절차도 몰라서 기어와 플랩을 내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기장이 교과서적인 절차에 따라 완벽에 가까운 비행으로 기수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사조위는 착륙 과정에서 조종사가 랜딩기어와 플랩을 작동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사고 원인을 조종사들의 과실로만 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조종사는 새 떼 충돌 이후 항공기 엔진과 기체 상태를 신속히 점검했고, 기어와 플랩을 내릴 경우 기체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동체 착륙 절차로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학과장은 사고의 근본 원인을 활주로 앞에 설치된 로컬라이저(Localizer) 둔덕에서 찾는다. 로컬라이저는 항공기의 착륙을 돕는 계기 착륙 장치 중 하나로, 항공기에 주파수를 보내 조종사에게 활주로 진입 경로를 안내하는 장비다. 정 학과장에 따르면 무안공항 로컬라이저는 이전에 찾아온 강한 태풍으로 흔들림이 발생, 항공기 경로 이탈 발생을 우려해 2m 높이의 콘크리트 기둥 19개를 박아 둔덕을 보강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해당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하는 파손형·저충격 구조를 적용했어야 했는데, 무안공항은 그렇지 않았다"며 "이것이 대형 참사로 이어진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 학과장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제민간항공법에 따라 활주로 인근에는 충돌 시 위험을 줄이도록 고정된 단단한 구조물을 두지 않는 것이 권고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부득이 설치해야 할 경우에도 충돌 시 쉽게 부서지거나 변형돼 충격을 흡수하는 파손형·저충격 구조를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둔덕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사고 피해를 줄이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는 "이런 구조물은 항공기가 시속 200㎞ 이상으로 접근하는 착륙 과정에서 충돌하면 기체 하부가 파손되는 데 그치지 않고, 연료 계통·엔진·기체 골격 전체가 연쇄적으로 손상돼 폭발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이번 사고도 둔덕이 충돌 에너지를 전혀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기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해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이라면서 "결국 참사를 키운 것은 조종사 조작 미숙이 아니라 충격을 전혀 흡수하지 못한 둔덕의 구조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사조위 조사 방식에 대한 불신도 제기됐다. 그는 "문제가 된 시설을 설치·관리한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 그리고 이를 조사하는 사조위가 모두 국토부 산하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려면 독립된 조사기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그는 이번 사안을 "명백한 설계·관리 부실"로 규정하며, 사조위 조사 방식에 대한 불신도 제기했다. 정 학과장은 "문제가 된 로컬라이저 둔덕은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가 설치·관리한 시설인데, 이를 같은 국토부 산하 기관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은 사고 주체가 사고 원인을 '셀프 조사' 하는 것"이라며 "객관성과 독립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독립된 조사기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종사 노조 측은 이번 사건을 단순히 '조종사 과실'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고 원인 규명은 중요하지만, 구조적 요인을 덮어둔 채 조종사에게만 책임을 씌운다면 또 다른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선 시설 개선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 학과장은 현재까지 해당 둔덕이 그대로 방치돼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강하게 우려했다. "무안공항은 학생 조종사들의 이착륙 훈련장으로도 쓰인다.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장애물이 제거되지 않은 채 훈련이 이어진다면, 또 다른 인명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여전히 상존하는 셈"이라고 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즉각적인 시설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학과장은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발 방지를 위한 물리적 위험 제거는 하루라도 빨리 이뤄져야 한다"며 "원인 규명 과정에서 조종사 과실만 부각시키고 구조적 요인을 방치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서영 기자 dec@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