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그 후 8개월]전문가 분석-"착륙 직전 복행 결심, 치명적 실수"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을 두고 항공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사고 조사를 맡은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조종사의 '착오'를 원인으로 지목한 가운데 국내 항공사 한 현직 기장은 사조위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지역 대학의 항공학과장은 '시스템 결함'이라며 조종사를 옹호하고 나섰다. 조종사의 현장 동료인 기장은 '과실'을, 조종사를 양성하는 항공학과장은 '옹호'를 주장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17일 남도일보는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현직 기장 A씨와 정원경 초당대 항공학과장 겸 비행교육원장에게 사조위 중간 조사결과와 항공 안전 시스템 전반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항공사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기장 A씨는 지난 19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과거 운항 중 실제로 조류 충돌로 엔진에 새가 유입되는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A씨는 "착륙 접근 중 조류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피하지 않고 하강을 지속하는 것이 국제 기준에 따른 공식적인 절차이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류를 쫓는 절차는 지상 관제와 공항 방역팀의 몫이지, 공중에서 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국제 운항 기준과 제작사(보잉) 매뉴얼 역시 착륙 접근 중 조류를 조우했을 때 회피 기동 없이 안정적으로 하강을 지속하는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는 조종사가 하강 대신 복행(Go-around)을 결심하고 엔진 출력을 높인 정황이 드러났다.
A씨는 "엔진을 최대 출력으로 전환하면 동일한 충돌이라도 유입 속도와 충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며 "착륙 직전 450피트(약 137m) 고도에서 복행을 위해 엔진을 최대 출력해 결국 조류 충돌 피해가 배로 커졌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사고 직전 조종사가 속도 감속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보조날개(플랩) 조작을 하지 않은 점도 중요한 대목으로 지적된다. 플랩은 착륙 단계에서 양력을 유지하면서 기체 속도를 줄여 안정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이 절차가 생략되면서 기체는 정상적인 착륙 대비 더 높은 속도와 불안정한 자세로 활주로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이 "비정상 상황에서의 순간적 인지 오류와 누적 피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손상된 우측 엔진 대신 정상인 좌측 엔진을 정지한 착오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이다. 애초에 그는 우측 엔진을 정지할 이유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좌측 엔진을 끄고도 손상된 우측 엔진만으로 안전하게 착륙했다는 것은 우측 엔진의 손상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시뮬레이터 훈련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고 전했다. "정상 엔진을 잘못 차단하는 경우는 훈련 상황에서도 반복된다. 고장 엔진을 식별·확인하는 절차가 단 몇 초만 지연돼도 잘못된 조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A 씨는 조종사의 이러한 실수 배경으로 피로 누적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사고 항공편은 방콕발로, 새벽 시간대 출발과 긴 운항시간, 복잡한 항로가 피로도를 높이는 비행이다. 그는 "방콕 노선은 순항 구간이 길고 항로 변경이 잦아 많은 조종사들이 주·야간 생체 리듬이 붕괴돼 극한의 피로를 느끼는 노선이다"며 "착륙 시점에는 판단력과 반응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착륙 직전 조류 충돌 상황에서 원칙대로 하강하기 어려운 심리적 부담도 지적했다. "새 떼를 만났을 때 하강을 지속하는 게 맞지만, 사고 책임이 조종사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중압감 때문에 순간적인 판단으로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A씨는 사고 당시 피해를 키운 또 다른 요인으로 활주로 주변 콘크리트 구조물을 꼽았다. "조심스럽지만 사고 시작은 조종 실수, 사고를 키운 것은 콘트리트 둔덕이라고 생각한다"며 "항공기와 충돌 시 큰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구조물은 규정상 지양해야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는 콘크리트 둔덕으로 오히려 피해를 확대했다"고 짚었다.
다만 그는 이번 참사의 원인을 조종사의 실수만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고는 단일 원인이 아니라 조종 환경, 운항 절차, 공항 관리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A씨는 "항공사 차원에서 착륙·접근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조류 충돌 상황을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매뉴얼을 보완하며 시뮬레이션 훈련을 강화하는 등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항의 미온적 조류 대응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기후 변화로 조류 출몰 시기와 서식지가 바뀌면서 충돌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공항은 조류 관리 인력과 대응 체계가 부족하다. 공항 운영 주체가 서식지 관리와 퇴치 작업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이번 참사의 또 다른 원인으로 밝혀진 콘크리트 둔덕 등 공항 전반적인 환경도 둘러볼 필요가 있다"며 시설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서영 기자 de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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