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복 80주년을 맞으며- 김용광(전 함안축협 조합장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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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8월 15일)은 3·1절, 현충일, 제헌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영예롭게 회복한 날이란 뜻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일제에서 벗어나고 1948년 8월 15일 기미년 (1919년)에 수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을 아울러 '광복'으로 명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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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8월 15일)은 3·1절, 현충일, 제헌절, 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영예롭게 회복한 날이란 뜻이다. 1945년 8월 15일 수요일에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한국이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한 날, 두 날 모두를 기념하는 날이다. 1949년 5월 국무회의에서 8월 15일이 독립기념일로 의결됐고,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광복절로 명칭이 변경되고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당시 자료를 보면, 경향 신문은 1949년 8월 13일 기사에서 “광복 한 돌맞이” “독립 1주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일제에서 벗어나고 1948년 8월 15일 기미년 (1919년)에 수립된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을 아울러 ‘광복’으로 명명하고 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우리는 80년 전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견뎌내고 마침내 맞이했던 광복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대한제국은 을사늑약, 경술국치를 겪으면서 국권을 상실했다. 이후 일제는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화라는 목적하에 허울 좋은 동화 정책을 펼치고 민족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선일체, 창씨개명, 징용, 징병 등으로 갖은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수탈을 자행했다. 그렇지만 1919년 3월 1일 열린 ‘만세 운동’으로 우리는 독립에 대한 열망과 희망의 씨앗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의 무서운 총칼 앞에서도 독립을 위해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친 이들. 구형 무기로 일본군이 가진 최신 무기에 맞서며 지역적 이점을 활용해 항거했던 방방곡곡의 의병들. 목숨 바쳐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들. 또 독립 운동 자금을 모아 전달한 이들. 그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애국 선열들, 국내외를 막론하고 조국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투쟁했던 애국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발판이 되어 마침내 광복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패트릭 헨리의 1775년 연설에서 유래한 이 유명한 말은, 미국 독립혁명과 흑인 민권운동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아직 우리에겐 12척의 배가 있다”라며 부하들을 끝까지 북돋았던 이순신 장군, “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수안 망전필위:세상이 아무리 편안해도 전쟁을 잊고 살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를 강조하던 박정희 대통령 등 이들의 깊은 뜻을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80주년 광복을 맞아 선열들의 업적과 정신을 기억하여 미래에 계승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거룩한 의무’일 것이다. 80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 순국선열들의 절실하고 처절하고 아름다웠던 희생과 거룩한 애국심을 새로이 기리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김용광(전 함안축협 조합장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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