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 최저임금…콜센터 노동은 가치 없다? [6411의 목소리]


문수빈 |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대구지회 교선부장
지난 6월25일, 그날도 똑같은 인사, 반복되는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 걸려 온 1949년생 할머니의 전화, 건강보험 고지서가 나오지 않는다는 문의였다. 당신이 치매가 있고 귀가 어두워 잘 들리지도 않고, 어려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며 연신 미안하다 말하는 할머니와의 전화는 10분 넘게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아, 오늘 실적은 글렀네!’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날은 어쩐지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가 떠올라 끝까지 응대하며 민원을 해결해드렸다. 치매 때문에 생각이 났을 때 밀린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며 은행에 가서 지금 납부하겠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나는 목구멍이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해드리고 싶었다. 당신을 위해 우리가 존재한다고.
나는 4년째 국민건강보험 대구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받아서 처리해야 하는 상담 건수는 하루 평균 100건, 평균 통화 시간 2분30초. 그것보다 상담 시간이 길어지면 처리 상담 건수가 적어져 장기적으로 성과급과 월급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웬만하면 상담을 길고 깊게 하기보다 얼른 해결하는 편이 상담원에게는 더 이득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이므로 그럴 수가 없다. 세상에 정보가 넘쳐난다지만 나에게 맞는 필요한 정보와 해결을 위해서는 고객센터 상담직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소통이 단절된 세상에서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건강보험공단으로 도움을 청해왔고, 그 모든 사람들의 요청을 고객센터 직원들이 일선에서 소화해냈다. 건강보험공단이 보내는 안내문에 적혀 있는 대표번호 1577-1000번, 우리는 건강보험공단을 대표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상세하고 정확한 상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6년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가 출범했다. 전문 상담원 180명, 아웃소싱업체 소속 일반 상담원 420명 등 모두 600명의 상담 인력으로 출발한 센터는 공공기관 최초의 고객센터다. 처음에는 공단 직원과 외주업체 직원이 함께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전문 상담원 부족으로 발생했던 고질적인 전화 민원 불만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현장에서부터 무너졌다. 당시 1기로 입사한 노동자 중 거의 대부분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못 견디고 퇴사했으며, 19년이 된 지금은 연평균 3300만여건의 전화를 전국 11개 도급센터 소속 1600여명의 상담사들이 담당해내고 있다.
고객들은 말한다.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돼요, 상담사 좀 더 뽑으라고 해요”라고. 고객센터 직원들은 더 이상 감당해낼 수 없을 만큼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식사 시간, 휴식 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 100콜이 넘는 전화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많이 하면 급여가 많겠지, 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대부분의 상담사들이 받는 월급은 19년째 최저임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단의 지사별, 개인별, 팀별 성과를 둘러싼 경쟁으로 인한 업무가 고스란히 고객센터로 넘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공단 지사에서 건강보험료 체납자들에게 대량 문자를 발송해 징수율을 높이는 경쟁을 하면 그에 따른 문의까지 모두 고객센터가 처리해야 하는데, 그 결과 발생한 성과금은 공단 직원들만 가져가게 된다. 결국 고객센터 직원들은 일하고도 대가를 받지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가 계속되자 고객센터 직원들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콜센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외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투쟁에 나섰다. 거기에서 또 한번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처럼 소속 기관을 따로 만들자고 서로 합의했지만, 5년째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20년 가까이 일한 고객센터 직원들의 노동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음에도 비정규직을 향한 혐오의 시선은 따갑다. 노력에 등급 없듯이 노동 또한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그리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일까.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더 두렵고 힘들었던 일은 동지를 잃는 것이었다. 힘들어서, 부당해서, 억울하고 서러워서 포기하고 돌아가는 동료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이상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동지들을 떠나보낼 수 없기에 오늘도 투쟁을 이어간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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