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전체 원한다”는 푸틴 제안 그대로 받은 트럼프

김원철 기자 2025. 8. 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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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새벽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앤드루스 합동기지(메릴랜드주)에 도착해 에어포스원을 내려오고 있다. 캠프스프링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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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지방을 포기하면 남부 전선을 동결하고 공격을 멈추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과 관련해선 미국이 간접 참여하는 방식의 ‘서방 군대 우크라이나 주둔안’이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18일 백악관에서 열릴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회담에서는 이런 내용의 ‘영토 양보-안전 보장’ 주고받기 안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액시오스는 16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회담에서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 등 돈바스를 완전히 넘겨주면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에서 추가 공세를 멈추고 전선을 고착화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러시아는 루한스크주 거의 전부와 도네츠크주 70%가량을 점령했다. 이 지역은 수년간 우크라이나군이 방어선을 구축해온 핵심 요충지로, 우크라이나는 이 지역을 러시아에 넘겨주는 데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이 두 지역을 넘겨주면 휴전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기존 주장을 반복한 셈이다. 액시오스는 “푸틴은 돈바스를 요구하면서도 전선 고착 외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다”며 “실제 해당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진전이 없는 상태이므로 (이마저도) 양보로 포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책과 관련해선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유럽 쪽 외교 관계자 4명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서방 군대가 우크라이나에 주둔해야 한다는 점을 푸틴이 수용했다’고 유럽 정상들과의 통화에서 말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푸틴이 서방 군대 대신 중국을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국 후보로 언급했다”(액시오스)는 상반된 보도도 나온다.

주목할 지점은 미국의 태도 변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뒤 유럽 정상들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안전 보장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미국이 직접 주둔하는 건 아니지만, 보증 또는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유럽이 오랫동안 바라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신뢰할 만하고 강력한” 안전 보장이 이번 논의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다만 그 틀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외부에 머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보장은 나토 집단방위 조항인 제5조와 동등한 수준일 것’이라고 밝혔다. 제5조는 한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다른 모든 국가가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필요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해 확실한 안전 보장을 받는다면, 영토 문제도 협상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레드 라인’이다. 전날 양국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전쟁의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를 재강조한 바 있다.

‘영토 양보-강화된 안전 보장’ 패키지는 18일 미국 백악관에서 예정된 트럼프-젤렌스키 간 정상회담에서 논의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자 회담 결과에 따라 푸틴 대통령까지 참여하는 3자 회담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엔엔(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3자 회담 마련 시한을 ‘다음 금요일’(22일)로 설정했다고 전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 고위보좌관 유리 우샤코프는 러시아 국영 언론에 “3자 회담 구상은 알래스카 회담에서 공식 논의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에는 세가지 선택지가 남았다.

첫째, 트럼프와 푸틴이 원하는 대로 도네츠크 철군을 조건으로 휴전을 하고, 평화협상을 진행하는 길이다. 둘째, 전투가 지속되는 가운데 평화협상이 진행되는 길이다. 셋째는 휴전과 협상 없이 전투가 진행되는 교착 상태의 지속이다.

앞서 지난 15일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알래스카주 엘먼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6년여 만에 만났다. 두 정상은 활주로 위 붉은색 카펫 위에서 반갑게 손을 맞잡았고 이후 레드카펫을 따라 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미국 대통령 전용 리무진 캐딜락을 함께 타고 회담장으로 이동했다. 통역자도 배석하지 않고 두 정상이 같은 리무진을 타고 이동하는 매우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7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러시아는 여러차례 휴전 요구를 거부하고 있으며, 언제 살육을 중단할지도 결정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며 “살상을 중단하는 것이 전쟁을 멈추는 데 핵심 요소”라고 썼다.

반면 러시아는 만족스러운 반응이다. 크렘린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푸틴은 이날 러시아 고위 당국자들과의 회의에서 트럼프와의 회담이 “매우 유익했다”며 “대화는 매우 솔직하고 실효성 있었으며, 우리가 필요한 결정에 가까워졌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편, 15일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가 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는 ‘평화 서한’을 전달했다. 폭스뉴스가 입수한 편지 전문을 보면, 멜라니아 여사는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당장 전쟁을 끝내달라는 취지로 편지를 작성했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어린이의 러시아 본토 강제 이송에 관한 내용으로 풀이된다. 멜라니아는 “푸틴 대통령님, 당신은 아이들의 선율 같은 웃음을 단 한번의 결단으로 되찾아줄 수 있는 분”이라며 “당신은 오늘 이 비전을 펜 끝 하나로 실현할 수 있는 분”이라고 썼다. 푸틴 대통령은 미·러 대표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즉시 편지를 읽었다고 한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천호성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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