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항일투쟁 상징’ 장준하 50주기…“꺼지지 않는 양심”

장종우 기자 2025. 8. 17. 17:4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7일 오전 경기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 추도식’에서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장준하 선생의 동판 앞 향로에 향을 피우고 있다. 장종우 기자

“선생님이 꿈꾸던 그런 세상을 꼭 만들도록 하겠다는 약조를, 제 나름대로 50번을 했습니다. 50주기를 기회로 또 다른 역사, 새로운 역사를 한번 써보는 데 일익을 담당해 보겠습니다.”

어느덧 눈썹마저 하얗게 샌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장준하기념사업회장이 아버지, 시대의 선생님을 기억하며 50번째 다짐을 되새겼다. 생전에도, 1975년 8월17일 의문의 죽음 뒤에도 질곡의 한국사에서 ‘민주주의’와 ‘항일 투쟁’의 상징으로 우뚝 섰던 장준하 선생이 서거한 지 꼭 50년 되는 날이었다. 아들의 목소리에도 한층 힘이 실렸다.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 시민추모위원회(추모위)는 17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장준하공원에서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 추도식'을 열었다. 묘역에 둘러선 장준하 선생의 유족, 우원식 국회의장, 김경일 파주시장 등 추도객 250여명은 선생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각별한 시점”이라고 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힘겹게 되찾은 민주주의가 회복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광복을 맞은 지도 꼭 80년이 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장준하 선생이 품고 살았던 글귀 ‘일주명창’(심지 하나가 창을 밝히고 있다)을 되새겼다. 우 의장은 “광복 80년 민주주의를 더 굳건히 다지고, 한반도 평화를 다시 세워야 하는 과제 속에 맞이한 서거 50주기가 각별하다”며 “일주명창, 선생께서 늘 가슴에 품고 사셨던 글귀처럼 장준하라는 이름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 꺼지지 않는 양심이었다”고 했다.

1918년 8월27일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돼 중국으로 건너간 뒤 부대를 탈출했다. 독립을 열망하며 ‘6천리 대장정’에 나선 끝에 1945년 1월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시대의 어둠 앞에 빛으로 맞선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이윽고 광복을 맞았다.

같은 해 11월 김구 주석 비서로 귀국한 고국은 다만, 여전히 어둠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가 이어졌다. 선생은 글과 말로 다시금 빛이 되고자 했다. 1953년 민주주의와 한국 사회 정치·경제·문화 발전에 요체를 둔 월간지 ‘사상계’를 발간했다. 1962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언론인 분야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어둠은 독재에 맞서 ‘재야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선생 앞에 만만치 않았다. 사상계는 1970년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실어 폐간됐다. 5년 뒤 선생은 목숨을 잃었다. 각고의 이유를 선생은 이렇게 적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17일 오전 경기 파주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 추도식’을 마친 추모객들이 장준하 나무와 사상계 나무를 심고 있다. 장종우 기자

선생은 떠났지만, 그의 빛은 1987년 민주화에 이르기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선생을 포함한 숱한 죽음을 딛고 얻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최근에도 선생의 정신은 이어졌다고, 추모객들은 전했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사상계 책머리에 쓰인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12·3 불법 계엄에 맞선 국민들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며 “이 땅의 민주주의와 후손들에게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노력은 대한민국의 저력”이라고 말했다. 우 의장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1950년대 말부터 선생은 부정과 불의에 맞서는 민중의 용기가 민주주의의 원동력임을 설파했다”며 “그 혜안이 1980년 광주에서 지난겨울 응원봉 광장까지 (이어진) 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통해 증명됐다”고 했다.

다만 광복 80주년, 장준하 서거 50주기를 맞는 현실은 여전히 ‘장준하가 꿈꾼 세상’의 모습에 닿지 못했다고 장호권 회장은 경계했다. 그는 한겨레에 “지나 50년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과도기였다. 12.3 내란 사태도 뉴라이트 사상에 몸담아 온 자들의 악행이었다”며 “정치적 지지를 떠나 국민 주권을 이야기하는 정부가 들어섰으니, 올해를 진정한 친일 청산과 민주화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추도식을 마친 추모객들은 장준하 공원에 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사상계 나무와 장준하 나무였다. 나무는 아직 키 작고 볼품 없다. 천천히, 다만 꾸준히 자라날 것이다. 성장하는 나무의 모습은 지난 4월, 55년 만에 마침내 복간된 사상계에서 지속해서 전할 계획이다.

장종우 기자 whddn387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