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칼럼] 대기업 마케팅팀이 크리에이터에게 배우는 시대

이준영 경일대학교 미디어크리에이터학과 교수 2025. 8. 17.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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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 경일대학교 미디어크리에이터학과 교수

얼마 전 경주 라선재에서 열린 행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둔 경북도가 선택한 홍보 파트너는 구독자 1,230만 명의 먹방 크리에이터 쯔양이었다. 김학홍 경상북도 행정부지사가 직접 심사위원으로 나서 '경북 전통주와 어울리는 전요리' 경연을 지켜보는 장면은 전통적인 정부 홍보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더 주목할 사례는 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에서 '콘텐츠 창업자'로 변신한 여주엽 대표다. 최근 그가 펴낸 책 『450만 올블랑TV 여주엽의 유튜브 수업』에서 밝힌 "기획자는 결국 시청자의 저항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는 기존 마케팅 전문가들의 사고를 뒤흔들고 있다. 완벽한 기획과 수십억 예산을 앞세우던 대기업 마케터들이 이제는 개인 크리에이터의 '3초 법칙'과 '데이터 기반 서사 설계'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현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지자체 홍보는 수십억 원을 들여 TV 광고나 신문 지면을 사들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홍보물은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 명의 크리에이터와 함께 만든 콘텐츠가 전 세계 1,230만 명에게 동시에 도달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경북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키는 틱톡 숏폼 편집 기법을 광고에 도입했고, 코카콜라는 유튜버들의 '리액션 비디오' 형식을 캠페인에 활용한다. 맥도날드는 아예 개별 매장에서 인플루언서와 협업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전통 마케팅은 '완벽한 기획'과 '대중 타겟팅'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들은 정반대 접근으로 더 큰 성과를 낸다. 쯔양의 콘텐츠는 연출된 광고와 다르다. 그는 음식을 맛보며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고, 예상치 못한 맛에도 유쾌하게 반응한다. 실시간 소통까지 더해져 시청자들은 그를 광고 모델이 아닌 식사 친구처럼 신뢰한다. 그의 추천은 상품 판매가 아니라 진짜 후기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현상에는 무엇보다 신뢰의 기반에는 '선한 영향력'이 있다. 쯔양은 개인적 고난 속에서도 2억 원을 기부하고 결식아동을 위해 도시락을 배달했다. 단순한 엔터테이너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신뢰의 원천이다. 실제로 2024년 조사에서 대기업 마케터의 78.3%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전통 광고보다 높은 ROI를 낸다고 답했으며, MZ세대 제품의 구매 전환율은 TV 광고보다 평균 3.7배 높았다. 맥킨지 보고서도 인플루언서 마케팅 비중이 2020년 12%에서 2024년 31%로, 아시아는 42%에 달했다고 분석한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이다.

경북도의 전략이 돋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쯔양을 기용한 데 있지 않다. '전통주와 어울리는 전요리' 경연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경북의 식재료와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과거에는 기업이 메시지를 정하고 전달 방식을 찾는 것이 마케팅이었다면, 이제는 크리에이터의 언어로 브랜드 메시지를 재해석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소상공인들에게도 기회를 열어주었다. 개인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작은 식당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 거대 예산이 없어도 '진정성' 하나만으로 대기업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 마케팅의 미래는 대기업 회의실이 아니라 크리에이터의 작업실에서 시작되고 있다. 대기업 마케팅팀들이 크리에이터에게 배워야 할 때다. 완벽한 기획보다 진정성 있는 소통을, 일방적 전달보다 쌍방향 관계를, 대중적 어필보다 개인적 연결을 추구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 출발점에 서고 싶다면, 여주엽 교수의 '유튜브 수업'에서 영감을 얻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