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비트코인 비축 전략 [헬로, 크립토]

한겨레 2025. 8. 1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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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클립아트코리아

김외현 | 비인크립토 동아시아편집장

일본 도쿄 증시 상장기업인 밸류크리에이션은 부동산 해체 작업과 데이터 기반 마케팅을 주로 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 14일 공시를 통해, 비트코인 보유분을 전량 매각해 약 5200만엔의 영업 외 수익을 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이사회 결의로 비트코인 매입을 결정했는데 오래지 않아 수익을 실현한 셈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상장기업들의 ‘비트코인 트레저리(비축) 전략’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업, 에너지 기업, 합성섬유 제조사 등 블록체인과 무관한 업종의 기업들이 비트코인 매수에 나섰다. 밸류크리에이션처럼 수익 실현에 나서는 기업도 있지만, 당장은 투자 포트폴리오 다각화, 인플레이션 헤지 등 재무전략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활용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기업이 호텔 체인 메타플래닛이다. 현재 약 1만8813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업 보유량 기준 세계 7위다. 15일 현재 원화로 환산하면 3조원이 넘는다.

메타플래닛의 본업은 일본에서 ‘레드플래닛’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호텔 사업이다. 지난해 4월 비트코인 트레저리 전략을 선언했고, 이제는 사업의 초점을 비트코인으로 전환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지난해부터의 상승장은 이를 주도한 경영진에게 큰 성과를 안겼다. 이 회사 주가는 연초 대비 165% 상승한 상태다.

메타플래닛은 2027년까지 비트코인 전체 발행량의 1%인 21만개를 보유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지금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그 자금은 어디서 나올까. 유보금이 아니라, 따로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했다. 이 과정을 포함한 비트코인 매입의 전체 과정이 화제가 됐다. 그 결과, 비축을 시작한 지난해 4분기 이후 주주 수가 350% 늘었다. 이번에도 비트코인 구입 자금을 위해 최대 5550억엔 규모 주식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비트코인 비축에 나선 일본 기업들은 메타플래닛의 전례를 따르는 모양새지만, 사실 메타플래닛 또한 미국 기업 스트래티지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현재 약 62만8946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한 스트래티지는 2020년부터 비트코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전체 비트코인 발행량의 3%에 가까운 물량을 확보한 스트래티지는 단순히 보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담보로 자본을 조달해 다시 비트코인을 매입한다. 이런 순환 구조 때문에 스트래티지 주가는 비트코인 가격이 출렁일 때마다 몇배 더 큰 규모의 변동성을 보인다.

비트코인을 보유한 ‘큰손 기업’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초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도입한 이후 월가 금융기관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이런 흐름은 굳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비트코인이 탄생할 때의 문제의식과는 모순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는 월가의 탐욕이 초래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미국 월가와 달러 중심으로 구축된 중앙화 시스템을 믿을 수 없다며 내놓은 게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집중적으로 보유하면서 사실상 새로운 형태의 중앙집권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승리를 자신하는 이들이 비트코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트코인 보유량 10위권 기업 가운데 메타플래닛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미국 기업이다. 그중 8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설립한 트럼프 미디어앤테크놀로지 그룹이다.

비트코인은 애초 설계된 ‘모든 이를 위한 탈중앙화 화폐’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될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의 또 다른 자산 클래스가 되면서 큰 수익을 벌게 된 초기 참여자들이 큰 불만이 없다면, 아마도 이 길은 끊어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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