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1장] 전주성 입성(209회)

홍계훈의 중앙군은 후퇴하여 전주의 서쪽과 남쪽의 거지산, 기린봉, 다가산, 황학대, 기린봉에 병력을 배치하고, 용머리 고개에 본영을 차렸지만 농민군에게는 대적할 수 없는, 말하자면 빌빌거리는 병력이었다. 중앙군과 감영군은 장터와 남문을 장악한 농민군의 위세를 견디지 못하고 전주성 안의 군사까지 빼내 도망을 치고 말았다.
"군사란 사기를 먹고 자라는 기개 넘친 소망들이오."
"소망이라니요?"
송경찬이 의아해서 물었다. 나라의 횡포를 못 이기고 일어났는데 군사란 바로 소망이라니, 비약 치고는 지나치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군사가 홍계훈 군사와 구분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오. 저들은 사기에서 우리에게 밀릴 수밖에 없소. 대저 전쟁이란 폭력의 광풍으로 이해하는디, 사실은 소망과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인 것이오. 결코 정복과 학살과 방화, 약탈이 아니오. 전쟁이란 이런 광기들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는 행사요."
전봉준은 다른 세상을 보는 듯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세상의 모든 고통을 씻는 하나의 제의(祭儀)란 말이오. 이기기 위해 유언비어를 남발하고, 이간질로 분리하고, 최신 무기 도입도 부족해 외국 군대까지 청병(請兵)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오. 우리의 요구가 정당한데 무조건 그것을 막기 위해 군사를 푸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오. 모름지기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인 것이오. 그래서 언젠가는 무망하게 사라지는 것이오. 사라지기 전에 괴로움을 감당하고, 인간답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떠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싸움의 진정한 뜻이오."
무안의 대접주 배상옥이 받았다.
"고상한 말씀, 피가 되고 살이 되고도 남소이다. 그러나 그런 말씀은 추후 듣기로 하지요. 지금 당장 칼을 갈고 죽창을 만들어야 하니께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소. 그러나 우리 군사와 관군의 사기를 살피면서 말한 것이오. 우리 군사는 뚜렷한 이상을 담보하여 나선 영혼이 맑은 군사들인지라 사기가 충천해 있다는 뜻이오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전쟁철학을 갖고 있소."
"동도대장, 홍계훈의 경군과 황헌주가 인솔해온 총제영병과 전리감영병, 향병, 민보군, 보부상병 연합군이 용머리 고개에서 재집결하여 전주성을 탈환한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이론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죽창을 들어야 합니다."
김덕명도 나섰다.
"전주성 점령 후 북상길은 더욱 험난한즉 군사를 잘 다듬어야 할 것이오. 훈련된 병력과 탁월한 전술이 아니면 우리가 북상길을 헤쳐나가기 어렵소."
모두가 동의하였다.
"알겠소. 앞으로의 방향성을 살피기 위해서는 그동안 거쳐온 행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소."
전봉준이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온 진격로를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투를 벌여올수록 백성들이 한결같이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 큰 힘이었다.
동학농민군의 진격로는 무장봉기(3.20, 이하 음력)를 시작으로 고부기포(3.21)→백산(3.25)→태인(3.28)→원평(4.1)→태인(4.3)→부안(4.4)→황토현(4.6)→정주(4.7)→흥덕(4.8)→고창((4.8)→무장(4.9)→영광(4.12)→함평(4.16)→장성(4.21)→황룡촌전투(4.23)→정주(4.24)→태인(4.24)→원평(4.25)→전주성(4.27) 입성이다.
그야말로 숨 가쁘게 달려온 진군이다. 이들은 이때 대부분 풍찬노숙(風餐露宿), 문자 그대로 이슬과 눈보라와 비바람을 맞으며, 추운 한 데에서 잠을 자며 행군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운동의 기치(旗幟)와 (價値)는 강회되었다.
반면에 전라감영군의 진격로는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하면서 전주성에 이르렀다. 전주(4.3)→원평(4.3)→태인(4.4)→부안(4.6→황토현(4.6) 등이다. 이들은 동학군을 뒤쫓았으나 대체로 분쇄되거나 패배하여 도망을 갔다.
경군(중앙군) 진격로는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되풀이했다. 군산(4.5)→전주(4.7)→원평(4.9)→태인(4.18)→정주(4.19)→흥덕(4.20)→고창(4.20)→영광(4.21)→장성 황룡촌(4.23)→정주(4.26)→태인(4.27)→원평(4.27)→전주성(4.28)에 이르렀다. 중앙군은 현지 사정을 잘 몰라 전술적 오류가 많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