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한번 실수로 '지구 종말' [광복 80주년-다시 평화]

유은상 기자 2025. 8. 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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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림된 고통 잊히는 슬픔(4) 고통 속 평화의 싹

원폭증 대물림 한국·일본 정부는 모르쇠
각국은 여전히 핵무기 현대화 획득 준비
일본 평화단체 청년에 위험 알리고자 노력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80년이 됐지만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피폭자 중 많은 이가 여전히 원인 모를 각종 질병으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고 병마와 싸우는 이도 적지 않다. 고통의 사슬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대물림되면서 원폭 2세들 또한 같은 처지에 처해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 피해에 눈을 감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핵 강대국들은 여전히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있고, 새로운 국가들이 핵무기 획득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들 국가는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는 핵무기를 지구에서 몰아내고 다시는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아픔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는 평화의 날갯짓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본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 설치된 평화기념상. 원자폭탄 낙하 중심지와 그 북쪽의 언덕 위에 평화공원이 조성돼 있고, 그곳에 설치된 높이 9.7m, 무게 30t의 대형 청동조각상이다. 하늘을 가리키는 오른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뻗은 왼손은 '평화'를, 살짝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유은상 기자 

◇"나와 같은 고통 다시 없어야" = 나가사키 '원폭 생존자들의 대모'로 불리는 요코야마 데루코(83) 씨는 1945년 8월 9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1942년 태어난 그는 당시 우리 나이로 4살이었지만, 너무나 큰 충격이었던 탓에 많은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부터 나가사키에는 미군 폭격기가 자주 출몰했다. 위협을 느낀 부모님은 요코야마 씨와 언니들을 가까운 인근 바닷가 마을에 사는 할머니·할아버지 집으로 보내고 막냇동생과 나가사키에 남았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당시 아버지는 출근해 일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집에 있다 폭격을 당했다. 

다행히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 목숨을 건졌지만 아버지는 한쪽 눈을 실명했고, 여동생은 천식이 심해 기관지 수술을 해야만 했다. 언니와 요코야마 씨는 원폭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원폭 사흘 뒤 나가사키로 돌아와 방사능에 피폭됐다. 
나가사키 '원폭 생존자들의 대모'로 불리는 테루코 요코야마 나가사키 피단협 회장. /유은상 기자

이후 아버지, 어머니와 여동생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만 했고, 어머니는 1972년 갑상선암으로, 아버지는 1975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결국 여동생도 1987년 세상을 떠났고, 언니마저 간암과 피부암으로 가족들을 따라갔다.

그러던 중 그는 피폭 시인 후쿠다 스마코의 강연을 들었고 운명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고통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피폭자는 보호받아야 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하며, 행복할 권리가 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고, 피폭자를 상담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동시에 원자폭탄과 핵의 위험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

그는 "이러한 고통을 다른 사람은 잘 모른다. 이것을 알리고 공유해야 한다. 그 위험성을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 생각했다"라며 "우리 가족같이 불행한 이들이 이 세상에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기에 아직 활동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어떠한 것도 평화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도모나가 마사오 나가사키 원폭 수첩 친구의 모임 회장. /유은상 기자

◇니혼히단쿄 노벨 평화상 수상 = 요코야마 씨는 피해자 상담뿐 아니라 줄기차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그러는 사이 그에게는 '원폭 생존자들의 대모'라는 별칭이 붙었고, 나가사키 피단협(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니혼히단쿄) 회장직도 맡게 됐다. 지난해에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의 일원으로 노르웨이 오슬로를 다녀왔다.

니혼히단쿄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본 단체로 원폭 생존자들 증언을 수집하고, 원폭 피해 실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노력으로 202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니혼히단쿄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증언을 통해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공로가 있다. 핵 금기(nuclear taboo)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더불어 노벨위원회는 "오늘날 핵무기는 훨씬 더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 문명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핵 보유 국가들은 핵위협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요코야마 씨는 노벨평화상 수상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벨상은 피폭자, 세상을 떠난 이들, 도와준 이들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주는 상"이라며 "평화상을 그동안 노력의 결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새롭게 시작하라는 격려이다. 오슬로에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50년간 보상 사과, 피해자 상담과 돕기에 주로 집중했다. 앞으로는 평화를 위한 활동에 더 매진해야 할 것 같다"며 "세계의 젊은이 중에 일본 원폭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원폭 참상과 무서움을 알지 못한다. 더 많은 젊은이에게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나카사키 피단협은 원폭 80년을 맞아 △원폭 피해자 80명 증언 대회와 영어 동영상 제작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일본에서 전쟁을 안 한다'는 내용의 헌법 9조를 되새기는 비석 건립 △연예인·유명인 80명과 함께하는 반핵 토크 콘서트 등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일본 나가사키시 전경. /유은상 기자

◇미래 세대 향한 반핵·평화 활동 = 일본에는 피단협 외에도 많은 단체가 원폭 피해자를 돕고, 비핵 평화 세상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원폭 수첩 친구의 모임'은 핵 폐기 운동에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주로 핵을 보유한 국가를 찾아 그곳 청년들을 만나며 핵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2023년 12월에는 미국 포틀랜드와 노스캐롤라이나, 시카고 등을 방문해 대학생을 만났다. 피폭 체험은 물론 토론회를 개최해 핵 없는 세상의 절실함을 일깨웠다.

올해 5월에는 영국 런던과 케임브리지, 에든버러를 찾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피폭 체험을 진행하고 비핵·평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를 통해 그들은 핵의 비인도성을 알리고 핵 없는 세상 실현 방안을 함께 고민했다.

올해 11월에는 미국 뉴멕시코주와 하와이를 방문해 대학생들을 만나고, 더불어 원폭 80주년을 맞아 대규모 행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도모나가 마사오 나가사키 원폭 수첩 친구의 모임 회장은 "NPT조약(핵확산금지조약)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핵을 보유하고 또 보유하려는 나라는 더 늘어나고 있다"라며 "핵무기가 7만 발에서 2만 발로 줄었다지만 오히려 위력은 더욱 향상되고 소형화되고 있다. 원래 취지에서 역행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이처럼 많은 나라가 핵 보유를 원하고 또 가진 나라는 그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재 위정자를 설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그래서 미래에 국가를 운영할 청년들을 대상으로 핵의 위험을 알리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청년이 그 위험을 깨닫고 청년 세대의 연대가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반핵·평화 활동가들은 핵 폐기가 미래 세대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한다.

사토우 스미토 원수폭금지나가사키협의회 사무국장은 "핵의 위험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 핵은 예전과 달라 만약 다시 사용된다면 그것은 인류의 전멸, 지구 종말을 초래한다"라며 "핵으로 핵을 막을 수도 없다. 한 번 실수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 미래 세대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미래 세대와 함께 막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은상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