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9·19 군사합의 복원’ 첫 언급…“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정희완 기자 2025. 8. 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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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합의 선제적·단계적 복원 의사
접경지역 군사훈련 금지 우선 추진
‘두 국가론’ 거부, “흡수통일 아냐”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
북, 광복절도 북·러 밀착 과시 활용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 9·19 군사합의 복원’을 취임 이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재확인했다. 북한이 정부의 각종 긴장완화 조치를 폄훼하면서 적대시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진정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군사합의 복원을 제시했는데 취임 이후 명시적으로 이를 거론한 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진다”라며 북한을 향해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이 없다고 했다. 남북 간 긴장 완화와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대북정책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된 군사합의는 우발적 충돌 방지와 신뢰 구축을 위한 방안이 망라돼 남북 충돌을 예방하는 최소한의 ‘안전핀’으로 평가됐다. 육상·해상·공중에 완충지대 설정 및 군사훈련 중단, 비무장지대(DMZ) 내 일부 감시초소(GP)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이 담겼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선제적·단계적’ 복원은 정부가 먼저 군사합의 일부를 되살리고 북한의 호응 등에 따라 점차 확대하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1월 군사합의 중 접경지역 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조항만 우선 정지한 뒤, 지난해 6월 모든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이재명 정부가 먼저 복원을 추진할 조항으로는 접경지역 완충지대 내 군사훈련 중단(제1조 2항)이 꼽힌다. 이는 충돌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조치다. 해병대의 서북도서 해상사격훈련과 육군의 군사분계선(MDL) 5km 내 사격훈련 등이 해당한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조항(제1조 3항)도 거론된다. 앞서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했을 때처럼 국무회의 의결을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군사합의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접경지역 내 각종 훈련 등을 조정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도 있다.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고 군 자체적으로 훈련을 중단하면서 내용 면에서 군사합의를 준수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남과 북은 원수가 아니다”라며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그 과정의 특수관계라고 우리는 정의했다”고 밝혔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시작으로 각종 합의서에 담긴 남북관계의 정의를 언급한 것이다. 한국 헌법에 평화통일 조항이 명시돼 있는 만큼, 북한이 2023년 말부터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다만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4일 담화에서 한국 헌법의 통일 조항을 두고 “흡수통일을 하려는 망상을 명문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원칙도 재확인했다. 다만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라고 했다. 한국에도 핵을 들이지 않겠다며 자체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 등에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또 “비핵화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인정한다”라며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북제재 등 압박 일변도보다 대화 등 외교적 노력에 방점을 둘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대화나 협상의 시작부터 비핵화를 내세우기보다 단계적 합의와 동시적 행동을 통해 신뢰를 쌓으면서 최종적으로 비핵화를 이루는 접근법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당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이 대통령도 “신뢰를 회복하고 단절된 대화를 복원하는 길에 북측이 화답하길 인내하며 기대하겠다”라며 ‘인내’라는 표현을 두 차례 썼다.

북한은 광복절을 계기로 러시아와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4일 ‘조국해방의 날’(광복절) 80주년 연설에서 “조·로(북·러) 친선관계는 역사에 전무한 동맹관계로 발전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광복절을 맞아 연설한 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에 이어 옛 소련군을 추모하는 해방탑도 찾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광복절도 러시아와의 동맹관계를 더 공고히 하려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라며 북한이 러시아를 외교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가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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