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여행’ 런트립 세계적 인기…새 러닝 동지들과 ‘땀맹’

박미향 기자 2025. 8. 17. 08: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러닝 여행 한국에서도 관심 폭증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빈
“달리기에 미친 도시” 속으로 질주
빈의 도나우운하 양옆은 러너들로 늘 북적인다. 이 러닝 코스에선 그라피티 등 빈 예술의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 운하에서 부는 바람이 축축해진 얼굴을 씻어준다. 박미향 기자

‘런트립 명소’ 오스트리아 빈

인간은 질주하는 동물이다. 인간의 질주 본능은 더 나은 문명을 구축하고, 더 고도화된 기술과 과학을 탄생시켰다. 이를 통해 인류는 더 편리한 일상을 영위한다. ‘현재도 진행형’인 질주 본능은 인류가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에이아이(AI) 시대를 예고한다. 질주 본능의 원초적인 형태는 땅을 딛고 달리는 것이다. 달리는 동안 인간은 내면에 깊숙이 진입하게 된다. 기실 러닝을 ‘명상 운동’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런 속성 때문에 복잡하고 현대화된 문명사회일수록 러닝 인구는 는다.

이른 아침 오스트리아 빈. 고풍스러운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포진해 있는 거리를 달리는 러너. 러닝에 진심인 도시 빈에선 흔한 풍경이다. 초보자도 도전하기 좋은 링슈트라세 코스. 도심을 원형으로 둘러싼 도로로, 길이 약 5.3㎞ 규모다. 박미향 기자

최근 러닝은 ‘달리기’에만 그치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 교육, 패션, 치유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을 시도하는 등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게 달리기에 여행을 결합한 ‘런트립’(Run+Trip)이다. 여행지에서 하는 조깅이 아니다. 러닝을 통해 여행지의 문화, 현지인의 삶 등 속살을 제대로 체험하는 능동적인 새 여행 방식이다. 달리다 보면 알려진 명소를 벗어난다. 숨은 골목과 현지인들의 생활을 보게 된다. 기존 여행에선 알 수 없었던 매력이다. 성취감, 자신만의 여행 서사 구축, 정신적 명료함과 힐링 경험 등도 장점으로 꼽힌다. 런트립에 열광하는 이들을 ‘런트리퍼’(Runtripper)라고 한다. 런트리퍼는 대략 세 종류로 나뉜다.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는 ‘도전형’, 새 경험을 중시하는 ‘일상탈출형’, 러닝 크루나 동료,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를 즐기는 ‘관계형’, 에스엔에스 등에 기록을 남기려는 ‘기록형’ 등으로 말이다.

빈의 도나우운하 양옆은 러너들로 늘 북적인다. 이 러닝 코스에선 그라피티 등 빈 예술의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 운하에서 부는 바람이 축축해진 얼굴을 씻어준다. 박미향 기자

가히 세계적 열풍이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관광 데이터랩 자료를 보면, 최근 4년간 ‘런트립’의 에스엔에스 국내 언급량은 무려 598%나 폭증했다. 글로벌 여행 앱 스카이스캐너가 한국인 러너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도 방증 자료다. 응답자 55%가 여행지에서 러닝을 즐기며 마라톤 등 러닝 대회 참가를 위해 런트립을 떠날 계획이다. 또 이들은 가장 큰 고민이 런트립 장소라고도 답했다. 어디에서 뛸 것인가.

지난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오스트리아 빈이 뽑혔다. 살기 좋은 도시가 뛰기도 좋은 법이다. 혹자는 빈을 “달리기에 미친 도시”라고도 했다. 런트립 명소로 빈의 장점은 고풍스러운 박물관과 궁 등 역사적 장소를 끼고 달리는 것이다. 여기에 여러 나라에서 온 러닝 여행객들이나 빈 러너들과의 교류, 쾌적한 도시 환경과 안전 등이 더해진다. 국내 최고 러닝 유튜버인 ‘마라닉티브이(TV)’의 이재진 작가도 “빈은 도심 러닝 여행지로 최고”라고 했다. 실제 지난 6월 말 방문한 빈에서 이른 아침 러너 수십명을 만났다. 빈 러닝 명소 3곳을 6월27일(이하 현지시각)부터 이틀간 달렸다. 빈관광청에서 추천한 곳이다. 링슈트라세(Ringstraße), 공원 프라터(Prater), 도나우(다뉴브)강 지류로 빈을 관통하는 도나우운하(Donaukanal) 등이다. 오는 10월 긴 연휴에 런트립을 계획하는 이들을 위한 맞춤 정보다.

이른 아침 오스트리아 빈. 고풍스러운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포진해 있는 거리를 달리는 러너. 박미향 기자
성기령 기자

초심자에게 딱인 도심 순환도로

6월27일 오전 6시. 빈에서 달리기를 시작할 시각이다. 온몸에 스며든 의기소침과 취약해진 마음을 치유하는 데 러닝만 한 게 없다. 빈의 이른 아침은 고요했다. 첫날 코스는 링슈트라세. 빈 도심을 원형으로 싸고 있는 순환도로다. 19세기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성벽을 허물고 조성한 대로다. 도로 양옆에는 박물관, 미술관, 빈 국립 오페라극장, 왕궁, 빈 시청 등이 늘어서 있다. 너비 57m, 길이 약 5.3㎞ 규모인 이 도로는 러닝 하기 맞춤하다. 초심자도 도전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출발했다. 1869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극장은 연간 50개 넘는 공연이 펼쳐지는 세계적인 무대다. 웅장한 풍모에 압도됐다.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트램이 느리게 지나갔다. 낮 기온이 섭씨 30도 넘는 빈이지만, 이른 아침 빈은 알싸했다. 상쾌한 바람이 볼에 닿았다. 막 기지개를 켠 해가 도시를 점령할 채비를 마쳤다. 세상의 아침은 어디든 모두 아름답다.

이른 아침 오스트리아 빈. 고풍스러운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포진해 있는 거리를 달리는 러너. 러닝에 진심인 도시 빈에선 흔한 풍경이다. 초보자도 도전하기 좋은 링슈트라세 코스. 도심을 원형으로 둘러싼 도로로, 길이 약 5.3㎞ 규모다. 박미향 기자
이른 아침 오스트리아 빈. 고풍스러운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포진해 있는 거리를 달리는 러너. 러닝에 진심인 도시 빈에선 흔한 풍경이다. 초보자도 도전하기 좋은 링슈트라세 코스. 도심을 원형으로 둘러싼 도로로, 길이 약 5.3㎞ 규모다. 박미향 기자

길에는 성인보다 2~3배는 큰 나무가 도열해 있었다. 착착, 땅에 발이 닿을 때마다 나뭇가지가 미풍을 타고 응원했다. 10여분 달려 도착한 데는 ‘빈 시립공원’(Stadtpark). 1862년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조성된 시민공원이다. 왈츠의 신 요한 슈트라우스와 슈베르트 동상이 있다. 작은 연못 위로 새들이 휘릭 지나갔다. 헉헉, 숨을 할딱이며 뛰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러닝 동지였다. 그와 인사를 나눴다. 다시 링슈트라세로 나왔다. 하루를 준비하는 시민들을 만났다. 공원 앞 꽃집 주인은 일손이 바빴다. 수백송이 꽃들을 나르는 트럭에서 꽃을 받아 잰걸음으로 판매대에 진열했다. 걷어 올린 옷소매에 땀에 배었다. 런트립을 하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다음은 응용미술관(MAK)이 반겼다. 고풍스럽다. 달릴수록 미술관이나 중세시대 건물처럼 보이는 빈의 건축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빨간불에 멈출라치면 러닝 동지들이 곁에서 숨을 내뱉었다. 동지애가 생겼다. 한둘이 아니었다.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를 착용한 이나 무릎보호대로 무장한 동지까지, 얼추 20명 이상 만났다. 무채색 복장이 대부분인 한국의 러너들과 달리 분홍색, 형광색, 바다색 등 다양한 색감의 운동복을 입었다. 신발도 온, 살로몬, 브룩스, 소커니(써코니), 뉴발란스, 아식스 등 다양한 러닝화 브랜드를 착용했다. 뜻밖에 국내에선 인기 많은 호카를 신은 이는 적었다.

이른 아침 오스트리아 ‘빈 시립공원’(Stadtpark)을 달리는 러너. 러닝에 진심인 도시 빈에선 흔한 풍경이다. 박미향 기자
링슈트라세 코스를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호프부르크궁’과 정원인 ‘부르크가르텐’. 박미향 기자
‘호프부르크궁’과 정원인 ‘부르크가르텐’를 달리는 러너. 박미향 기자

30~40여분 지나 도착한 데는 ‘호프부르크궁’(Hofburg). 합스부르크 가문의 궁으로, 프랑스 루브르궁 다음으로 세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궁전이다. 러너들은 궁보다 궁에 붙어 있는 정원 ‘부르크가르텐’(Burggarten)을 선호했다. 가문의 개인 정원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정원에 들어서면 화려하게 핀 장미정원과 잘 닦은 흙길이 반긴다. 땀에 흠뻑 젖은 동지가 스쳐갔다. 혈맹이란 말이 있지만 우린 ‘땀맹’ 우정을 나눴다. 장미 향이 조금만 더 달리라고 응원했다. 땀 냄새가 짙어질수록 맹렬히 달린 인생이 필연적으로 부과하는 피로와 비관, 실망이 사라졌다. 낙관이 샘솟았다. 제멋대로 찾아오는 폭염도 두렵지 않았다. 약점조차 극복의 대상의 아니라 애정의 대상으로 느껴졌다.

자연사박물관과 빈 미술사 박물관을 지나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 돌아왔다. 대략 1시간, 천천히 속도 내지 않고 달린 시간이다. 지나는 빈 시민에게 말을 걸었다. “엑스큐즈 미.” 그가 찍어준 이날 사진 속 나는 땀에 흠뻑 젖은 판다 같았지만 표정만은 천국의 일꾼이었다.

이른 아침 링슈트라세 코스를 달린 후 땀에 흠뻑 젖은 채 상기된 기자.
빈의 도나우운하 양옆은 러너들로 늘 북적인다. 이 러닝 코스에선 그라피티 등 빈 예술의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 운하에서 부는 바람이 축축해진 얼굴을 씻어준다. 박미향 기자

밤에도 뛰기 좋은 물길 코스

다음날은 두번째 코스 도전. 도나우운하 양옆을 달리는 코스다. 도나우운하는 빈 7개 구역을 관통하는 17㎞ 길이의 인공 물길이다. ‘작은 도나우’라고도 불린다. 빈 다른 지역에 큰 물줄기 도나우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링슈트라세 한쪽에 붙어 있는 강변이 아닌 맞은편에서 출발했다. ‘스웨덴다리’(Schwedenbrücke)가 출발지. ‘마리엔다리’(Marienbrücke) 방향으로 달렸다. 세련된 레스토랑 인테리어와 거리 예술인 그라피티 등을 눈에 담는 코스다. 밝은 가로등 때문에 야간 러닝 장소로도 각광받는다.

오전 7시께, 땅을 박차고 달렸다. 오래된 돌다리가 하나둘 지나갔다. 다리마다 ‘잠시 멈춤’ 했다. 화려한 색으로 도배한 그라피티의 역동성이 심장을 두들겼다. 건물 벽에도 기하학적인 문양과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생동하는 빈을 증명하는 예술이다. 저 멀리 여행객을 실은 배가 지나갔다. 여행객들은 큰대자로 팔을 벌려 인사했다. 흥겨운 여행의 즐거움이다.

빈의 도나우운하 양옆은 러너들로 늘 북적인다. 이 러닝 코스에선 그라피티 등 빈 예술의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 운하에서 부는 바람이 축축해진 얼굴을 씻어준다. 박미향 기자
빈의 도나우운하 양옆은 러너들로 늘 북적인다. 이 러닝 코스에선 그라피티 등 빈 예술의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 운하에서 부는 바람이 축축해진 얼굴을 씻어준다. 박미향 기자
빈의 도나우운하. 박미향 기자

30분간 만난 러너만 10여명. 등 뒤에서 ‘학학’대며 밤도둑에게 쫓기듯 급히 지나는 커플도 있었다. 그중 몇 사람은 손가락을 브이(V) 자로 들어 올려 인사했다. 눈인사만 하는 이도 있었다. 강에 드리운 은빛처럼 찬란한 인사였다. 가게 문을 여는 요리사도 만났다. 러닝의 고통이 엄습했지만 동지들의 격려가 힘이 됐다. 강바람이 불 때면 그나마 나았다. 땀을 거둬 갔다. 티셔츠가 축축하게 젖어도 괜찮았다. 모든 것을 털어내고 빈 진공상태가 된 듯했다. 홀가분했다. 낡은 나무와 흙더미로 조성된 친환경 놀이터도 만났다. 빈 아이들의 일상이 눈에 그려졌다. 런트립의 장점이다. 이날 오후 방문한 세번째 코스는 프라터공원 숲길. 두 코스와는 딴판인 러닝의 즐거움을 제공했다. 과거 프라터공원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냥터였다.

빈의 도나우운하 양옆은 러너들로 늘 북적인다. 이 러닝 코스에선 그라피티 등 빈 예술의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된다. 운하에서 부는 바람이 축축해진 얼굴을 씻어준다. 박미향 기자

낯선 여행지 빈에서 한 익숙한 행동 ‘러닝’. 마라톤 애호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러닝을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과 “정겨운 침묵” 속을 달리는 일이라고 했다. 누구든 그 공백 속을 ‘선택’할 수 있다. 빈에서 말이다.

빈(오스트리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