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춤추게 했던 레코드의 역사 [독서일기]
가레스 머피 지음 배순탁 옮김
그래서음악 펴냄

파스칼 키냐르가 1987년에 출간한 에세이집 〈음악수업〉(안온북스, 2025)을 읽고 나서, 그가 1991년에 출간한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문학과지성사, 2013)을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생트 콜롱브(1640~1700)와 그의 제자인 마랭 마레(1656~1728)다. 궁정 음악가인 콜롱브는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간다. 은둔 생활을 하는 그 앞에 열일곱 살 청년 마레가 찾아와 제자가 되기를 청한다. 여섯 살 때부터 왕이 관할하는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9년 동안 활동했던 마레는 변성(變聲)을 하면서 직장과 음악을 잃었다. 성가대에서 쫓겨나 구두 만드는 갖바치가 되어야 했던 마레는 “음악가가 되어서 자기를 저버린 목소리에 복수”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가 되고, 스승보다 뛰어난 작곡가가 된다.
뒤늦게 번역된 〈음악수업〉은 소설의 숨은 주제(변성)를 조명해주기도 했지만 지은이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음악을 작곡(composer)하는 것은 변성하지 않는 소리의 영역을 재구성(recomposer)하는 일이다. 서양에서는 여성 비르투오소들이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작곡을 많이 한 여성은 드물었다. 여자들은 변성을 겪지 않는다. 유년기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남자들은 목소리의 상실과 더불어 작곡한다.”
남성의 일부가 변성으로 인한 상실을 메꾸고자 작곡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에게는 변성이 없기 때문에 작곡을 할 동기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만은 허무맹랑하다. 이 분야의 고전인 에바 리거의 〈서양 음악사와 여성〉(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1)에 따르면, 여성에게는 창작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타이완 작가 궈창성이 쓴 〈피아노 조율사〉(민음사, 2024)는 이렇게 시작한다. “원래 우리는 육체 없는 영혼에 불과했다. 신은 영혼을 육체에 불어넣고 싶어 했지만, 영혼들은 병들고 늙어갈 뿐 아니라 자유롭게 시공을 넘나들지도 못하는 형체 속으로 들어가길 원치 않았다. 그러자 신은 묘수를 생각해냈다. 천사들에게 매혹적인 음악을 들려주라고 한 것이다.” 진흙덩이로 빚은 육체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영혼을 신이 음악으로 유혹했다는 설정은 흥미롭지만, 하품을 부른다. 창조주가 유일신으로 가정되고,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이분화되어 있다는 가정을 벗어나는 것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가. 세계는 유대-기독교화되었고, 이런 서두를 심상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도 평평하기 그지없다.
음악은 육체에 갇힌 영혼의 신음
뉴욕의 중고 피아노 가게에는 한때 영재 소리를 들으며 줄리아드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점원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피아노 조율사가 동경했던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글렌 굴드, 후지코 헤밍은 피아니스트가 되어 행복했을까. 평범한 삶이지만 행복했다는 말은 가능해도,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은 어색하다. 세 사람은 음악 경력에서나 삶에서나 모두 특별했다. 이 소설에 언급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일생은 또 어땠던가. 슈베르트가 마주한 불행은 상상을 초월했고,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고함과 광기에서 나왔다. “어쩌면 우리는 고전음악 속에 감춰진 블랙 유머를 간과했는지도 몰라요.” 음악이 육체에 갇힌 영혼의 신음이라는 피아노 조율사의 말은 ‘시칠리아의 암소’가 내는 울부짖음을 떠올려준다.
민음사의 공식 블로그는 이 소설을 “동성애자인 주인공이 출신 계급의 한계, 정체성에 대한 혼란 등을 겪으며 예술의 극치인 ‘무아’를 추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소개한다. 게이(gay)와 레이다(radar)를 합성한 게이다(gaydar)가 발동(발전)하면, 다른 사람의 언행이나 취향에서 게이 여부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린쌍이 어울렸던 수상쩍은 선배들과 조지프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죽는 등 〈피아노 조율사〉에는 동성애 코드가 많다. 하지만 ‘예술가 소설’을 읽을 때는, 예술가의 멜랑콜리가 성소수자의 멜랑콜리와 겹치기도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가레스 머피의 〈레코드 맨〉(그래서음악, 2025)은 팝 음악에 관심을 가진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음반산업의 장대한 역사’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팝 아티스트에 대한 개별적 비평을 넘어, 그들이 레코드와 공생했던 풍경과 대중음악 산업이 흘러온 거시적 흐름을 함께 조망한다. 1857년 3월25일, 프랑스의 발명가 에두아르레옹 스콧 드 마르탱빌이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 소리를 기록하는 기계(포노토그래프)에 대한 특허를 최초로 받아낸 이후, 스코틀랜드(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와 미국(토머스 에디슨)의 여러 발명가가 사운드 기록기를 개선하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탄생한 레코드는 이후 약 130여 년 동안 대중음악 산업과 동의어가 되었다.

레코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레코드의 상용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은 있었지만 비닐 원반 안에 무엇을 담아야 상품이 될 수 있을지 바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레코드 산업 초기에는 연설· 연극·만담·설교 등 녹음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이 녹음되었다. 그러다 1911년 초 〈알렉산더 랙 타임 밴드〉라는 곡이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중이 원하는 음반은 춤출 수 있는 곡이라는 히트 공식이 세워졌다. 그렇게 해서 1920년대에 재즈 붐과 레코드 산업이 일어났다. 춤추기 좋은 음반(음악)에 대한 백인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재즈는 미국의 대표 음악으로 자리잡았다.
‘레코드 맨’은 가능성이 있는 음악인을 발굴하여 음반을 취입하고 그것을 히트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음악적 유행을 이끈 사람을 가리키는 수사적 명칭이다. 지은이는 그들은 도박사나 사기꾼일 수도 있지만, 누구보다도 음악을 잘 알고 음악적 흐름을 먼저 포착했다고 말한다. 음악의 변화는 그것을 담고 전달하는 기술혁명에 의해 가장 크게 바뀐다. 인터넷 기반의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가 전통적 음반산업을 집어삼키면서 대중음악이 더욱 십 대 중심이 되어가는 것이 나쁜 조짐이라면, 좋은 소식도 있다. 음반은 사라졌지만, 인터넷이 시장을 키우고 홍보를 쉽게 해준 덕에 독립 음반사나 실험적인 음악이 틈새시장을 벌릴 공간이 생겼다. 비닐 레코드 붐이 세상을 스트리밍 이전의 시대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스러운 곡을 찾는 행위는 시대를 초월한 예술이다.” 지은이는 레코드 산업의 계보를 형성한 50명 내외의 레코드 맨들을 기리고자 이 책을 썼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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