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 눈 오는 지도, 윤동주

눈 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나서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순이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시이다. 순이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그리움을 흰눈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 흰눈을 밟으며 떠난 순이의 발자국을 지도로 표현한 것이 참신하다. 지도가 있다는 것은 순이를 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인데, 자꾸 눈이 쌓여 발자국 지도가 사라져 찾아갈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눈이 녹으면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고 그 꽃길을 따라가면 재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순이와 재회하기 전까지는 일년 내내 마음 속에 눈이 내리는 지독한 그리움이 지속될 것이다. 희망과 절망의 교차,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화자는 처절한 외로움과 그리움을 견뎌야 한다. 여기서 창은 공간적, 정서적 경계로 창 안팎의 흰눈을 대비하여 정서를 심화한다. 창밖의 눈은 실재로 순이가 떠난 슬품과 외로움을, 창안의 눈은 심리적 상황으로 순이가 떠난 뒤 그리움을 표현한다. 화자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순이는 나에게는 임이고, 동주에게는 조국이고, 우리에게는 희망이다. 눈 오는 지도를 따라가면 임도 있고, 조국도 있고, 희망도 있을 것이다.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