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GO! 사표 쓰고 미국 종단] ⑺ 4개월 만에 20kg 감량한 비결?!
PCT(Pacific Crest Trail·미국 서부 종단 트레킹). 태평양 연안을 따라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무려 4300㎞나 이어진 장대한 길이다. 1년에 8000명 정도가 도전하지만 약 20%만이 성공하고, 일부 도전자는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완보의 영광’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이 고행의 길을 <농민신문> 자매지 월간 <전원생활>에 몸담았던 신시내 기자가 도전에 나섰다. 신기자의 PCT 무사 완보를 응원하며, <농민신문>이 그의 종단기를 독점 연재한다.
야심 차게 떠나온 PCT 종주가 40일 후면 끝이 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얼마나 걸어야 할까’하며 한숨이 폭 쉬어지던 날과도 조만간 안녕이다. 그럼에도 지도를 보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지만, 돌아갈 비행기표가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종주를 시작할 때도 말했듯이 이 여행으로 이루고 싶은 원대한 목표나 꿈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얼마 남지 않은 날 동안 후회 없이 걷기 위해 긴 시간과 거친 환경이 가져온 여러 변화에 대해 돌아봤다.

우선, 나와 남편 둘 다 출발할 때보다 체중이 약 20㎏ 이상 줄었다. 먼저 이곳을 다녀온 지인에게 ‘어차피 걷기 시작하면 살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큰 변화를 겪은 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메고 다니는 가방의 허리 끈은 최대한 꼭 조이게 됐고, 입고 있던 바지도 허리 부분이 자글자글 해질만큼 벨트를 꽉 당기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다이어트를 했다면 새 옷도 사고 주변의 이런저런 부러움을 사며 즐거웠겠지만, 여기서는 옷을 살 일도 없고, 대부분 하이커들이 체중 감소를 겪기 마련이니 딱히 자랑할 일도 아니다. 또 지방과 함께 근육도 빠지면서 체력과 힘이 줄었다는 느낌을 받으니 오히려 지금은 살을 찌워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다이어트를 위해 숱한 노력을 했지만, 이런 눈에 띄는 결과를 얻은 적이 없는데 이곳에서 살이 빠져보니 결국 덜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 역시 다이어트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었다. 남편은 “중년에 건강을 걱정한다면 PCT를 짧게나마 걸어봐도 좋겠다”라며 주변 친구들에게 이 여행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놀랍게도 다시 일이 하고 싶어졌다는 점이다. 쉬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많은 직장인들이 들으면 놀랄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솔직한 마음으로는 여행은 그만하고, 또다시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며 마감에 시달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국에서도 남편이 나에게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성격의 연장선인 듯하다.
그래서 이 여행기를 연재하는 일도 몸은 힘들지만, 머릿속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신나게 궁리한다. 참고로, 매월 들어오던 월급이 아쉬운 것도 빼놓을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마음이라면 돌아가면 전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그 사이 하고 싶은 일도 생겨 한국에 돌아가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한 공부도 병행할 생각이다. 이 여행이 나를 더 열심히 살게 만드는 마중물이 됐다.

이 다음으로는 역시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존감의 상승을 꼽을 수 있다. 매일 조금씩 늘어가는 운행거리와 아주 약간이지만 익숙해지는 영어 커뮤니케이션, 힘든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르는 등 나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길 순간이 아주 많았다. 실패의 꼬리표 대신 노력의 가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나의 등을 두드려주고 있다. 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게 됐다.
책도 전보다 많이 읽게 됐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갈수록 독서량이 0에 수렴하던 차에 생긴 반가운 습관이다. 이곳에 올 때 작년 PCT 하이커에게 오디오북을 추천받았다. 걸으면서 듣기 좋고 시간도 잘 간다고 했다. 그 결과 요즘은 하루에 3시간 정도는 책을 들으며 걷고 있다. 지금은 이전에 취재를 갔던 경남 하동을 떠올리며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듣고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생겼다. 5시에서 5시 반 사이에 눈을 떠서 저녁 9시에는 잠든다. 늦어도 아침 7시에는 걷기 시작해야 하니까 말이다. 한 가지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는 자연에서 화장실 가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됐다.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안 좋은 변화도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에 둔해졌다. 당연히 산에서는 모든 쓰레기를 챙겨오지만 마을에 내려오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에서 시행하는 분리수거는 고작 플라스틱, 캔, 유리병만 분류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마저도 실시하지 않는 곳이 많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분리수거 공부를 해야 할 판이다. 지구야 미안하다.
식생활 문제도 있다. 섭취 칼로리가 중요하다 보니 탄산음료나 초콜릿, 과자를 너무 많이 먹고 있다. 혼자서 아이스크림 한 통도 뚝딱 비운다. 지금이야 많이 걷느라 이런 것들을 마구 먹더라도 살이 빠지지만 이런 식습관으로 한국에 돌아가서는 안 될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무척 섣부른 고민이긴 하다.

대부분은 긍정적인 변화라 반갑기도 하지만 돌아갈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반이다. 남은 기간 동안 과연 좋은 습관은 남기고 나쁜 습관은 줄여 간다면 그것보다 더 큰 여행의 성과는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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