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묏버들 가려 꺾어 / 홍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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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버들 가려 꺾어를 쓴 기생 홍랑은 북평사로 제수되어 함경도 경성으로 가던 최경창을 만난 이후 평생 사랑하였다.
함경도 관아의 기녀였던 홍랑과의 사랑으로 홍랑이 시조 묏버들 가려 꺾어를 남김으로 최경창의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최경창의 생애와 홍랑의 예술성 높은 삶의 일화는 흥미로운 텍스트 상황이다.
그 사연이 묏버들 가려 꺾어에 겹쳐지면서 절실함이 배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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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버들 가려 꺾어 / 홍랑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한국전통시 선집, 시조』(2025년, 세계전통시인협회 한국본부)
「묏버들 가려 꺾어」를 쓴 기생 홍랑은 북평사로 제수되어 함경도 경성으로 가던 최경창을 만난 이후 평생 사랑하였다. 그가 죽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난을 전전하다가 그의 글을 최씨 집안에 전하고 무덤 앞에서 숨지니 조선 중기 최대의 로맨스였다. 이상은 유자효 시인이 『한국전통시 선집, 시조』 49쪽에 쓴 해설이다.
남녀 사이의 정분이 단순하게 정분으로 끝나지 않고 작품으로 남을 때 그 애틋함은 더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 작품이 문학적 완성도가 높을 때 주목된다. 홍랑과 촤경창이 살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500년 전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다. 학창 시절 감수성 예민하던 때인지라 「묏버들 가려 꺾어」를 배우면서 간절한 사연을 함께 듣다가 무척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초장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손대, 라는 문장은 후구에서 도치를 보인다. 이 구조가 음악성을 가지면서 묘한 매력을 안기고 있다. 묏버들을 가려 꺾어서 임의 손에 건네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지극하다. 그런 후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라고 간절히 소망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노래한 것이다. 밤에 비가 내려서 새잎이 나거든 그 모습이 곧 날인가 하고 여기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 마음이 애절하기 그지없다.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의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이고 본관은 해주(海州)다. 1561년에 성균관 생원이 되고, 1568년에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함경도 북평사, 예조와 병조의 낭관을 거쳐, 1575년에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에 영광 군수로 임명되자 사임하였다. 1577년에 복직, 대동도찰방을 거쳐, 함경도 종성 부사에 제수되었다. 성균관 직강으로 임명되어 상경 도중에 별세했다. 관직은 높지 않았으나 학문과 문장 그리고 당시(唐詩)에 능하여 백광훈, 이달과 함께 삼당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저서로는 시집인 『고죽유고』(孤竹遺稿)가 있다. 함경도 관아의 기녀였던 홍랑과의 사랑으로 홍랑이 시조 「묏버들 가려 꺾어」를 남김으로 최경창의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고전시가와 현대시를 감상할 때의 차이점이 있다. 고전시가는 텍스트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고, 현대시는 텍스트 자체로만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최경창의 생애와 홍랑의 예술성 높은 삶의 일화는 흥미로운 텍스트 상황이다. 그 사연이 「묏버들 가려 꺾어」에 겹쳐지면서 절실함이 배가되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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