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좀비딸’ 흥행이 씁쓸한 이유

올여름 극장가 최대 관심사는 ‘좀비딸’과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의 대결이었다. 인기 웹툰과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두 작품이 나란히 개봉했지만, 성적은 극명하게 갈렸다. ‘좀비딸’은 개봉 17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최고 흥행작이 됐다. 반면 300억원 넘게 쓴 대작 ‘전독시’는 100만 관객을 간신히 넘기며 제작비 회수가 불투명해졌다.
희비를 가른 건 원작 팬덤의 반응이었다. ‘좀비딸’은 개봉 전부터 웹툰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고양이와 할머니의 비주얼은 합격점을 받았다. 원작의 가족애를 부각시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일반 관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췄다.
반면 ‘전독시’는 개봉 직후부터 “원작을 훼손했다”는 팬덤의 비판에 부딪혔다. 일례로 원작 속 주인공 ‘김독자’는 생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며 냉혹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영화에선 착하고 안쓰러운 사회적 약자로 그려졌다. 대중을 고려한 안전한 각색이었지만, 팬덤에겐 캐릭터 파괴로 비쳤다. 팬들이 등을 돌리자 타격은 치명적이었다. 소문이 성패를 좌우하는 시장에서 핵심 팬층이 외면한 작품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대중의 선택을 받긴 어려워졌다.

‘좀비딸’이 상대적으로 흥행하고 있지만, 정부의 영화 할인권 배포가 없었다면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명암은 갈렸지만, 두 작품 모두 원작의 인지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영화·드라마 시장은 웹툰·웹소설이 장악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영화는 ‘전독시’처럼 논란조차 일으키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진다. 해외 상황도 비슷하다. 할리우드 박스오피스는 속편, 리메이크, 게임 실사화 영화가 점령했다. 올해 세계 흥행 10위권 중 오리지널 영화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레이싱 영화 ‘F1: 더 무비’ 한 편뿐이다.
이제 원작 기반 영화는 ‘원작을 얼마나 똑같이 옮겼는가’로 평가받는다. 극장에 가기 전 원작을 예습·복습하는 기형적인 상황이 일상이 됐다. 스마트폰에선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지는데, 정작 영화관에선 신선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업계는 “요즘 젊은 세대는 만화만 본다”고 푸념한다. 절반만 맞는 말이다. 웹툰과 애니메이션이 다루는 무궁무진한 소재, 한계 없는 상상력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이 어렵다는 이유로 유명 IP에만 의존한다면, 젊은 관객은 극장과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이 악순환을 뚫은 ‘F1: 더 무비’의 질주는 그래서 더욱 값졌다. 관객은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소문으로 역주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이맥스 재상영에 돌입했다. 올여름 진정한 승자는 ‘좀비딸’도 ‘전독시’도 아닌, ‘F1: 더 무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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