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조선 장악' 시작이었던 인천항…외세 침투의 흔적을 따라서

정희윤 기자 2025. 8. 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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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883년 인천항의 문이 열리며 '일제 수탈'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참혹했던 시간들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지만, 꺼지지 않았던 저항 의식과 독립의 꿈도 함께 담겨있습니다.

밀착카메라 정희윤 기자가 인천 개항장의 역사를 따라가 봤습니다.

[기자]

한쪽은 일본, 한쪽은 청나라.

이 계단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는 조선을 갈랐습니다.

한때 우리는 힘 있는 나라가 달라는 대로 땅을 내줘야 했던 국가였습니다.

1894년을 기점으로 일본 조계지는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일본이 우리나라에 지은 최초의 은행 지점입니다.

인천항 개항 이후에 이 상업과 금융을 동시에 장악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곳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건데요.

이 일본이 어느 정도로 우리 금융과 상업을 장악하려고 했냐, 그 단적인 예로 이곳에 은행이 있는데 바로 뒤에 또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 설명을 보면 일본 제일은행은 일본의 경제적 침략을 위해서 이곳에 근대 금융기관으로 출장소를 개설했다고 되어 있네요.

이곳은 구 일본 우선 주식회사라는 건물인데, 옛날에 일본의 이 물류랑 해운을 담당하던 이 상선 회사였습니다.

일본 자본은 한반도 해운업을 빠르게 장악했습니다.

인천은 작은 일본이 되어 갔고,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자 군수 기지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군대에 끌려가거나 이곳으로 와서 군수품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상흔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미쓰비시 줄사택 앞에 왔습니다.

이 일본군의 군수 공장에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이 살았던 집인데 한눈에 봐도 낮은 지붕과 좁은 집, 이곳에 갇힌 삶은 참으로 참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몇 안 남은 건물들은 가림막으로 둘러싸였습니다.

재개발을 앞두고 몇 동만 기억 공간으로 남길 계획입니다.

현재 국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흔적입니다.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만든 포탄, 탄약, 군수 장비는 월미도 군사시설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전선으로 이동했습니다.

굴욕과 열패감이 가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인천 지역 곳곳에는 우리 민족 의지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교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곳 초등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은 학교에서 나와 거리로, 시장으로, 장터로 나가서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우리는 저항하고, 엎드리고, 싸우고, 살아내기를 반복했습니다.

오늘날 거리를 걸으면 돌담과 건물, 오래된 표석이 그때의 흔적을 속삭이고 있습니다.

개항에서 시작된 외세의 발자취,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독립의 꿈.

광복의 함성은 여전히 이 거리 위에 울리고 있습니다.

[화면출처 인천중구청·인천개항박물관]
[작가 강은혜 영상취재 유규열 VJ 장준석[영상편집 홍여울 영상자막 홍수정 취재지원 김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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